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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다음 날이라 그런지 온 산천이 맑은 빛이다. 거침없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는 내 귀에 와 걸리고, 산란한 빛 사이로 흐르는 바람결은 온 몸에 휘감긴다. 이렇게 물과 바람과 나무와 조우하면서 단양 도락산 산길을 걸었다. 산 중턱쯤 올라가자, 나무 사이로 공사중인 콘크리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이 완성되면 금동대불과 100만 부처님이 모셔지는 것이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약천사를 중창불사하였던 혜인 스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광덕사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또한 대단하다.
무릎에서 고름이 나오고 코피가 쏟아지는 고통 속에서도 백만 배 수행을 마친 혜인 스님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육척 단구의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궁금하였다. 우리가 늘상 하는 절에 대해 혜인 스님은 이렇게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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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 스님은 100만 배를 할 때 두 가지의 마음으로 하였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드릴 수 있는 것은 절밖에 없었기에 부처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올렸다. 또 하나는 나이 30살에 100만 배를 하였는데, 30년 동안 신구의(身口意)로 지은 죄를 참회하는 의미로 한 것이다.
혜인 스님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이 급해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100만 배라는 숫자를 채우려고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과 공경의 정신으로 해야 하는 것이 절이거늘, 스스로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단다.
“100만 배를 했기 때문에 숫자 100만 배가 별 가치 없음을 알게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요즈음에는 새벽 예불 때 항상 108배를 합니다. 100만 배를 할 때는 제불보살께 뉘우치는 마음과 감사의 마음뿐이었는데, 요즈음 하는 108배에는 우주만물에 감사하는 마음,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불행을 당한 사람들이 불행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합니다.”
혜인 스님은 100만 배보다도 아침마다 올리는 108배를 더 귀중하게 생각한다. 스님은 땀 흘려 고생하는 노동자들, 운전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나라를 지키는 육해공군과 경찰을 위해서, 교도소에 있는 사형수들을 위해서, 충신이었던 성삼문을 위해서, 억울하게 죽은 단종 내외를 위해서, 또 오늘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절 한 배마다 담아서 올린다. 사상과 종교와 피부색이 달라도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같이 지낼 수 있기를 절한다. 스님의 108배에는 보살의 동체대비 정신이 담겨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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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절을 하다보면 이 세상에 존귀하지 않는 자도 없고, 이 세상에 버릴 자도 없고, 고마워 아니할 대상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절에 어떤 정신을 담아서 어떤 마음으로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서 절의 가치는 100원짜리 절이 되고, 100만 원짜리 절도 되는 것이다. 수자영가를 위해 절한 일배(一拜)가 100만 배보다 더 가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은 자신의 절 수행이 어떻게 회향되어져야하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모든 인류와 만물에게 고맙다는 감사의 예를 올리는 것이 절이지만 이것은 또 참회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참회는 나를 낮추고 상대를 공경하는 것이 근본입니다. 내가 남보다 똑똑하다는 생각, 내가 남보다 돈이 많다는 생각 등 거만한 생각과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에서는 자비가 싹틀 수 없어요. 남보다 좀 나은 지위에 있거나 돈을 가졌을 때는 남에게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돈과 높은 학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에게 혜택을 주지 못했을 때 그것은 독이 될 뿐이란다. 보살이란 인류에게 기쁨과 혜택, 고마움을 주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스님은 카메라를 가리키면서 ‘이것은 카메라 보살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채소보살, 쌀보살, 꽃보살, 볼펜보살 등 많은 보살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물며 이러한 사물들도 어떤 혜택을 주고 있는데 사람들은 왜 남에게 기쁨과 이익을 줄 수 없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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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을 깨끗하게 씻어놓고 음식을 담듯이 참회는 기도를 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을 참회라고 하는데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참회이며, 내 기분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 참회란다. 스님은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 또한 불교라고 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맞춘다는 것은 아부(阿附)와는 다른 하심(下心)과 무아의 실천이 아닐까 싶다. 아상을 버리라는 또 다른 말씀이다.
기도라고 하면 무엇인가를 구하는 마음이 앞서는데, 구하는 마음을 앞세우고 기도를 해도 되느냐고 여쭈었다.
“기도 속에 참회와 정진의 의미가 다 들어있어요. 기복불교는 별 것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한 생각이 불교를 망하게 합니다. 일체 모든 중생은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좀더 잘되기를 바라는데 기복이 왜 필요 없어요? 기복이 없으면 불자들이 절에 올 필요도 없어요. 참선, 집에서 하면 되지. 불교가 기복에서 탈피하고서부터 신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다 떨어져 나가고 사찰의 재정이 힘들어졌으며, 사람들의 호응도가 떨어졌어요. 기도나 기복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기독교인들이 불교를 두고 미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님은 백만 배를 하고나서 자신이 변화된 것을 느꼈다는 말씀과 함께 기도를 통해서도 자신을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불자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씀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는데 ‘남편은 아내의 가슴과 머리에, 아내는 남편의 가슴과 머리에 이름을 새기는 것’이 진정한 불자요, 성공한 불자란다. 남편의 마음도 아내의 마음도 편하게 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가서 성공 비성공을 따질 것인가‘라고 반문하신다. 스님의 이러한 말씀은 우리들에게 자문자답하게 만든다.
“나 지금 성공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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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 스님은? |
1943년 제주도 화순리에서 출생하여, 13살의 어리 나이에 부모님을 설득하여 출가하였다. 팔공산 동화사에서 일타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 해인사에서 자운 대율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 선원에서 10안거를 성만하였다. 30살에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100만 배 절 기도를 성취하였다. 1981년 제주 약천사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8년여 공사 끝에 1996년에 완공하였다. 지금은 단양 도락산에 중국의 낙산대불보다 더 거대한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