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 신행 > 수행
뜨거운 구도열기에 ‘툭’ 오도송 터져 나올 듯
탐방-하안거 해제 앞둔 ‘운부난야’
팔공산 은해사에서 3.5km 위쪽에 덩그렇게 떠 있는 운부난야(雲浮蘭若).
팔공산 주맥이 80여리를 줄기차게 뻗어내려 지혈을 뭉쳐 놓은 곳. 좌청룡 우백호가 튼튼하게 외호하고 앞쪽에 눈을 거스르지 않는 높이로 코끼리 형상의 안산이 버티어 지혜를 지켜주는 천하에 둘도 없을 도량. 팔공산 운부암(雲浮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그림은 뙤약볕 아래 노곤해진 한가로운 풍경화가 아니라 늦더위보다 더 뜨거운 구도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선불(選佛) 도량의 진경이다.

이제 일주일 후면 하안거 해제 날. 운부난야의 선사들은 올 여름 안거에서 무슨 소식을 들었을까? 토요일 오전에 운부난야를 찾아갔다.

정갈한 도량에서는 발자국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뒤꿈치를 들어야 했다. 땀을 닦아내며 보화루에 앉으니 선계(仙界)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가 온 몸의 더위를 씻어 주었다. 정면은 보물 514호 청동보살좌상이 모셔진 원통전이고 우측은 운부난야, 선방이다. 왼쪽은 요사채인 셈인데 벽에 달마 대사가 그림으로 화현해 객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달마 스님은 찬선 중. 선원 스님들도 공부 중. 참배는 조용히….’

딱, 딱, 딱!
선방에서 죽비소리가 들린다. 슬쩍 다가가 들여다보니 눈빛 형형한 선사들이 조용히 움직이는데 동작이 물 흐르는 듯하다. 일어나 좌복을 반듯하게 챙겨 놓고 뒷문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원통전으로 들어가는 선사들의 행렬. 열 두 분이다. 사시 예불시간인 것이다. 선방 대중들은 새벽 예불과 저녁 예불을 참선으로 대신하고 사시 예불만 모신다. 어느 선방이나 마찬가지다.

밖에서 카메라를 들이대자 몸 빠른 선객 한 분이 달려와 제지했다. 말은 하지 않고 다만, 손짓으로 “사진 찍지 마시오” 하는 듯 했고 눈빛으로는 “한 번만 더 찍으면 가만 안 둘 테다” 하는 것 같았다.

근엄하게 이어지던 사시예불이 끝나자 선사들은 다시 물이 흐르듯 움직였다.

점심공양을 하고 포행시간을 즐기는 두 시간. 선사들은 모두 각자 행동했지만 도량 안에서는 각자의 행동도 모두 하나의 흐름 속에서 지어지는, 전체 속의 각자일 뿐이었다.

커다란 목탁이 울린 것은 오후 2시 정각. 스님들은 호미와 괭이 등을 들고 마당가로 모였다. 잡초를 뽑기에 여념이 없었다. 카메라들 들고 다가가자 역시 손사래를 친다. 소리 없는 꾸지람이 들리는 듯했다. “아, 그 사람. 사진 찍을 것 없대두….”

12명의 살림살이가 그렇게 열둘인 듯 하나인 듯 거스름이 없는 이유는 뭘까? 적게는 30안거에서 많게는 80안거(40년)를 일념정진 해 온 구참수좌들이기 때문이다. 신참선객일수록 대중이 많은 처소에서 대중의 정진력에 동화되는 것이 좋고 구참일수록 단출한 처소에서 각자의 근기를 대중에게 융화시키며 정진해야 화두를 순일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백운심처(白雲深處)의 운부난야.
‘북마하 남운부’란 말이 있다. 옛날부터 최고의 수행처 하면 북쪽에서는 금강산 마하연을 남쪽에서는 팔공산 운부암을 꼽았다. ‘영남의 3대 도량’으로는 선산 도리사와 팔공산 성전암 그리고 현풍 도성암을 꼽는데, 운부암이 선원을 열지 못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이다.

