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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철야정진에 동참해 보니, 역시 집에서 혼자 하는 정진보다 훨씬 수월하다. 도반들이 정진의 절반이상을 해준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뭣고?’ 화두와 함께 40분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이어 선원장 법현 스님이 참선법문을 시작한다. 지난 5월, 서울에서 하남으로 선원을 이전한 뒤 처음 갖는 철야정진이다 보니, 낯선 불자들이 적지 않다. 필시 화두 드는 법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수행자들이 있을 터이기에, 스님은 ‘명경(明鏡)’을 진여자성(眞如自性)에 비유하며 참선법을 일러준다.
“화두는 일체 망념이 다 떨어진 진실한 마음이므로 성성적적(惺惺寂寂: 또렷하고 고요함)해야 합니다. 화두를 들고 명경과 같이 밝고 고요한 마음의 곧은길로 가는 것이 ‘성성적적’인 것입니다. 마음거울과 화두의심이 딱 하나가 되면, 세상만사가 거울 앞을 스쳐지나가는 그림자가 될 것입니다.”
본래마음 즉, 진여자성은 ‘크고 둥근 거울(大圓鏡)’처럼 빛나서 분명하게 온 세상 사람마다 본래 구족하여 있지만, 한 생각 어긋남으로 인해 만 가지 모양으로 분별하여 나타나게 된다. 한 생각 어리석음으로 명경 위에 비치는 영상을 쫓아가지 않고, 화두 일념으로 밝게 빛나는 명경을 회광반조 하는 것이 바른 공부 길이다. 때문에 스님은 “참선공부의 핵심은 헤아려 생각하지 않는 도(道)에 통달하는 것”이라 말한다. “마음이 태허공(太虛空)처럼 크게 비어서 본래 한 물건도 없음을 알면 헤아려 생각하는 주관과 생각하는 대상의 경계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고, 착하고 악함도 없다”는 것이다.
“우주와 인생의 근본인 마음을 밝혀 자성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본래 청정한 자기의 진여심경(眞如心鏡)만 생각할 뿐, 마음거울에 비치는 경계와 남의 크고 작은 허물의 겉모습인 영상(影像)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진여본성은 본래 청정하여 오염이 없는 줄 알면 경계를 대하여 일어나도 거울 위의 영상과 같아서 집착할 필요도 없고 끊을 필요도 없다. 여기에 무슨 끊을 망상이 있고, 자라날 보리(菩提)가 있을 것인가. 신수 대사가 “때때로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이 끼게 하지 말라”고 한 반면, 육조 스님은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어느 곳에 티끌이 일어나리요(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한 게송이 바로 이것이다.
법현 스님은 생활 속에서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수행하는 법을 자세히 설한 후, 이번에는 보너스로 몽산 선사의 <휴휴암주 좌선문(休休庵主 坐禪文)>을 원문으로 강독해 준다. 어느 절에서도 듣기 힘든 선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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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경계 흔들지만 흔들리지 아니하고, 내면세계 고요하고 동요 없음이 ‘좌(坐)’이고, 회광반조(廻光返照)로 언제든지 내면세계 돌아보고, 법의 근원 사무침이 곧 ‘선(禪)’이다.”
늘 명경 자리에 머물러 회광반조하면 마음거울에 비치는 그림자(경계)에 속지 않아서 분별ㆍ망념이 없는 평상심으로 살 수 있다는 법문이다. 몽산 선사는 이렇게 좌선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부처님의 선정(那伽大定)’에 들어 진여묘체(眞如妙體)에 계합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부처님의 선정이란 정(靜)과 동(動)이 본래 없고, 진여묘체에 들어가면 불멸이고 불생이라. 보되 보지 아니하고 듣되 듣지 아니하며, 비어있되 비지 아니하고 있되 있지 아니하여, 크기로는 밖이 없는 태허계를 둘러싸고, 작기로는 안이 없는 밀밀계에 들어가니, 신통지혜 광명수량(光明壽量) 큰 기틀(大機)과 큰 작용(大用)이 무궁무진하여 헤아릴 수 없느니라.”
진여자성과 하나 되면, 삼계 속에 있으면서도 삼계를 벗어난 대자유인의 삶을 살게 된다. 한 물건도 없는 본래의 마음자리(大機)를 깨닫고,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수 있다(大用)면 일체만법이 자성을 여의지 않았음을 완전히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1시간가량의 참선법문이 끝나자, 다시 좌선이 50분 간격으로 이어진다. 새벽 3시 30분, 아침예불에 이은 108배 참회정진까지 조는 사람 하나 없이 신심나게 철야정진을 회향한 것은 법현 스님의 마음거울 법문과 1대 1 점검이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이 분명했다. 길을 알고 가느냐, 모르고 가느냐에 따라 서울 가는 길도 삼천포로 빠지고 만다. 성철 스님이 수좌들을 상대로 백일간 법문을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선(禪) 도리를 알고 화두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법현 스님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출가 전부터 나름대로 참선을 해 온 법현 스님은 서옹 대종사의 인가제자인 임제선원 조실 종성 스님을 시봉하며 비로소 제대로 된 참선 지도를 받았다. 30여년의 수선정진 끝에 ‘파자소암(婆子燒庵: 노파가 암자를 불태우다)’ 공안을 타파하고 종성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그는 스승의 뜻을 이어 참사람 결사를 주도하며 임제종지(臨濟宗旨)를 펴고 있는 것이다.
임제선원은 매주 금요일 오후 8~10시 참선실수, 매월 첫째 일요일 오전 11시 유마법회, 둘째 수요일 마야법회, 넷째 일요일 법조인법회(임제회)를 연다. (031)792-8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