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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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만물이 전하는 무설법문 들어야”
선지식을 찾아서-원산 스님(백련정사 감원)
벌써 일 년의 막바지인 11월. 이맘때가 되면 마음은 괜스레 분주해지고 분명하게만 보이던 시작과 끝이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든다. 시작과 끝을 따져 물을수록 우리 모두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근원을 묻는 물음 앞에 서 있음을 절감할 뿐이다. 시작과 끝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맘때쯤, 나무들은 무성한 잎을 떨구며 무시무종의 소식을 전한다.

통도사 산내 암자 백련정사로 향하는 길, 암자 입구에 우뚝 선 600년 된 은행나무를 보자 4년 전의 ‘그날’이 절로 떠오른다. 그날은 바로 2004년 3월, 원산 스님이 3년간의 죽림굴 무문관을 회향하던 날이었다. 스님의 회향소식을 접하고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전국에서 1000여 명이 넘는 대중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법문을 하지 않았다.

“그날 법문을 하시지 않아서 더 멋있었습니다. 법문을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대중들이 일제히 삼배를 하고 흩어지는데 스님께서 말로는 법을 설하지 않았지만 대중들은 각자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느끼고 돌아서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 남순동자무문문(南巡童子不聞聞). 설한바 없이 설하고 들은 바 없는 듣는 그런 순간이었겠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도 무상을 설하고 있듯이 만물이 모두 설한바 없이 설하고 우리는 또 그 법문을 들은 바 없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생명체가 부처님 가르침인 무상을 설하고 있어요. 봄이 되면 푸른 잎이 나지만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겨울이 되면 떨어지고 형상이 있거나 없거나 무상하지 않은 게 없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전부 생멸하고 있고 현상 경계는 무상하단 말이죠. 그러나 불교는 나고 죽음이 없는 열반락을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상하지 않은 것, 생멸이 없는 자리, 그 자리를 알려고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스님에게 불교는 인류를 갈등과 불행으로부터 구할 유일한 대안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산의 정상처럼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주는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아무 걱정이 없어요. 철학, 종교, 과학, 윤리를 총망라한 최고의 가르침인 불법을 만났을 때 간절하고 지극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이 세상 올 때도 빈손으로 왔고, 또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명심하고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극한 수행을 통해 지혜를 개발해야죠. 또한 육바라밀의 시작인 보시를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풀면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기쁨을 느낍니다. 진정한 불자라면 물질이든 법이든 나눔이 생활화되어야 합니다. 지혜와 복덕을 두루 갖춘 부처님을 닮아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불자라 할 수 있겠죠. 산 정상에 올라서야 사방이 다 보이듯 차근차근 공부도 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아 지혜와 복덕을 두루 갖춘 부처님처럼 되는 것, 그것이 불교이고 불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열아홉 살, 극락암에서 경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스님의 길은 언제나 ‘생멸이 없는 그 자리’를 향하고 있었다. 1975년 토굴에서 정진하겠다는 생각하나로 백련정사 불사를 시작했다. 다 허물어져가는 집 한 채에 전화도 전기도 없었다. 불사를 하다 보니 토굴터가 발견돼 조그맣게 토굴을 하나 지었다. 그곳이 스님이 3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무문관을 한 죽림굴이다.

“교육원의 기반만 닦으면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임기를 남겨놓고 사표를 냈는데 7개월을 공석으로 두고 몇 번이나 찾아오고 그랬어요. 그래도 나는 은사스님 영향을 받아서 수행하겠다는 원이 늘 마음에 있어서 무문관을 시작했던 겁니다. 스님의 근본은 수행입니다.”


스님이 무문관에 들어가 있는 동안, IMF가 터졌다. 그리고 조계종 사태로 이만 저만 시끄럽지 않았다. 갈등에 휘말리지 않고 어차피 불사를 할 수 없었던 시점에 무문관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복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무문관을 회향하고 곧바로 스님은 갈등의 중심에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됐다.

