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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이 앉아 <금강경>을 보던 스님은 기자를 반가이 맞으며 세조대왕 번역본 <금강경>에 얽힌 이야기를 꺼낸다.
“세조대왕이 번역한 <금강경>은 세조의 꿈에 세종대왕이 나타나 <금강경>을 번역하라고 해서 한 것이에요. 세조가 불교 믿게 된 것도 그때부터야. 세조는 <법화경> <아미타경>을 번역했어요. 당시 번역은 유교 선비들을 비롯해 강사 선객 스님들이 토론하고 한학자와 불교학자들이 모여서 해낸 거라 번역이 참 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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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과 한자가 뒤섞인 의룡 스님의 <금강경> 책은 스님이 붙인 주석으로 페이지마다 빨갛고 파랗고 까맣게 깨알 같은 글씨들이 가득했다.
“불교는 자꾸 연구해야 해요. 50년 전 60년 전 본 경전들을 다시 보고 주를 다는 것은 의심스러워서입니다. <금강경>은 내용이 생명이지요. 강의를 꼭 들어야 합니다. 입으로 ‘여시아문’이라 읽고 속으로 뜻을 해석하며 읽어나가야 해요. 천천히 읽어야지 급하게 딱딱 끊어지도록 읽는 것이 아닙니다.”
조계종 소의경전 <금강경>에 설해진 ‘범소유상 개시허망’을 따라야할 불교계가 천불전 만불전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 스님은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마음이 부처’라 하면서 불상들은 왜 여러 구를 만들어 모시나요. 왜 천불이니 만불이니 모으는 겁니까. 그렇게 열심히 모시는데 세상은 왜 어려워집니까? 모시면 좋아져야지. 불상은 상징적으로 한 불만 모셔도 돼요. 조계종의 소의경전 <금강경>에 ‘범소유상 개시허망’을 말하는데 천불 만불 모시는 것은 교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허망한 것을 왜 합니까.”
조계종 스님들이 자가당착에 빠져있음을 한탄한 스님은 “조계종에서는 화두선을 강조하는데 조계종도들은 화두 참구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의아하다”고 말한다.
“모양 없고 형상 없는 것이 진리이자 부처”임을 강조한 스님은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진리인데 마음도 진리도 모양이 없고 이름도 없고 그래서 부처”라고 설명한다.
“비어있지 않으면서 비어있는 것이 진공이요, 있지 않으면서 있는 것이 묘유”라 해설한 스님은 “진공묘유가 다 마음이요 진리라, 여기서 인과가 생겨난다”고 지적한다. 진공묘유한 것이 어떤 것은 원인이 되고 어떤 건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부처님 말씀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교가 발전은커녕 오늘날 엉망이 됐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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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충족시키려 불교를 믿으니 행복이 없죠. 물질 가지려는 욕심을 버릴 때 행복한 것이에요. 불만족에는 행복이 없어요. 욕심 탐진치를 버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극락은 없습니다.”
의룡 스님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것’ 즉 ‘부처되겠다’ ‘깨닫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념무상’의 상태에 있는 것이 곧 부처자리에 드는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불자들이 요즘 같은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여쭸다.
“위기도 인연에 의해 맺어진 것이죠. 자기가 만들고 누리는 것이에요. 부처님이 만든 위기는 아니죠? 우리가 지은 복이 거기까지니까 내가 만들어 사는 겁니다. 이 인연은 없어지지도 늘지도 않아요. 그대로 사는 것, 멸하지도 않고 계속된 것입니다. 씨가 곧 결과예요. 내가 심고 내가 거두는 것, 자업자득이에요. 그래서 위기타개책은 스스로 나옵니다.”
지금 힘들다고 절망할 필요 없다는 말을 계속 해준 스님은 “남 탓하고 정치인 탓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파동을 일으켰지만 우리 모두 다 같이 전생에 지은 업 때문에 그런 것이기에 대통령 원망할 것 없다”고 단정한다.
모든 것이 내 탓이지 남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스님의 말씀이 가슴에 파고든다.
