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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법회에서 법장 거사를 처음 만난 때는 4년 전. 그 후 2년 뒤 점심식사를 같이 한지 1년 만에 서울 행촌동 자택에서 다시 만났다. 정안헌(正眼軒)이란 헌호(軒號)를 붙인 아담한 빌라에 혼자 기거하는 거사의 살림살이는 그야말로 소박했다. 듬직한 아들(권오현 대성의학사 대표)이 있지만 따로 사는 이유는 오로지 후진 향성을 위함이다.
현재 법장 거사가 개인지도 하고 있는 제자는 모두 8명.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며, 이 중 한 명은 교도소에서 편지로 지도점검을 받고 있다. 선도회(지도법사 박영재)의 특징은 무엇보다 1대 1로 참선을 지도점검해 주는 데 있다. 개인점검인 입실지도(入室指導)는 선도회 창립자인 종달 이희익(1905~1990) 거사 때부터의 전통이다. 참선의 자세, 호흡법에서부터 화두 드는 법, 공안 점검까지 철저하게 이끌어준다.
선도회 법사 중 최고령자로서 자택을 선도회 명의로 기증하는 등 무소유의 삶을 사는 법장 거사는 2004년 <생활 속의 좌선 수련 20년>(운주사)이란 책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후학 양성에 나섰다.
책 발간과 동시에 서울대를 비롯해 전국의 대학을 돌며 책을 나눠주고 선 수행의 중요성을 알려왔다. 하지만 책을 보고 전화하거나 찾아오는 수행자는 많아도 정작 참선에 입문하는 자는 드물다. 더구나 매주 1회 이상 개인점검을 받으며 몇 년간 꾸준히 공부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래서 그는 꼼꼼히 수행자의 구도여정과 발심 여부를 들어본 후 제자로 받아준다. 어설픈 각오로 시작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무문관 48칙 공안 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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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을 투과한 뒤, 내 자신의 변화가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린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상태에서도 대상과 일과 하나 되어 몰두하게 되었으며, 늘 내 구실을 확실히 하고 살며, 나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선 입문 5년 만에 조주 선사의 ‘남전참묘(南泉斬猫: 남전 선사가 고양이를 베다)’ 화두를 타파했을 때 가장 큰 법열(法悅)을 느꼈다는 그는, 수행의 힘으로 어떤 경계가 닥쳐도 초연할 수 있었다. 11년 전 40여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와 갑자기 사별했지만, 평상심(平常心)으로 잘 견뎌낼 수 있었다. 98년 2월 나라의 외환위기로 부도가 났을 때도 극복할 수 있었다.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걸림 없이 낙관하고 자족(自足)하니 흔들릴 게 없었다”는 것이다.
번뇌ㆍ망상 사라져 ‘날마다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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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좌선을 생활화하면서 이 세상을 극락정토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이상을 실현하고자 애쓰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고 미움조차 사라져, 날마다 삶은 새롭고 좋을 뿐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 되기 위한 참선의 요체는 역시 말이 아닌 끊임없는 실참에 있었다.
“좌선은 심신을 본래대로 확실히 바꿔 사물과 일체가 되는 공부이기 때문에 초지일관(初志一貫)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습니다. 수행자는 지식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피나는 정진으로 몸소 겪어본 후, 실생활에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차를 타고 앉아 가거나 걸어 다닐 때도 반드시 단전에 지긋이 힘을 넣고 ‘무(無)’자 등의 화두를 참구하면서 다니는 습관을 들여야 해요.”
제자 양성이 마지막 원력
2001년 생업에서 은퇴 후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그의 마지막 숙제는 젊은이들에게 좌선을 하면서 누리는 멋과 기쁨을 전하는 일이다.
“젊었을 때 좌선에 접근할 계기가 전혀 없었던 것이 너무 한(恨)이 되어 젊은이들에게 좌선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복잡한 세상살이에 오염되기 전부터 참선을 시작하면 훨씬 앞당겨 멋진 인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할아버지처럼 자상한 노 거사는 오늘도 작지만 큰 도량에서 구도심에 불타는 용기 있는 수행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문 없는 문’을 열겠다는 발심자는 지금 즉시 정안헌의 현관문을 노크해 보는 것은 어떨까. (011)384-4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