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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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좋은 날’이 부처님 삶이지요
선지식을 찾아서-정현 스님(화림원 주지)
바람이 불자, 노란 비가 하염없이 주르르 떨어진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은행나무가 흩뿌리는 노란 비를 맞으면서 산길을 걸었다. 태화산 자락에 토굴을 짓고서 10년 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현 스님을 만났다. 화림원 입구에는 문수동자상이 있는데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는 글귀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정현 스님은 ‘날마다 좋은 날이란 부처의 날이요, 여여한 날’이라고 한다. 날마다 좋은 날이지만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들어가야 하는 날임을 강조하였다.

“자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 가능성은 내 속에 있습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신은 존재한다는 말은 둘 다 똑같은 말입니다. 존재한다고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인정하면 있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라 하지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을 근원으로 하여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래서 선공부 마음공부가 필요합니다. 공부가 수승해지면 자기 속의 부처를 볼 수 있으니 무엇이든 가능하지요.”

수행의 방편으로 그림을 그리고, 나눔과 보시를 실천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스님이시기에 스님에게 있어서는 <날마다 좋은 날>이 화두이다. 그래서인지 스님의 얼굴은 맑고 환하다. ‘장님은 아니지만 장님처럼, 벙어리는 아니지만 벙어리처럼, 귀먹어리는 아니지만 귀먹어리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냥 아무 일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밥 먹고 잠자고 공부하는 것이 날마다 좋은 날을 사는 비결이란다.

정현 스님은 참으로 우연히 산문에 들게 되었다. 십대 후반에는 철학과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때는 불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고, 단순히 수양을 위해서 친구와 함께 화엄사 탑전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금오스님의 법문을 듣고서는 ‘승려가 되어야 만이 참으로 인생의 문제가 풀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출가하였는데, 그때가 18세였다.


“전강 스님으로부터 ‘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어요. 전강 스님은 낮에는 절 살림하고 농사짓고 채전 가꾸는데 온 정성을 바치기에 저 분이 정말로 공부한 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전강 스님은 초저녁에 잠깐 한 두 시간 눈을 붙이고 새벽 내내 공부하셨어요. 밀행공부를 많이 하신 것이지요. 새벽 예불이 끝나면 제자들에게 꼭 1시간씩 법문을 해주셨어요. 일년 365일 제자들에게 법문을 해주셨으니 우리나라에서 법문을 제일 많이 하신 분이 아닐까 싶어요.”


정현 스님은 용주사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한 미국 선교사가 부모은중경이 새겨진 목판을 탁본하는 것을 보았다. 외국인들이 변상도 찍는 것을 보고서는 우리 것인데도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스님은 전국을 돌면서 경판을 찍었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탁본하기도 하였다. 정현 스님이 미국에 가서 포교를 하게 된 계기도 우리의 목판을 미국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게 되었다. LA한국 문화원과 하와이 연방정부청사에서 판화전시를 열기도 했지만, 스님의 기대만큼 미국인들은 한국판화에 관심이 없었다. 이런저런 연유로 스님은 그림을 하게 되었다.

정현 스님은 10년 전부터 ‘날마다 좋은 날’ 그림 그려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나누어 준 그림 숫자는 8만장인데 스님은 1차적으로 10만장 나누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회모임이나 개인이 그림을 청하는 곳이 있으면 나누어 준다.

“사람들이 그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할까 싶어서 내 그림을 받으려면 108배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철 스님을 만나려면 삼천 배를 해야 했는데, 나는 도력도 없거니와 자비심이 부족해서 108배만 하라고 해요.”

전쟁과 다툼이 없는 평화스러운 지구촌이 되어야 그곳에 살고 있는 중생 하나하나가 행복해진다는 것이 스님의 철학이다. 그래서 정현 스님의 그림에는 전 인류가 ‘날마다 좋은 날’ 되기를 발원하는 간절한 원이 담겨 있다.


“내 그림에는 얼굴만 있어요. 얼굴은 바로 나여. 자기가 자기를 보지 못하지만, 얼굴은 내가 드나드는 문입니다. 볼 때 보는 놈이, 들을 때 듣는 놈이 바로 나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해요. 까치소리가 바로 나이고, 종소리가 나인데 그것을 몰라요.”

정현 스님의 그림에는 전설의 새인 공명조와 물고기가 등장한다. 머리가 두 개인 공명조는 부처님 설법에도 나오는 새인데 이상적인 새이면서도 어리석은 새이다. 머리 하나가 잠든 사이 다른 머리가 맛있는 과일을 탐하여 혼자 먹어 버렸다. 그것을 알게 된 다른 머리가 불만을 품고는 독풀을 먹고 죽어버렸다는 새이다. 결국은 어리석음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정현 스님은 그림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함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문수동자는 원래 사자를 타고 있지만, 정현 스님의 그림에는 소를 타고 있다. 소를 타고 있는 문수는 깨달음의 길로 가고 있는 미완성의 문수 즉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또 문수동자의 머리는 노랗고 빨간색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그것은 현대인들의 복잡한 생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스님의 선시 중 <소유의 노예>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경책이 된다.

우리는 너무나 가진 것이 많다/가진 것이 많으니 돌보아야 할 것이 많다// 집을 돌보아야 하고/ 땅을 돌보아야 하고/자가용을 돌보아야 하고/ 애완견을 돌보아야 하고/ 지갑을 돌보아야 한다.// 이처럼 소유의 끈에 묶이어 스스로 노예의 길을 걷는다// 이들에겐 마침내 죽음이 자유를 알려온다.

그렇게 욕심을 부려보았자, 죽음이 찾아오면 모든 것을 그대로 놓고 바람처럼 가야만 한다는 것을 직시하는 것이 바로 혜안이 아닐까 싶다. 날마다 좋은 날로 사는 것이 바로 혜안이 열리는 길이요, 부처의 삶을 사는 길임에 틀림없다.

밖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다. 거위들은 꽥꽥 소리를 내지르면서 스님의 뒤를 쫓아가고 있다.

정현 스님은?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전강 대선사를 은사로 득도. 부산 동래 범어사에서 고암 스님을 전개화상으로 구족계 수지. 인천 용화사를 비롯하여 여러 선방에서 십오안거 성만. 1980년에 도미하여 LA 오렌지 카운티 정혜사 주지, 오리건 포트랜드 보광사 주지를 역임. 캘리포니아 금강선원 선원장 역임. 1996년부터 화림원에 칩거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날마다 좋은 날 우담바라’전, ‘날마다 좋은 날 염화미소’전 등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글ㆍ사진=문윤정(수필가 본지논설위원) |
2007-11-28 오전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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