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참 복잡하다. 한낮에 서울 큰 길을 걷다보면 복작복작 사람 소리, 빵빵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서울에는 좋은 산을 끼고 맑은 공기를 자랑하는 동네, 또 그런 동네에 자리 잡은 사찰도 꽤 있다.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금장사가 바로 그런 곳 중 하나다.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 자연 속으로 빠져든 절, 그곳에서 6월 2일 저녁, 작은 ‘축제’가 열렸다. 금장사 보리방과후 공부방(이하 보리공부방) 아이들과 함께한 ‘초여름 산사음악회’다.
음악회? 왠지 어렵고 불편할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청중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라도 괜찮다. 객석은 흙바닥과 풀밭 위에 깔아놓은 자리다. 시원한 산바람과 함께 기분 좋게 흘러가는 음악을 온몸으로 맞아들인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나와 가끔은 떠들기도 하는 음악회. 금장사 음악회는 바로 그런 편안한 음악회였다.
“자, 여러분 차례니까 지금까지 연습한 거 잘 보여줍시다!”
작은 음악회 문을 연 공연은 보리공부방 아이들 30여명이 참여한 우리 타악기 공연이었다. 보리 공부방 아이들을 지도해온 효석 스님이 아이들을 챙기며 힘찬 응원과 함께 아이들을 내보냈다.
공연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각자 손마다 든 장구며 징, 소고를 배운 대로, 정성껏 흔들고 두드렸다. 아이들은 이날의 공연을 위해 자그마치 6개월 넘게 연습해왔다. 장구의 경우 꽤 무게가 나가서 아이들이 메고 다니는 것만 해도 용하다. 설마 우리 아이가 저렇게 잘할 줄이야. 객석에서는 온통 ‘우리 ○○ 잘한다~’며 아이들의 솜씨를 보고 흐뭇해하는 어른들의 환호성 물결이다. 물론, 아직은 서툴다. 그냥 두드리면 될 것 같아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우리 풍물놀이니까.
보리공부방은 이미 홍은동에서 인정받고 있다. 맞벌이 등으로 인해 학교를 마치고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잡아주고 보듬어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보리공부방에서 조금씩 연습한 성과가 이날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니 홍은동에서 이곳의 존재가 더욱 소중해진 순간이다.
그렇게 타악 공연을 마친 아이들의 얼굴에는 보람찬 미소가 가득했다. 조금 더 잘 할 걸, 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섞여있었지만 다들 열심히 했다. 지켜보던 주지 본각 스님을 비롯한 금장사 스님들의 눈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에 이어 산사음악회를 꾸려간 사람은 니르바나 오케스트라 강형진 단장. 언젠가 홍은동 마을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해 꼭 한 번 연주회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던 강 단장은 바이올린, 첼로, 건반의 3중주를 준비했다. 서양악기에 서양음악이 절과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이미 사람들은 숨을 죽였고 음악은 산사의 어스름한 밤을 수놓았다.
산사음악회에 또 우리 가락이 빠질 수 없다. 거문고와 대금 2중주다. 신기한 듯 쳐다보며 거문고인지 가야금인지 헛갈려 하는 아이들을 위해 거문고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산’ 음악 교육이다.
“거문고는 줄이 6줄이에요. 그리고 악기에는 음정을 낼 수 있는 ‘괘’라는 것이 있고요, 연주 할 때는 손가락이 아닌 ‘술대’라는 도구를 사용해요,”
분위기가 무르익고 날이 어두워지자 관객들의 손에 있던 반딧불 전등에 하나 둘 불이 켜졌다. 모두 반딧불이가 된 것이다.
음악회의 마지막은 ‘화합’의 장이었다. 강형진 단장이 동요와 대중가요를 연주하자 객석에서는 모두 노래를 따라 불렀다. 신나는 연주와 신나는 객석. 때 이른 더위를 잊고 온가족이 함께 즐겨서 그런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보리공부방에 다니고 있는 은경이(홍연초 5)는 공연 내내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원래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데 진짜 좋아요! 정말 좋아요!”
물론 모든 아이들이 은경이 같지는 않았다. 간간히 스님들이나 강형진 단장이 주의를 주어야 할 정도로 산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아이들에게 올바른 음악 감상 태도에 대해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이날 금장사에 있었던 아이들은 즐겁게 기억할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공연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아름다운 음악을 느낀 산사의 어느 날을 말이다.
초여름, 산사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