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기능은 교육과 연구이며, 자유롭고 창의적인 정신이야말로 대학의 근본 바탕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도 종교에 관한 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꽉 막힌 공간인 것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계 사립대학에서 제도적으로 타종교인을 배제하는 대표적이 예는 채플과 종교과목의 강제, 특정종교인만의 교직원 임용 등이다. 종교지도자를 양성하는 특수학교라면 모를까, 일반종합대학에서 어떻게 학문의 자유와 교육의 수월성보다 특정종교의 선교가 더 중요시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대학채플은 기도, 찬송 등 기독교 예배의식으로 졸업 때까지 대개 4학기에서 8학기까지 1주일에 한 시간 정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고, 단 한 학기라도 이수하지 못하면 졸업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타종교 학생의 입장에서는 심리적 갈등을 호소할 만도 하다. 대학채플과 관련한 쟁점은 무엇인가?
첫째, 종교계에서 세운 학교이기에 ‘예배나 선교’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언뜻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종교사학들이 끈질기게 주장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 누가 허용했는가? 교육부가 사립학교를 허가해 주면서 국민의 동의도 없이 예배와 선교까지 허가했단 말인가? 국가가 교육형성권의 일부를 사학재단에 위임한다고 해서 국민의 헌법적 기본권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국가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종교사학의 강제예배 관행은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교육부가 너무 오랫동안 직무유기를 한 결과 당연한 권리처럼 굳어진 것일 뿐이다.
둘째, 이미 알고 들어왔으면서 웬 딴소리냐는 논리다. 이것 역시 그럴싸해 보이지만, 약자인 학생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리나라 고3 수험생들은 대학으로부터 채플과 관련한 충분한 사전 공지를 받은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받을 여유도 없다. 타종교 학생들에게 생소할 채플의 성격에 대해 사전 설명이 없는 것은, 아마도 입시요강이나 홈페이지에 올리는 순간 바로 위헌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일단 입학한 학생들은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약자이기 때문에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종교사학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입학 시 학생들에게 형식적으로라도 ‘서약’이나 ‘선서’라는 것을 하게 하는 것도 채플 합리화를 위한 사전 요식행위이다.
셋째,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면서 종교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강자인 종교사학들이 “싫으면 다른 학교로 가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국민의 성원과 국가의 각종 혜택 속에서 성장한 사학재단의 배은망덕이며 무책임한 말이다. 대학입시는 전국민적으로 아주 예민한 문제이다. 대학교육의 사립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현실에서 특정종교 대학들을 제외하고 선택하라면 타종교 학생들의 교육선택권은 차별적으로 심히 제한된다. 국가가 종교간 형평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종교사학들을 무차별적으로 많이 만들어 놓은 후유증이다. “학교선택권이 실질적으로 확보되지 아니한 한국적 특수상황을 외면한 채, 학생의 입학ㆍ재학 관계를 학생과 학교 간 당사자만의 자유로운 의사 합치에 따른 단순한 사법(私法) 상의 계약관계로만 이해새서는 아니 된다”는 헌법학 책의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국가가 제3자의 입장으로 피해가서는 안 되며 정책적으로 적극 개입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넷째, 더 본질적인 문제는 ‘개종의 자유’이다. 입학 시 받아들였다고 해서 졸업 때까지 종교적 신념이 바뀌지 말란 법은 없으며, 개종 후에도 대학이 특정종교 의식을 계속 강제한다면 종교폭력일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개종의 자유가 자유롭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일 것이다. 종교선택의 자유마저 박탈하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민주사회의 기독교 대학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이다. 적어도 강제 예배만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도 체질이 다 달라 어떤 사람에겐 좋은 약이 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겐 독이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들에겐 특정종교 의식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겠지만, 다른 이들에겐 고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종교계 대학들이 먼저 자각하여 강제 채플을 개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거대한 사학재단의 횡포에 약자인 학생이나 교수가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또 이 문제를 풀어줘야 할 국가나 지도자들은 학생의 인권에는 무감각하면서도 사회적 강자에 대해서는 관대하기만 하다.
대학사회에서의 야만적인 종교강요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서 법률 전문가들의 세심한 논의와 정부의 진지한 재검토가 시급하며, 무엇보다 국민들의 깨어있는 의식과 적극적인 관심이 요청된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