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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마음여행 하기로 했죠? 우선 복식호흡부터 시작해요!”
장맛비가 쏴하고 운동장을 때린다. 날씨 탓에 조금은 어두운 교실, 스물일곱 명의 아이들이 살며시 눈을 감는다. 이제 복식호흡쯤은 문제없다. 마음여행은 이렇게 서서히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음여행을 이끄는 사람은 서울 일원초등학교 1학년 6반 담임 원정숙 선생님. 일주일에 2번, 아이들과 함께 마음여행을 떠난다. 한마음선원 부설 한마음과학원이 개발한 한나무 인성교육프로그램(이하 한나무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마음여행은 아이들에게 마음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몸은 교실에 있지만 마음은 집에도, 놀이공원에도 갔다 올 수 있다.
그런데 맨 앞자리에 앉은 한영이가 아침부터 울음을 터뜨렸다. 앞에 앉은 기준이와 필통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다 그만 싸움이 되고 만 것이다. 마음여행이 시작되고도 한영이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어깨만 들썩거린다. 이때 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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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한영이 마음이 풀어질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마음을 내 봐요. 한영이 마음속에 있는 미움을 마음의 용광로 속에 넣고 녹여버리자고요.”
선생님이 알려주신 마음법칙에 따르면 ‘마음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 모두가 진심으로 바라면 한영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화의 기운도 없앨 수 있다. 아이들은 어느새 저마다의 마음속 용광로를 떠올린다. 친구와 싸운 마음, 엄마 속을 썩인 마음 등 미운 마음들을 용광로 속에다 집어넣는다. 그렇게 마음여행이 계속되자 한영이가 눈물을 그쳤다.
마음속을 이리저리 여행하고 온 아이들에게 종이가 한 장씩 주어진다. ‘마음의 여행 노트’다. 알록달록한 종이에다 아이들은 마음속에서 무엇을 녹일 것인지, 무엇을 캐내야 할 것인지 적기 시작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인데, 과연 마음여행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스러울 법 하다. 사실 ‘마음’자체가 모호한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저 아이들 스스로 마음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 마음여행의 참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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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선생님이 아이들처럼 해맑게 웃는다. 마음여행 덕분인지 1학년 6반은 어딘가 다르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다. 수업시간에도 아이들이 산만하지 않다.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비결 좀 알려달라”는 이야기가 곧잘 나온다.
3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친 원 선생님은 한나무 프로그램이 개발되던 2004년부터 프로그램 개발은 물론, 일선 학교에서 시험 운영하는데 힘써왔다. 원 선생님 스스로가 마음공부를 통해 마음의 자유로움을 이미 경험했다. 그래서 더욱 마음공부와 인성교육을 접목시킨 한나무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아이들에게 특히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1학년 아이들도 예전 같지 않아요. 얼마나 영리한데요. 하지만 똑똑해진 대신 삭막해졌어요. 자기밖에 모르고 누가 잘못했을 때 쉽게 용서하려 들지 않아요.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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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이 필요한 아이들. 이제 학교에서 불교의 좋은 마음법을 통해 조금이나마 아이들의 인성이 계발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마음여행을 진행하는 선생님의 마음이다.
마음공부를 통한 인성교육은 딱딱한 도덕교육이 아니다. 내 마음 속에 살아 숨 쉬는 나를 제대로 발견하고 그 ‘참 나’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아이가 타성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로워진다. 아울러 나와 내 친구들, 선생님들의 마음이 모두 이어져 우리는 생명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것, 이것이 한나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고학년 아이들의 경우, 컴퓨터 사용이 자유롭기 때문에 한나무 프로그램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프로그램 홈페이지에서 아이들은 마음공부를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마음일기 페이지를 통해 작성할 수 있다. 또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진이나 글도 올릴 수 있다. 즉 한나무 사이트에서 학급 홈페이지를 만들어 나의 이야기는 물론 구성원들과 함께 서로의 마음을 사이버 공간에서 소통하며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학년이 끝날 무렵에는 아이들이 그동안 작성했던 마음일기를 공책으로 받는다. 나름대로 ‘회향’의 과정도 거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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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원 선생님이 담임을 맡았던 5학년 학생들의 경우, 한나무 프로그램의 효과가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고학년이 될수록 아이들은 시험 성적에 목숨을 건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음, 그것 때문에 불안한 마음은 커져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불안감이 자신감을 압도해버린다.
원 선생님이 맡았던 아이들은 시험공부 하기 전, 마음공부를 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을 첫 번째로 한다. 그러고 나서 성적이 향상된 아이들이 꽤 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나니 쓸데없이 불안해하지도 않고 덤벙거리다 실수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또 늘 친구들과 다퉈 마음이 쓰였던 상우(12)의 경우 스스로 “‘욱 하는 성질’이 있었는데 마음 여행을 통해 많이 나아졌다”고 말한다.
“예전엔 맘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덤볐는데, 요즘엔 이상하게 마음에 편해졌어요. 그래서 예전보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요.”
사실 한나무 인성교육프로그램을 학교에 적용시키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다. 종교색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예민한 아이들은 “선생님, 왜 불교이야기해요?”라고 대들면서 거부하기도 했다.
그럴 때 원 선생님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만 우선 해보자”고 말했다. 종교가 달라도 분명 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 아이가 찾아와 되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을 때, 원 선생님은 불교식 인성교육이 어디에도 통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원 선생님은 이제 한나무 프로그램이 더 많은 학교에서 쓰였으면 하고 바란다. 직접 시행하면서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보았기에 더욱 그렇다. 한나무 프로그램이 좀 더 다듬어져서 학교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교재로 출판되는 것도 시급하다. 선생님 개개인의 능력이 보다는 불교적 인성교육 방법을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안내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불자 선생님들께서 더 적극적이셨으면 좋겠어요. ‘종교 프로그램’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려면 부딪쳐봐야 합니다. 불교와 인성교육은 많은 접합점을 갖고 있어요. 마음법을 교육 속에서 당당하게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