“우리 불자들은 공부를 안 해요. 불교를 모르고 교리를 연구하지 않으니 무식한 거예요. 그러니 죽을 때 개종하는 겁니다. 혼이 들락거릴 때 옆에서 찬송가 불러주고 교회 다니라고 하니까 끄덕끄덕 개종하는 거죠. 김두한씨 부인도 불교서 기독교로 갔잖아요. 교화를 제대로 안했기 때문이에요. 모두 교화 제대로 못한 스님들 책임입니다.”
불교공부와 포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스님은 아난존자 일화를 전해준다.
“아난존자가 고요히 나무 아래에서 참선을 하고 있었는데 염구아귀(입에서 불이 나오는 아귀)가 나타나 ‘3일 있다가 죽을 건데 뭘 그리 열심히 참선을 하나’고 말했어요. ‘사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아난존자가 물으니 아귀가 설명하길 ‘아귀들이 100만명 있는데 이들한테 삼보에 공양 올려달라. 그러면 죽음 모면하고 장수하리라’고 했어요.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아뢰니, ‘공양 올리되 아귀에게만이 아니라 일체중생에게 모두 공양해라. 복 지으면 된다’고 허락하셨죠. 이 공양이 시식입니다. 구명시식이 그때 생긴 거예요. 아난존자가 벼 열섬으로 밥을 지어 아귀무리를 청해 시식했어요. 그 공덕으로 아귀 백만대중은 천상에 나고 아난존자는 장수했지요.”
돈사탐진치 상귀불법승(頓捨貪嗔癡 常歸佛法僧)
염념보리심 처처안락국(念念菩提心 處處安樂國)
탐진치를 끊고 불법승 삼보에 항상 귀의하라.
찰나찰나 보리심 내면 가는 곳 모두 극락이다.
“부처님은 아귀된 것은 탐진치 때문이라고 아난에게 법문했어요. 이 법문을 아난존자가 아귀들에게 해주었고 덕분에 천상에 모두 태어난 것이죠. 잘 살려면 탐진치를 버리세요.”
탐진치는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바로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고 스님은 강조한다. 탐진치를 항복받는 것,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것이 바로 마음을 항복받는 것이다. “탐진치를 버린 마음은 계정혜 삼학에 머무를 것”을 스님은 주문한다. 계정혜 삼학에 머물면 복이 되는 것이고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통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계정혜 삼학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계를 잘 지키고, 참선해서 선정 들어야 지혜 발달하는 것”이라고 스님은 설한다.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요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라
시시근불식(時時勤拂拭)하니
물사약진애(勿使惹塵埃)라
몸은 보리의 병풍이요, 마음은 지혜의 집과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끼지 않도록 하라.
“<육조단경>에서 신수 대사는 마음은 지혜의 집과 같다고 했어요. 마음의 주인공은 지혜인데 이 지혜에서 생각이 발해지는 것이죠. 신수 대사가 옳게 본겁니다. 중생을 위해서 닦는 법을 알려준 거예요. 부처가 병든 게 중생입니다. 병을 고쳐야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겁니다. 중생이 먼지라면 먼지 다 털어내면 부처가 되는 거죠. 신수 대사는 중생병을 고칠 수행방법을 알려준 거예요.”
의룡 스님은 신수 대사의 말씀을 빌어 끊임없이 공부하고 닦을 것을 불자들에게 당부했다.
의룡 스님은 |
의룡(義龍) 스님은 193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6세에 용꿈을 꾸고 용주사를 찾아가 출가해 14세에 일해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탄허ㆍ관응 스님에게 교학을 배운 스님은 35세 되던 해에 ‘한영-명봉 스님’의 강맥을 이어 받았다. 일생을 제방 강원의 강사로 살아온 스님은 2002년 직지사 강주를 끝으로 강단에서 물러났다. 30세 되던 해에 창건한 각황사에서 홀로 수행정진 했던 스님은 직지사 강주에서 물러난 후 각황사를 맏상좌에게 넘겨줬다. 고향인 안성 미륵당에 평소 읽던 경전과 불서 수 만권을 모아 ‘자심난야’를 꾸며 머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