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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선승의 길>(현대불교신문 刊)이란 자전적 선(禪)체험기를 펴내 선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서울 보광사 보광선원장 대현 스님. 32년간 제방선원에서 정진한 경험을 토대로 스님은, 간화선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 염불과 위빠사나, 특히 묵조선을 기초수행으로 참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은다.
7월 8일 보광사에서 만난 대현 스님은 “간화선이야말로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임에 틀림없지만, 그만큼 기초를 잘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본자세와 호흡법, 바른 화두 참구법을 모른 채 덮어놓고 화두만 맹렬히 들고 나가면, 백이면 백 모두 위장병이나 상기병 같은 무서운 병에 걸리게 된다는 것. 망상의 잡초를 뽑지 않으면 화두가 성성하게 들릴 수 없기에, 10년을 앉아 있어도 참선의 기쁨을 체험하기가 어렵다는 게 스님의 경험담이다.
그렇다면 간화선의 병폐란 무엇이고, 화두 들기에 앞서 번뇌ㆍ망상을 쉬게 하는 공부를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묵조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중심으로 인터뷰했다.
▲간화선의 병폐란 무언인지요?
“간화선의 초창기는 선지식이 그때그때 학인의 물음에 따라 근기에 맞춰 격외담으로 그에게 꼭 맞는 화두를 창안해 주었다. 하지만, 송대에 와서는 이미 정형화된 1700공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참구토록 해, 마치 시장에 가서 기성복을 사서 입히는 것과 같았다. 이러다 보니 화두에 주작심(做作心: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마음)이 붙어 진의(眞疑)가 돈발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량ㆍ분별심으로 화두공안을 알려고 하는 자, 경전이나 조사어록에서 인증하여 알려는 자, 일 없는 데 처박힌 자 등 여러 병폐가 생겼다.”
▲염불ㆍ위빠사나가 간화선의 보조수행으로 가능할까요?
“대뜸 ‘이뭣고?’나 ‘무자’ 화두를 들 것이 아니라 위빠사나를 간화선에 접목시켜, 걸으면서도 걷고 있는 이 놈이 누구인고? 하고 관하고, 염불하면서도 염불하는 이 놈이 누구인고? 하고 관하는 것이다. 한 시도 잊지 않고 관하면서 이뭣고? 하게 되면, 번뇌ㆍ망상을 쉬게 되고 어느덧 화두가 물샐 틈 없이 이어지게 된다.”
▲묵조선이 기초수행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을 가다듬어 밖으로 반연(攀緣: 얽힌 인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을 쉬게 하는’ 수행법은 묵조선의 기본이다. 그렇게 보면 묵조선의 시조는 달마 대사라고 할 수 있다. 달마에서 홍인까지의 수인증과(修因證果)는 오랫동안 조용히 앉아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관하는 정좌간심(淨坐看心) 선수후오(先修後悟)의 초기 묵조선이었다. 이러한 선법은 깨침 보다 깨치는 과정을 중요시 하고, 어떤 특정한 근기를 위함 보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6조혜능 대사는 수행의 과정과 방편을 초월해 상근기의 언하변오(言下便悟)와 돈오돈수(頓悟頓修)만을 주장했다. 상근기는 점차와 방편 없이도 언하에 깨달을 수 있겠지만, 중하근기는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묵조선과 같은 특별한 수행의 점차와 방편이 필요하다.”
▲묵조선이 대혜 스님에 의해 비판받은 까닭은?
“묵조선의 근간은 간심선(看心禪)으로 청원행사-석두희천-약산유엄-운암담성-동산양개-조산본적으로 내려오는 조동종의 선법이다. 묵조선이 송대에 와서 초기 묵조선을 흉내내는 병든 묵조선이 생겼으니, 이것이 ‘흑산(黑山) 아래 귀신굴에 빠져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무기(無記)묵조선이다. 나는 묵조선을 셋으로 나눠 보았다. 비유하면 유위(有爲)묵조선은 유정난이요, 무위(無爲)묵조선은 어미닭이요, 무기묵조는 무정난이다.
▲세 가지 묵조선의 특징은 무엇인지요?
“유위묵조선은 선정후혜(先定後慧)의 돈오선이다. 먼저 선정의 기름으로 등잔을 채운 뒤, 돈오의 불을 붙여 무명장야(無明長夜)를 밝힘과 같다. 초심자는 먼저 좌선으로 호흡을 고르는 섭심정좌(攝心靜坐)와 묵이상조(黙而常照)로 마음이 고요해져 사량ㆍ분별심이 사라진 때, 선지식을 찾아가 공안으로 점검받는다. 공안타파로 돈오하는 것은 간화선과 같지만, 정혜쌍수(定慧雙修)와 선정후혜라는 차이가 있다. 간화선의 거장인 대혜종고 스님도 묵조선의 대가인 굉지정각 선사와 같이 묵조선을 닦은 후 화두로 확철대오했다는 점에서 유위묵조선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무위묵조선에서 ‘묵이상조’는 일체 모든 망념이 쉬어 묵묵한 가운데 항상 일체 만상을 살핌을 말한다. <금강경>의 ‘응당 머무는 바 없이’는 묵(黙)이요, ‘그 마음을 내다’는 조(照)다. 이는 무상구경각을 증득한 무심도인의 일용사요, 제불조사의 수용처를 말한다. 약산유엄 선사의 경계가 대표적이다.
무기묵조선은 외도들이나 묵조사선 수행자들이 빠진 무기(無記: 흐리멍텅한 상태)로서, 임의로 생각을 비워 일으키지 않음을 종으로 삼아 토목와석(土木瓦石)과 같은 경지에 든다. 이들은 공안타파를 믿지 않으며, 공공적적(空空寂寂)한 무기공에 빠져 한 생을 그르친다.
결국, 무기묵조선을 제외한 묵조선과 간화선의 마지막 관문 통과는 ‘공안타파’라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