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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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따라가면 하근기 마음 다스릴 때 상근기”
선지식을 찾아서-혜국 스님 (금봉선원장)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을 나오니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뒤를 줄레줄레 따라온다. 동이 틀려면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만큼 짙은 어둠이 도량을 감싸고 있으니 아마도 길을 안내해주려는 심사인 것 같다. 고양이는 목탁소리를 듣고 자라서인지 희한하게도 풀을 뜯어먹는다고 하니 전생의 습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것이 기특하기만 하다.

혜국 스님 처소에 들어서니 너덜너덜하게 깨어진 죽비 한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 너를 예까지 끌고 왔느냐고 물어주기를 기다렸다. 너를 예까지 끌고 온 그 주인공을 알고 있느냐고 저 죽비로 다그쳐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선문답의 기회는 선객에게나 주어지는 것, 공부와 무연한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다.

석종사는 신라 때 지어진 고찰이지만 삼층석탑만이 그 흔적을 말해 줄 뿐, 과수원에 지나지 않았다. 길 가다가 배가 고파 국수 한 그릇 사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20년에 걸쳐 석종사 건립을 위한 부지를 확보하였다. 석종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해서 금봉선원과 시민선방인 보월당이 있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번 동안거 때는 31분의 스님들이 결제를 하였고, 시민선방에서도 80여명의 신도들이 결제를 하였으니 혜국 스님은 참으로 복이 많은 분이다. 건물을 번듯하게 잘 지어놓아도 선객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한 불사일 터인데, 금봉선원은 공간이 협소할 정도로 방부를 들이민다. 벌써 하안거 방부가 끝났다. 이것만으로도 혜국 스님의 덕 높은 수행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혜국 스님은 세간의 이러한 평이 부담스러울뿐더러, 신문이다 뭐다해서 자꾸 바깥으로 나가면 자신의 안살림(수행)이 빈약해지기 때문에 이것 또한 멀리하고 싶단다.

혜국 스님은 석종사에 금봉선원과 시민선방을 열었으며, 부산의 홍제사에도 시민선방을 남국선원에는 무문관과 시민선방을 열었으니 화두 참선법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는 셈이다. 제주도의 남국선원 불사가 끝나고 나서 혜국 스님도 일 년을 기약하고 유월 초하룻날 무문관에 들어갔다. 무문관에는 7개의 독방을 마련하여 일곱 분의 수좌들이 스스로를 가두고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혜국 스님이 무문관에 들어가자 맏상좌가 바깥에서 문을 잠갔다. 작은 문을 통해 하루 한 번 공양이 들어가고 나갈 뿐 외부와는 철저히 차단되는 것이다.

“무문관의 방에는 시계도 달력도 없어요. 한 석 달쯤 지나가면 사월이 되었는지 오월이 되었는지 달을 잊어버립니다. 날마다 똑같은 날이니까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산중에서 살았으니 조그마한 창으로 날아 들어오는 향기로 세월을 알 수 있어요. 찔레꽃 향기가 나면 5월이 다 가고 있구나, 치자꽃 향기가 나면 유월이 되었구나, ‘ 삐~삐~삐~’하고 머슴새가 울면 1월이구나, 밀화부리가 ‘화꼴~~화꼴~~’하고 노래 부르면 4월이구나 하고 알아요. 검은등뻐꾸기가 ‘데뻐뻑꾹~ 데뻐뻑꾹~’ 하고 울면 5월 말이 되었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제 나갈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스님 3일후면 나가게 됩니다’라는 쪽지가 들어오더군요.”

혜국 스님은 자연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가리켜 이미 지구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라고 한다. 컴퓨터나 텔레비전, 핸드폰 등 기계문명에 빠져 사느라고 새소리를 들으면서도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꽃향기를 맡고도 어느 계절인지 모르니 몸뚱아리는 대지를 밟고 있다할지라도 까뮈의 이방인처럼 지구에서 쫓겨난 이방인에 불과하단다.

