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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諸法)은 환상(幻)과 같고 꿈과 같으며 물속의 달과 같고, 아지랑이ㆍ건달바성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일체법은 오직 자심(自心)을 분별한 것임을!”(대승입능가경)
<능가경>은 달마 대사가 중국에 선종을 전할 때 가져온 경전이다. 달마 대사는 2조 혜가 대사에게 4권본 <능가경>을 주면서 “내가 보건대 중국에 오직 이 경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의지하여 실천한다면 그대는 반드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속고승전)라고 했을 정도로 선종의 심요(心要)가 담긴 경이다. 이후 5조 홍인, 6조 혜능 대사 때부터 복잡하고 난해한 <능가경>이 <금강경>으로 대체되면서 관심도가 약해졌지만, 달마 대사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부해야 할 경이다. ‘토끼 뿔’이니, ‘거북 털’이니, ‘돌 여인’이니 하는 격외어(格外語)의 출전이기도 한 <능가경>은 ‘여래심지(如來心地)의 요문(要門)’이자 ‘최상승선의 지침서’로서 선 수행자들의 필독서인 까닭이다.
9월 15일 오후 2시, 조계종 총무원 국제회의실에서는 ‘교(敎)에 의지하여 선의 종지를 깨닫는다(藉敎悟宗)’고 하는 달마선의 소의경전인 <능가경>에 대한 강의가 드물게 열렸다. 조계종의 대강백인 각성 스님(부산 화엄사 회주)이 김천 김용사에서 <능가경>을 강의한 지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이번 법회는 공부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불교서울전문강당동문회 선교연구모임(운영위원장 법경)이 주관한 이번 강좌에는 법랍 15년 이상의 중진스님과 재가 학자ㆍ수행자 등 100여명의 수강생들이 1년 동안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2~5시 <능가경> 강의를 통해 교선일치(敎禪一致)의 순선(純禪)을 공부하게 된다.
이날 삼귀와 반야심경, 법경 스님의 인사말, 교육원장 청화 스님의 축사 등으로 이어진 입제식이 끝나자, 각성 스님이 스님들의 공부 열기를 찬탄하며 강의를 시작한다.
“달마 대사는 2조 혜가 대사에게 선법을 전할 때 ‘<능가경>과 <금강경>은 나의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4조 도신 대사 때까지 이 경을 수지하고 다니면서 선종의 심요(心要)로 삼았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수행의 근원을 여기에서 찾았습니다.”
선과 <능가경>의 밀접한 관계로 초기의 선종은 능가종(楞伽宗)이라고까지 불리워졌다. 하지만 유식(唯識)을 알아야만 이해가 될 정도로 난해한 까닭에 5조 홍인 대사 때부터는 <금강경>이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럼에도 <능가경>은 <화엄경><법화경><능엄경><원각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승(一乘)경전으로서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대승 논(論) 중의 왕으로 꼽히는 마명 보살의 <대승기신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대승경전 100권의 핵심을 망라한 <대승기신론>의 소의경전을 <능가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능가경>이란 뽕잎을 먹고 <기신론>이라는 비단이 탄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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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마음을 담은 8만 대장경이 있지만, 달마 대사는 ‘나의 마음을 알려면 <능가경>만 보면 된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 중요성을 알만하다. 각성 스님은 “어려운 <능가경>을 요달하면 다른 경전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공부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스님은 <능가경>의 여래장(如來藏: 부처가 될 씨앗)사상과 아뢰야식사상이 <대승기신론>과 선종의 사상적 근원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여래장이란 불성의 다른 말로서, 중생의 번뇌 가운데 덮혀 있으면서도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고 본래부터 청정하여 변함없는 깨달음의 본성을 말한다. 선종의 ‘견성성불론’이 여래장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어 각성 스님은 8가지 마음의 작용(八識: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6식과 제7 말나식, 제8 아뢰야식)을 설하고, 세 가지 자성(自性) 즉 변계소집성(망상으로 이뤄진 것, 妄有)ㆍ의타기성(인연이 만나 일어나는 것, 假有)ㆍ원성실성(진여인 불성자리, 實有) 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즉, <능가경>이 강조하는 것은 중생의 어리석음의 근원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쌓아 온 습기(習氣)로 인해 모든 것이 오직 자기 마음의 드러난 바임을 알지 못하고 일체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 의식의 본성이며, 이것을 철저하게 안다면 주ㆍ객관의 모든 대립을 벗어나 무분별의 경계에 이를 수 있다는 법문이다.
이러한 도리를 각성 스님은 이렇게 강조했다. “부처님의 49년 설법의 골자가 <능가경>의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대상이 오직 인식일 뿐) ’이란 구절에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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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능가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모든 이념과 분별의식이 ‘오직 각자의 마음에서 스스로 일어난 것(唯自心所現)’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부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쉽게 상대적인 관념에 치우쳐서 분별심을 내므로, 이를 벗어나야만 열반 즉, 고통의 소멸과 마음의 평정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참선 등을 통해 분별심이나 들뜬 마음을 안정시켜야만 바른 지혜가 나타나서 진실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능가경>의 심지법문인 것이다.
현수법장 대사의 <입능가심현의(入楞伽心玄義)>를 교재로 한 이번 강좌는, 선종의 소의경전임에도 <금강경>에 비해 소외되었던 <능가경>의 유심(唯心)이며 일심(一心)인 선지(禪旨)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02)735-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