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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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난 것이 뭐꼬? 하면 화 사라진다”
선지식을 찾아서-영흥 스님(진천 불뢰산 불뢰굴 주석)
충북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 지구머리마을에 위치한 만뢰산. 이곳에는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가 기도하던 터가 있다. 진천에서 들어가다 큰 저수지를 만나 물이 흘러들어오는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만뢰산 아래 마을에 ‘지구머리 절’이라고 불리는 작은 절이 있다. 작은 암자는 불뢰굴(佛賴窟)이란 이름이 있지만, 마을과 하나가 되어 보금자리를 편 까닭에 절이라고 한눈에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원래 만뢰산은 임진왜란 때 만 명의 백성이 피난을 와서 모두 목숨을 건진 일화에서 비롯됐다. 산이 사람에게 베푸는 덕이 어디 만 명에만 그치겠는가. 하지만 그 공덕으로 산은 만뢰산(萬賴山)이란 이름을 얻었고, 영흥 스님이 이곳 토굴에서 정진하면서 다시 불뢰산(佛賴山)이란 명칭을 하나 더 얻었다. 스님은 이곳에 머물면서 부처님 은혜를 입어 공부의 큰 전기를 마련했기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 수좌스님들과 재가 선객들에게 참선을 지도해 온 영흥 스님을 뵌 것은 5년 전인 2003년. 스님은 ‘참사람(無位眞人:불성) 운동’으로 선의 대중화에 기여한 서옹(西翁, 1912~2003) 대종사의 인가(認可)를 받은 분이었다. 출가한지 40여년의 세월동안 결제철에는 제방선원에서 안거하고 해제철에는 깨달음의 빛을 감추고 세속에서 교화를 펼치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필자는 한 출판사에서 스님을 우연히 뵌 후 조계사, 공주 금강변, 인사동 찻집 등에서 수시로 법문을 들을 수 있었다.

무자년, 해를 넘겨 스님을 뵈니, 스님은 공부 점검부터 하신다.
“요즘은 어떻게 공부하십니까?”
“네, 다라니 정진을 좀 하고 있습니다.”
“무슨 수행을 하든 ‘이뭣고?’로 돌아가야 합니다.”

스님의 관심사는 늘 수행자의 본분사(本分事)를 일깨우는 데 있다. 인연 따라 이 곳, 저 곳의 선객들을 만나 대화를 통해 가르침을 주다 보니, 불뢰굴에 머무는 시간이 오히려 적을 정도다. 수행자가 한 곳에 머물러 안주하다 보면 자만심과 나태함이 생겨서일까.

“이제는 좀 편안히 머물며 법을 펴시는 게 어떻습니까?”하고 여쭈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머무는 곳마다 진여실상(眞如實相)이요 해탈입니다. 풀잎마다 도솔천 내원궁이요, 돌멩이마다 구품연화대(九品蓮華臺)입니다.”

이쯤 되면 모든 질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계속되는 스님의 말씀.
“삶 자체, 사는 모습 그대로가 수행이요 본분사를 실현하고 누리는 것이지만 확실한 돈오에 이르기까지는 ‘본래의 나가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쉼 없이 나아가다 보면 생과 사, 부처와 중생 등 일체를 초월한 본래의 나, 그리고 그 ‘나’마저도 초월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와 동일시가 이뤄질 때 양변과 단견이 하나가 되어 자유자재로 본성을 쓰고 누리는 입장이 됩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다 보면 조그만 견처에 안주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 데 만족하거나, 인과를 무시하고 막행막식하거나, 도인을 자처하여 스승 노릇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늘 머무는 바 없는 자리에서 끝없이 초월하는 불퇴전의 자세가 수행자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스님은 공부에 힘을 얻은 수행자들은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잠이 꽉 들었을 때, 어떤 것이 나인고?” 하는 공안을 들어보라고 권한다. 수행과정에서 광명을 본다든지 하는 이러 저러한 체험이나, 화두가 타파된 듯한 느낌이 들 때는 이와 같은 공안으로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것. 즉 성철 스님이 강조했던 숙면일여(熟眠一如)의 관문을 실제로든, 공안으로든 해결해야만 확철대오하여 참된 자유를 얻는다는 설명이다.