근현대를 대표하는 선지식 성철 스님은 이 도량에서 홀로 한 철 수행을 하고 두 철 있을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향곡 스님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주고 떠났는데 “내 공부는 여기서 끝났다”고 말 했다고 전해진다. 성철 스님 뿐이 아니다. 동산 운봉 경봉 향곡 한암 청담 스님 등 선지식들이 두루 거쳐 간 수승한 도량이다. 그러나 48년이나 선방 문이 닫혀 있다가 1998년 지금의 선원장 불산 스님이 일타 스님을 모시고 다시 문을 열어 12~15명의 구참수좌들이 활인검을 벼리는 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운부난야는 두 가지 별명을 갖고 있다.
우선 ‘망각의 도량’이다. 선원장 불산 스님의 설명이 명쾌하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여기 와서 두어 달 살면 건망증 환자가 돼요. 자꾸 잊어버려요. 나는 한 입 베어 먹은 고추를 상머리에 올려놓고 다시 새 고추를 들고 베어 먹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때는 상머리에 한 입 베인 고추가 예닐곱 개씩 쌓이기도 한다니까요. 나 참.” 세속의 계산들을 잊어버린다는 것. 일상의 행동들도 잊어버린다는 것. 한 곳으로 마음이 골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두가 성성하여 일상의 행동들은 망각의 강물에 던져지는 것이다. 어느 때 그 강물마저 잊을 날 오도송이 툭 마른벼락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또 하나의 별명은 ‘판검사 도량’. 선원이 문을 닫고 고시생을 치던 시절이 있었는데 유독 이곳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많이 합격 했다. 박철언(前 행정자치부장관) 서동건(前 안기부장)씨 등 48명의 판검사를 배출한 도량이다. 세속 공부가 그렇게 잘 되는 곳에서 출세간의 공부가 안 된다면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운력이 끝나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 청소를 하고 선방도 청소했다. 청소도 다 끝난 듯한데, 선방에 나오는 스님이 없었다. 사진이라도 한 컷 찍고 싶은 욕심에 한 스님에게 물었다.
“오늘은 참선 안 하십니까?”
“운력하면서 참선 다 했는데 또 무슨 참선?”
“선방에서….”
“아, 앉아서 하는 참선은 저녁에나 하지….”
더 있어서는 안 될 곳이란 생각이 밀려왔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나오다가 뒤돌아보니 아, 보화루가 구름위에 떠 있질 않은가?

운부선함록(雲浮禪啣錄)-변윤
구름이 내려 와 산이 된
산에는 불가사의한 꽃이 피고
산색(山色)따라 꽃이 진다네
낭랑한 새소리, 물소리 모두어
지하수가 샘솟는 그 명지에 운부난야가 있네
항상 흰 구름으로 떠 있는 보화루
천신(天神)들이 내려 와 입정(入定)에 든
선정삼매(禪定三昧)의 연못물에는
하안거(夏安居) 눈 푸른 선승들
물구나무서거나 거꾸로 앉아 좌선 중
세상 밖의 사람들은 그것을 실상(實相)이라 하네
의정(疑定)의 물결 밑으론
한낮의 뜨거운 햇빛도 들어오지 못하는데
이 마음의 해저 밑을
서슬한 달빛이 꿰뚫고 있네
알 길 없는
구름 길
안은한 신선의 경지
사시사철의 흐름조차 잊고 사네
구름 부리 밑 선당(禪堂) 가까이 쏟아지는
여울물 소리 바람이 일고 꽃이 피고
흰 구름 따라 선객(禪客)이 모여들고
산색이 저물면 꽃이 지네
*운부난야에서 하안거를 나고 있는 시인 변윤(정송) 스님을 만나 “공부가 잘 되십니까?” 물으니 대답 없이 가버리더니 잠시 후 다가와서 불쑥 종이 한 장을 내놓았다. 시인은 시로 대답하는 것이 제격이다.
글 사진/영천=임연태 기자 | ytlim@buddhapia.com
2007-08-29 오후 3:42:00
 
한마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시나? 30~40년 똬리 틀고 있어 봤자 종일수타보에 자무반전분이면 말짱 꽝이지!!! 선객으로서의 태도도 경봉선사가 훨 낫다~
(2007-08-29 오후 4:50:50)
113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