“토굴에서 나오니 내가 나서서 통도사의 갈등을 풀고 정상화시켰으면 하는 바람들이 컸는데 그걸 외면하지 못해서 그리 된 거지요. 내가 주지를 꼭 해야 한다고 스님들이 단식까지 하고 그때는 정말로 마음이 괴로웠어요. 통도사의 안정을 바라는 마음하나로 망신도 무릅썼지요. 힘든 시기였지만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요. 내가 주지가 안 된 것도 복이라면 복이지요. 수좌로 살겠다는 내 원을 놓치지 않고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스님은 현 주지스님이 경험도 많고 오랜 갈등으로 어려워진 사중을 잘 수습할 수 있는 적임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중 화합만큼이나 스님을 기쁘게 하는 소식이 최근에 또 하나 있었다. 바로 통도사의 앞산을 파헤치고 민둥산으로 만들어 물의를 빚었던 초산유원지 개발을 막아낸 것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초산유원지 개발반대 운동에서 모든 사람들이 중도 포기했을 때 스님 혼자 셀 수도 없는 공문과 진정서를 보내고 전국의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싸움을 이어갔다. 결국 7년 만에 통도사와의 협의 없이는 더 이상 개발하지 않겠다는 시의 입장을 공문으로 받았다.

“이 산중에서 평생을 중노릇했는데 앞산도 못 지키면 부끄러워 어쩌겠어요? 통도사의 앞산이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개발을 하겠다고 산을 깎아낸다는 생각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고 입안자들도 인정을 해요. 영축산을 지키다 죽겠다는 각오로 끝까지 했더니 해결이 된 것이죠.”

타협이 없는 확고한 스님의 의지 앞에 양산시도 손을 든 것이다. 통도사 임회에서도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합의를 봤다. 향후 통도사에서 땅 사기 운동을 벌여서라도 개발만은 막아야 된다는 것이 원산 스님의 생각이다.

요즘 스님은 마음이 편하다. 초산유원지 개발도 막아냈고, 통도사의 오랜 갈등이 마무리되어 문중 화합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마음이 너무 편해 몸이 옆으로 자라나서 걱정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백련정사에 온 지 33년. 만일기도를 봉행했다는 역사적인 기록과 함께 백련정사라는 사명이 발견돼 백련암을 백련정사로 개명했다. 최고의 불사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불사를 진행했다. 구하기도 어렵다는 금강송으로 기둥을 세우고 단청도 최고 수준이다. 사람은 바뀌지만 도량은 후대까지 남아 법을 전하는 공간이 될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불사도 마무리되고 꾸준히 이어져온 정기법회로 수행을 우선으로 한 신도들의 공부도 익어가고 있다.

백련정사는 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스님은 또 다른 변화를 꿈꾼다. 스님에게 변화란 결국은 수행과 닿아 있는 것이다. 젊은 스님도 하기 힘들다는 3년 무문관을 홀연히 시작했던 스님이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스님은 말을 아꼈다. 그러나 “기대하시라! 개봉박두”라는 우스개 소리로 조만간 수행을 위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변화를 스스로 감행할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암자를 내려오며 스님이 수행자의 삶으로, 또 수행의 향기로 설한바 없이 설하는 무설 법문을 다시 한 번 들려 줄 것이라는 기대를 지울 수 없었다.

원산 스님은
인터뷰 도중 마당에 부모 손을 잡고 절을 찾아온 아이들이 눈에 띄자 갑자기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엉거주춤 스님 곁으로 모여든다. 방으로 들어갔다 나온 스님의 손에는 상자가 들려있다. 그곳엔 형형색색의 염주와 볼펜이 들어 있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색깔을 고르게 하고 선물로 건넨다. 도량이 금방 아이들의 웃음꽃으로 환해진다.
‘수행’과 ‘포교’가 출가자의 근본이라고 늘 강조해온 스님이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절과 스님을 친근한 곳으로 느끼도록 해주기 위해 마련한 작은 선물이다. 또한 스님은 틈나는 대로 붓글씨로 가훈을 적어 가족단위로 찾는 이들에게 건넨다. 가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가훈을 한글로 적어 마음에 새기게 하는 것이다.
1944년 통도사 앞산 자락에서 태어난 스님은 64년 극락암에서 경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직지사 통도사 강주를 지냈고 관응스님으로부터 강맥도 전수 받았으며 통도사 극락선원, 송광사 선원 등 제방선원 정진, 3년 무문관 등 수자로서 본분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짚단이 훨훨 타다 사그라지듯 그렇게 살다 가고 싶다는 스님. 깊어가는 가을, 수행의 불꽃을 지피기에 여념이 없다.
천미희 객원기자 |
2007-11-20 오전 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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