역사상 수많은 도인들이 ‘이치를 깨친(理入)’ 후에 ‘언행일치의 부처행(行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에 안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선 수행에 있어 ‘나는 얻은 바가 있다’는 생각으로 정진을 중단하고 머무는 순간, 향상일로(向上一路:끝없이 초월하는 깨달음의 길)는 종언을 고하고 만다.

그래서 스님은 견성(見性) 이후 깨달음을 보호하고 지켜가는 공부인 보임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깨칠 때는 일체 공부가 다 된 것이지만, 계속 여여부동하게 지키고 쓰고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견처(見處)와 견행(見行)이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어묵동정, 꿈속에서나, 잠속에서나, 죽음에서나, 삶에서나 영겁도록 자유자재하게 꼭 맞아야 합니다. 구경각을 이루고 견성성불이 되고 견성본불(見性本佛)이 되어 이를 지키고 쓰고 누린다 해도 정진을 놓아서는, 공부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스님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수행자의 체험이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곤 한다. 그러면 그 수행자는 큰 절의 조실스님이나 선원장스님들이 해결해 주지 못한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해 주었다며 감격해 하곤 한다. 자연스러운 즉문즉답(卽問卽答)으로 명쾌한 지도점검과 수행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실참과 투철한 문제의식, 자기점검에 솔직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권위의식도 없이, 세간과 출세간에 상관없이 법담을 주고받는 것은 당신의 구도과정이 그만큼 치열했기 때문이리라.

21세에 망월사에서 우연히 친견한 춘성 선사의 벽력같은 고함(喝)소리에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확인했다는 영흥 스님은 1974년 백양사에서 서옹 스님을 은사로 수계득도한 뒤 청담, 벽초, 혜암, 전강, 경봉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을 두루 참문해 법거량을 했다. 지난 해 펴낸 <해와 달을 띄우고 산과 물을 펼친다>는 이러한 현대 고승들과의 불꽃 튀는 법거량과 스님의 오도(悟道) 체험 등을 밝힌 구도기로 화제가 되었다. ‘해와 달을 띄우고 산과 물을 펼친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스님의 선어록은 독창적이고도 생동감 있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산과 물을 펼친다’고 하는 스님의 가풍은 성철 스님의 법어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숭산 스님의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는 법문과 비견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경지는 마음이 깨끗한 거울과 같게 되어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진리 아닌 것이 없는 진여실상의 세계를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는 경계는 진여를 생활 속에 올바로 수용(受用)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산을 세우고 물을 펼친다’는 것은 진여실상을 깨달아 자유자재로 누리고 쓰는 묘용(妙用)의 단계로 볼 수 있다. 물론 이상 세 가지 법문에 우열이 있다고 분별하면 망상이다. 다만, 중생교화를 위한 보살행의 적극성을 보다 강조한 새로운 안목을 눈여겨보면 되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스님은, 일상 중에 화두가 잘 들리지 않는 수행자들을 위해 이런 노하우를 일러주신다.

“화날 때는 ‘화난 것이 뭐꼬?’하면 화가 사라집니다. 답답할 때는 답답한 것이 뭐꼬? 차 마실 때는 차 마시는 게 뭐꼬? 욕심낼 때는 욕심내는 게 뭐꼬? 나무아미타불을 염할 때는 염불하는 이것이 뭐꼬? 공부가 잘 안될 때는 안되는 게 뭐꼬? 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뭣고?’ 화두로 의단이 뭉쳐지게 됩니다.”

일생 생활 중에 이렇게 화두를 챙기다 보면,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뭣고?’가 심중에 가득한 날이 올 것이다. 그나저나, 눈을 통해 이렇게 신문을 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영흥(永興) 스님은

1947년 경북 울진군 울진면 연지리에서 태어났다. 21세에 망월사에서 춘성 선사의 벽력같은 할(喝)에 언하대오(言下大悟)하고, 24세에 처음 자수용삼매에 들었다. 1974년 백양사에서 서옹 대종사를 은사 및 계사로 수계득도한 스님은 경봉, 전강, 벽초, 혜암, 향곡, 구산, 고암, 월산, 서암, 숭산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을 참문하며 법거량을 했다. 45세에 서옹 대종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받은 스님은 진천 백곡면 불뢰산 불뢰토굴에서 주석하며 인연 있는 수좌와 재가 수행자를 지도하며 보임하고 있다. 법명은 성명(性明), 법호는 후제(後濟)이다.
김성우 객원기자 |
2008-01-21 오전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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