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녘 하늘은 가을 단풍처럼 붉게 타오른다. 산과 산들이 어깨동무하고 금방이라도 안양루를 향해 달려올 것만 같다. 이런 풍광 속으로 어둠이 스며든다. 법고 소리는 애잔함을 남기면서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완전함 어둠이 무량수전을 감싸고 돈다. 이백 명이 넘는 대중들은 정렬하고서 근일 스님의 법문을 기다린다. 한달에 한 번 열리는 귀한 참선법회인만큼 멀리서 온 선객들이 많다.
근일 스님이 법상에 오르고 죽비소리와 함께 잠시 참선에 들었다. 온 우주가 선에 잠긴 듯 하다. 참선에 든 근일 스님의 모습이 너무나 거룩해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여기에서는 일체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셔터는 1초보다도 짧은 120분의 1초에 끊어졌지만 그 시간은 억겁의 시간만큼이나 길게 느껴진다. 근일 스님은 주장자를 들어 보이면서 할을 한다. 청천벽력 같이 내리치는 할에 억겁의 업이 녹아내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저 깜짝 놀랄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보배를 소중히 여기나/아 찰나적이로다/나는 잠깐만이라도 고요함을 귀하게 여기도다/많은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만/고요함은 진여의 성품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 |||
근일 스님은 방거사의 게송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법문을 열었다.
“방거사는 과거시험 보러 가다가 행각승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과거시험을 포기하고는 그 길로 석두선사 회상에서 공부했어요. 방거사는 본래 부호인데 깨닫고 나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은보화를 서강에 갔다 버렸어요. 이것을 본 뱃사공이 ‘아까운 재물을 왜 버립니까?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뉘어주면 좋지 않습니까?’하고 말하니, 방거사는 ‘탐하지 않는 것이 남에게 베푸는 것보다 수승하다’고 대꾸했습니다. 여러분, ‘어리석지 않는 것이 좌선보다 수승한 것이요, 성내지 않는 것이 계율보다 수승한 것이요, 생각 없는 것이 좋은 인연을 맺는 것보다 수승하다’는 방거사의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방거사는 그렇게 많은 재물을 버리고서 평생을 무일푼으로 살았으며, 죽을 때도 생사를 초탈하여 여여한 모습을 보였기에 만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잘 자고 잘 먹으면서 시간을 보낼까 하는 사람들, 그저 밥자루 똥자루나 키우면서 세상 보내는 것이지. 내가 병원 가지 말라고 하니까 소인배들은 반발하더구만. 병은 본디 없는데 사람들이 병을 만드는 것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하면 벌써 염라대왕이 지금 부르는 소식이야. 60년도 잠깐인데 얼마나 남았다고 허송세월 합니까? 이 공부는 1주일만 해도 염라대왕이 함부로 못 잡아 갑니다.”
근일 스님은 몇 년 전 위암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스님은 평소 화두를 깨치면 생사를 여윈다고 법문을 했는데 내가 병원신세를 진다면 대중을 속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수술을 거부했다. 스님은 평소보다 더욱 정진에 매진했으며 오로지 뜸으로 자가 치료를 했다. 무서우리 만큼 치열한 수행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을 스스로 치유해 버린 근일 스님으로 인해 대중들은 수행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 |||
마마보이처럼 커서도 부모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다 부모가 죽으면 사회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가령 구걸하는 사람이나 노숙자들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8등 인생이라. 사업한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해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은행에 돈 빌려서 사업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7등이라고 봅니다. 돈이 없으면 은행에 빌려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지 하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7등이라 생각합니다. 재물도 자기 능력껏 지녀야 탈이 없어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돈을 받거나, 또 십일조를 받는 목사나 신부를 비롯하여 보시를 받는 스님들은 6등 인생입니다. 6등으로 떨어지면 불행합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밥 먹지 않는다는 백장 선사는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하지만 나는 5등으로 봅니다. 법을 잘 지키는 그런 사람도 5등이라 하니 반발할 사람도 있겠지만 끝까지 들어보세요. 시주하는 사람들은 4등입니다.”
| |||
근일 스님은 절에 보시하는 사람들은 다 살기가 괜찮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자기도 가난하면서 과일이나 곡식을 거두면 먼저 부처님 앞에 올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님이 묘각사에서 살 때 어떤 신도가 30리 길을 걸어오는데 무거운 쌀자루를 한 번도 땅에 놓지 않고 왔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때부터 시주받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줄을 알았다. 결코 공짜가 아님을 깨달았기에 그때부터 법문이라도 해서 세상에 보탬이 되고자 하였다.
“어머니 마음이 3등이여.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키울 때 그것에 대해 어떤 상도 내지 않고 어떤 것을 바라지도 않고 하듯이 무주상보시를 하는 것이 3등이여. 2등은 수행자인데 보살행을 닦는 수행자를 말합니다. 깨치고자 하면 좋아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없어야 합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도 죄악이며 살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도 나쁜 줄 몰라요. 무엇을 좋아하면 고통이 따라요. 그리고 탐심이 생기고 탐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좋아하면 음행이요, 욕심내면 도적입니다. 1등은 깨친 사람을 말합니다. 도 닦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만 깨친 것은 소용없어요. 깨쳐 가지고 온 우주를 내 몸으로 느끼는 것이지요. 보이는 것은 모두 나의 모습이요, 들리는 것은 다 내 목소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남의 즐거움이 나의 즐거움으로 남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자비심입니다. 동체대비심으로 끌어안을 때 세상은 진정한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것이 지옥입니다. 참회하지 않으면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이 몇 등 인생을 살고 있는지 헤아려보는 것조차 겁이 난다. 근일 스님의 법문이 끝나자 그제야 풀벌레소리가 들린다. 무량수전의 대중들만 법문을 듣고 환희심에 젖은 것이 아니라 풀벌레들 또한 오랫동안의 숙업을 벗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량수전 앞마당에 내려앉은 달빛은 교교하고, 대중들은 또 다시 참선에 들었다. 저 달빛과 함께 온 밤을 정진으로 보내려는 그들을 뒤로하고 안양루 계단을 내려왔다. “금생에 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방울 물도 녹이기 힘든다는 생각으로 공부해야지”라는 스님의 말씀이 자꾸 뒤돌아보게 만든다.
근일 스님은? |
1960년 은해사에서 사미계 수지. 1967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 수지. 극락선원에서 경봉 스님을, 해인사 해인총림에서 성철 스님을, 묘관음사에서 향곡 스님을, 용주사 중앙선원에서 전강 스님을 모시고 수행. 영천 묘각사에서 10년간 보림. 제9대부터 현재까지 종회의원. 고운사, 부석사, 삼보사 조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