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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
“지금 주장자를 한 번 친 뜻은 무엇입니까? 경계를 쫓아가는 사람들은 ‘주장자를 들고 뭐하는가?’ 할 것입니다. 반면, 공부인은 주장자를 보는 마음을 취해서 ‘지금 보고 듣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화두를 들 것입니다.”
3월 30일, 서울 강남 봉은사(주지 명진) 법왕루에서는 500여 불자가 동참한 가운데, ‘새 봄맞이 선덕(禪德: 수좌들의 사표가 되는 선지식)스님 초청법회’가 열렸다. 이날 첫 번째 선덕으로 등단한 스님은 화엄사 선등선원장 현산(玄山) 스님. 필자는 4년 전, ‘4사자 3층 석탑(국보 제35호)’ 바로 옆에 있는 화엄사 견성당(일명 탑전)에서 스님을 뵌 후, 다시 한 번 스님께 참문(參問)할 기회를 가지려 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스님은 “마침 서울에서 법문할 일정이 있으니, 내려올 필요 없이 봉은사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전날 화엄사에서 올라온 스님은 이날 법회에서 지리산의 웅장한 기를 모아 사자후를 토하기 시작했다. 주장자를 들었다 내리찍으며, 법의 문을 연 스님의 법문(法門)은 부드러우면서도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다.
“산승은 지금,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둘 아닌 경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소리와 소리 듣는 자가 둘 아닌 경지를 보이려야 보일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주장자를 든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알아차릴 것 같으면 오늘 법문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이것은 경전을 잘 알아서 될 일이 아닙니다. 부사의(不思議) 도리, 생각이 미치지 않는 도리를 담고 있습니다.”
스님은 귀중한 법을 전하기 위해 가능한 쉽게 도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한 방편을 사용하며 설법을 전개했다.
“이 마음을 잘 활용하면 부처와 성인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살인자가 되기도 합니다. 착했던 한 야구 선수가 사업을 하고 여자를 탐하다 빚을 내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별 짓을 다하다가 결국 한 가족을 살해한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성인도 되고 악인도 되는 것입니다. 삼계는 불타는 집과 같아서 삼천대천 세계는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하물며 허망한 몸뚱이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스님은 사람들이 불타는 집에서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르는 삶과 죽음의 괴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태어나기 전에 어디서 왔느냐, 이것이 생대(生大)입니다. 가는 곳을 모르니, 이것이 사대(死大)입니다. ‘생사의 큰 일’(生死大事)을 모르면 참 행복을 모릅니다. 고통 없는 곳, 영원한 행복의 자리에 머물기 위해 마음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부처란 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보고 듣는 그 자리를 여의지 않으니, 이 마음을 바로 깨쳐야 합니다.”
스님은 지금 법문을 듣는 그 자리, 영원불멸한 그 자리인 ‘한 물건’(一物)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람 사람마다 한 물건이 있는데, 이것이 하늘과 땅, 허공을 집어삼켰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능히 ‘작고 미세한 곳’(隣虛)에 들어가기도 하고 능히 커서 법계를 널리 에워싸기도 합니다. 천겁을 지나도 옛이 아니고 만세에 뻗쳐있어도 항상 지금 이 마음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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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없어서 보기 힘들어 찾으려고도 하지 않지만, 모양 없는 이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냅니다. 뭇 묘함을 다 갖춘 이 마음자리가 백천 세계의 바탕이 됩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사람이 깊이 잠들면 아무 것도 못 느낍니다. 이 하나가 깨어날 때 모든 게 깨어납니다. 이 한 생각 안에 천지 삼라만상이 다 갖춰져 있어요. 이 마음을 깨달으면 거기엔 나고 죽음이 없습니다. 천지 만물과 둘 아닌 만법의 왕, 마음자리를 찾는 것이 참된 인생입니다.”
스님의 법문은 자상하면서도 힘이 있다. 고비고비마다 작은 체구에서 터져 나오는 우렁찬 목소리가 그야말로 사자의 울음소리 같다.
“사람들은 이러한 마음의 이치를 몰라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갑니다. 무한공덕과 무한지혜를 갖춘 이 자리를 놔두고서 죄만 짓고 삽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마음을 알면 다 이뤄집니다. 얼마 전에 <시크릿>이란 책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는데, 이 책은 일심으로 마음을 모으면 성공한다는 비밀을 밝히고 있습니다.”
스님은 70세의 고령에 천은사 삼일암 선방에서 처음 참선해서 깨달은 호은(湖隱) 스님의 일화를 들려주며, 남녀노소 누구나 발심하면 돈오가 가능하다고 했다. 호은 스님의 사연은 이러하다.
어느 날, 혜암 스님이 혜월 스님이 한 수좌와 주고받은 문답과 똑같은 질문을 성월 조실스님께 드렸다.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騎牛覓牛)’는데, 그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성월 스님이 대답했다.
“그대가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니, 그 찾는 소는 그만두고 탄 소나 이리 데리고 오너라.”
혜암 스님은 말이 막혀 어리둥절하여 앉아있었고, 여러 수좌들도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그런데, 그때 참선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늦게 공부를 시작한 호은 스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덩실덩실 추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대중스님들은 몰라도 나 혼자만은 알았습니다. 탄 소를 잡아 대령하였으니 눈이 있거든 똑바로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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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 스님은 이와 같이 법문 내내 선(禪)을 강조하면서도, 지혜와 자비를 갖춘 보현행의 중요성을 설하기도 했다.
“악인도 다 해탈케 해주는 대비심, 골고루 내 몸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부처입니다. 번뇌를 끊지 않고도 마음자리가 드러나는 법문이 깨달음의 세계를 직설(直說)한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입니다. 이 마음을 보현행원을 실천하듯이 잘 쓰면, 상상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스님은 ‘보현행원품’ 게송을 읊고 난 후, “어서 빨리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마음공부를 하시기 바란다”며 설법을 마쳤다.
다음은 법회가 끝난 후, 운하당에서 가진 스님과의 문답이다.
“꿈도 없이 깊이 잠들었을 때는 의식이 작동하지 않는데, 참으로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까?”
“잠도 꿈도 없을 때 일각주인공(一覺主人公)은 어디서 안신입명(安身入命) 하는고? 이 공안에 대답할 수 있어야만 아뢰야식이 깨지는 거야. 중생심의 근본인 제8 아뢰야식이 녹아 본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필자가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깊은 잠을 자면서도 항상 깨어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잠을 잘 때 코를 골면서도 코고는 소리가 들려. (각성(覺性)은) 항상 깨어 있어.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면 성품이 드러나 저절로 계를 지키게 되지. 성품은 계가 본래 구족된 자리거든.”
“조사스님이 말한 좌선의 참뜻은 무엇입니까?”
“‘좌(坐)’는 일체경계에서 상(相)을 여의는 것이지. ‘선(禪)’은 성품자리가 항상 뚜렷한 것이고. 성품이 온전히 드러나면 일체현상에 무심하되 늘 깨어있게 되지.”
스님은 인터뷰가 끝난 후, 30년 만에 물어물어 찾아온 한 보살을 만났다. 박정숙(64, 서초구 신원동)씨는 30년 전, 봉암사에서 산후 합병증으로 사경을 헤매던 자신을 약초를 먹여 살려준 현산 스님을 어렵게 찾은 것이다. 선(禪)의 달인(達人)은 지혜와 자비를 갖추어 마침내 저자거리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일승(一乘)보살임을 확인한 감동 깊은 자리였다.
현산 스님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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