혜국 스님은 단명하겠다는 말을 듣고 13살에 속가를 떠나 절에 들어와서 평생을 좌복 위에서 지내왔으며 앞으로도 좌복 위에서 생을 마칠 것이다. 그러한 스님에게 있어 선방의 의미는 각별하다.

“절의 선방만이 선방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선방이 되기 위한 전초기지가 바로 선방입니다. 선방에서 번뇌망상을 길들이는 자세를 지녔다면 화장실이 선방이요, 설거지를 하는 부엌이 선방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런 바람을 일으키고 교육을 시키는 곳이 바로 선방이 되어야 해요.”

스님은 참선수행이 무조건 수승하다는 말씀 대신 근현대에 쏟아진 도인들-경허 스님, 만봉 스님, 경봉 스님, 전강 스님, 성철 스님 등등-을 통해 보더라도 그 수승함을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였다. 혜국 스님은 천만 불자 중 삼백만 불자라도 각 가정을 수행처로 만들어서 기도하는 만큼 참선을 한다면 참선은 일반적이 될 것이라 하였다. 또 각 가정에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10분만이라도 온 가족이 모여서 참선을 하고, 오늘 내 가족에게 한 말들이 부드럽고 온화하였는지 어떠하였는지를 돌이켜 보고 반성하기를 권하였다. 이렇게 하다보면 가정의 분위기가 변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불교가 달라질 것이며 자연스럽게 화두 참선법이 온 중생들에게 전파가 될 것이라 한다.

화두 참선은 상근기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하는데 어째 아무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허공이 옛날 허공 그대로 이듯이, 사람들의 근기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은 쾌락을 쫒아가고 쉬운 길을 가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려운 길을 가겠다는 각오가 얼마나 굳건한지가 중요하지 원래 타고난 근기는 없어요. 지금 내가 잘못 가고 있구나, 이제 내 마음을 다스려 보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가 바로 상근기입니다.”

내 마음이 몸뚱이의 쾌락을 쫓아서 내려가는 길로 질주하면 하근기요, 맑은 정신문화를 향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그것이 바로 상근기가 되는 것이다. 근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은 연기법과도 상통하는 말이다.

“내 몸 안에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천하 진미가 있어도 천하 황금이 있어도 불평불만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행복은 십만팔천 리는 도망간 것이지. 그런데 매사에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을 가진다면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밤새 잠을 자고 있을 동안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밤새도록 자지 않고 우리가 뿜어낸 탄소를 받아들이고 그 대신에 산소를 공급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맑은 공기를 제공해 줍니다. 아침에 깨어나면 ‘내 형제자매여 나는 어젯밤에 잠을 잤는데 당신은 나를 살리느라고 밤새 공기를 정화시켜주었습니다.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공기를 정화시켜 주고 하늘이 비를 내려주고 해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우주를 지탱하는 지수화풍을 가리켜 혜국 스님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불렀다. “화두 드는 시간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에게 가장 진실하게 공양하는 시간이요, 세상의 맑은 기운을 도우는 시간이며, 엔트로피의 증장을 더디게 하는 시간이다” 고 생각하면 선방에 안도록 인연 지어 준 스승님을 비롯하여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단다.

지수화풍을 형제자매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마음자리, 작은 것에 아니 당연한 것에도 감사의 말을 던질 줄 아는 그 마음자리가 바로 깨달음의 자리임을 혜국 스님은 가르쳐 주셨다.

혜국 스님은
1948년 제주도에서 출생. 13세 해인사로 출가하여 일타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69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해인사, 송광사, 봉암사, 칠불사, 수도암 등 제방 선원에서 수십 안거 성만. 제주 남국선원 ‘무문관’ 및 남국선원 개원. 부산 홍제사 창건. 충주 석종사 창건.
현재는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선원 수좌회 대표이다.
저서로는 <천수경 천수신앙>, <인연법과 마음공부>등이 있다.
문윤정(수필가 본지논설위원) |
2008-04-16 오후 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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