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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휴가를 맞은 시민들이 저마다 바다로, 계곡으로 떠나 세속에서 지고 다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휴가가 끝나자 잠시 내려놓았던 짐을 또 다시 짊어지고 만다. 한번 내려놓은 번뇌ㆍ망상과 집착을 다시 짊어진다면 그 얼마나 원통한가. 세간이나 출세간에서나 ‘비우고 쉬는’ 것은 마음공부의 요체이다. 온갖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상쾌하고 편안하게 쉰 휴가 때의 텅 비고 맑은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지난 8월 1~3일, 2박3일간 부안 내소사(주지 지원)에서 60여 명의 시민들이 동참한 트레킹(Trekking:산과 계곡에 나가 여유롭게 걷는 것) 템플스테이는 ‘내려놓는다’는 생각 없이 방하착(放下着) 공부의 묘미를 맛보게 한 수련회였다. 해안(海眼, 1901~1974) 선사가 호남불교의 선풍을 진작시킨 선찰이자, 아름다운 전나무숲을 자랑하는 내소사의 트레킹템플스테이는 사람과 자연이 둘이 아님을 깨닫게 한 이색 수련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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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9시 내소사에서 출발한 트레킹은 말이 트레킹이지, 능가산 봉우리에 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상에 오르는 것에 조급해 하고 집착할 이유가 없음을 일깨웠다. 야트막한 산길과 계곡 길을 따라 자연을 벗 삼아 천천히 걸을 뿐,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 나무, 바위, 폭포 등 자연과 대화를 나누며 사색에 빠져든다. 녹색의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공기와 경치에 빠져 걷다보면 어느새 속세에서 품고 온 잡념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다. 숨이 차오르면서 말도 사라지고 생각도 끊어지다 보면 어느새 자연이 설하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듣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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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제백이고개, 관음봉삼거리, 내소사 전나무숲길이 탐방객을 반긴다. 4시간여의 트레킹은 조금 땀이 날 정도로 힘들지 않은 코스였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70대 노인까지 무난히 소화할 수 있는 숲길이었다. ‘산이 있어 오른다’는 고정관념을 고집하지 않기에, 보통의 등산과는 달랐다. 산과 계곡을 여유롭게 걸으며 자연을 감상하고 내변산의 역사도 배웠다. 원효ㆍ의상 스님, 부설 거사, 소태산(원불교 창시자) 거사가 수행하던 유적들은 이곳이 모악산과 함께 호남의 양대 성지임을 확인시켰다. 대자연과 하나 되어 일상의 번뇌와 망상을 말끔히 씻어준 트레킹은 수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휴행(休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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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은 무엇보다 ‘참으로 쉬는(休)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중국의 고승인 허운(1840~1959) 대사는 ‘쉼이 곧 깨달음(歇卽菩提)’이라고까지 말했다. 임제 선사는 “여러분! 바로 그대들의 목전에서 작용하는 자네들이 조사나 부처와 다를 바가 없다. 단지 모든 망념을 쉬고 또 쉬어(休歇) 무사히 지내는 것이 제일이다. 이미 일어난 망념은 계속되지 않도록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망념은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다. 고인들의 가르침대로 휴식과 일이 둘 아니게 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누려보는 어떨까. (063)583-3035
내소사 봉래선원장 철산 스님 인터뷰 | ||||||||||
내소사 봉래선원장 철산 스님은 밖으로 찾고 구하며 헐떡이는 치구심(馳驅心)을 쉬는 게 참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밖으로 돈과 명예, 권력을 찾아 끝없이 헤매고, 수행자들 역시 도(道)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돈다. 하지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조금이라도 구하는 것이 있는 한 깨달음은 요원한 일이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얻을 바가 없는 것(無所得法)’을 증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승님(해안 선사)께서는 불법의 대의(大義)를 묻는 질문에 ‘나쁜 것도 버리지 않고, 좋은 것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철산 스님은 깨달음에 대한 최후의 집착마저 쉬라고 말했다. “찾고 구하는 마음을 쉬어 번뇌와 망상이 저절로 사라지면 청정본심만이 드러납니다. 견성해야겠다는 생각조차 가져선 안돼요.” 철산 스님은 “도(道)는 잠시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기에 있는 그대로가 진실”이라며, “언제 어디서나 대상과 생각에 끄달리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가는 게 수행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