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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이 부처이니, 마음부처의 이치에 걸맞게 살라는 것입니다.”
경전 강의의 권위자인 송찬우(56) 중앙승가대 교수는 이 말을 논증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이 벌어졌다고 본다. ‘네가 부처다’하는 가르침을 확신하여 믿고 실천하면 되는데, 믿지 않으니까 이를 확신시키기 위해 부처님께서 이 법문, 저 법문하게 된 것이 팔만장경이란 것이다.
“심법(心法)의 이치를 깨우치면 곧바로 대 해탈입니다. 유식(唯識)을 배우는 것도 네 마음을 허망한 식(識)으로 쓰지 말고, 식을 타파하여 본래마음으로 회귀하라는 것입니다. <육조단경>을 비롯한 조사어록은 오로지 “마음의 이치를 곧장 가리키면서(直指) 네 마음 이치에 걸맞게 살라”는 법문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7월 9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서울 동현학림에서 웅십력(熊十力)의 <新唯識論(신유식론)>을 강의하는 송 교수는 불교 교리와 수행의 정수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식론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성의 공(空)을 주장하는 성종(性宗)인 ‘중론’과 현상세계의 여실한 모습을 밝힌 상종(相宗)인 ‘유식론’을 모르고서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어서, 대승불교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은래 총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선물했을 정도로 중국의 자부심이었던 <신유식론>은 풍우란 등 중국철학의 대가를 길러낸 대학자인 웅십력이 중국 및 서양철학 등을 곁들여 불교의 유식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호법(護法)의 유식 해설에 문제점을 느끼고 유식 연구에 평생을 바친 웅십력은 지나치게 복잡한 <성유식론>의 요점을 드러내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상으로 도출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다시피 유식학은 불교학에서 가장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분야이다.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의 뜻을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이가 드물 정도여서, 유식의 도리를 남몰래 공부하는 수행자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수행과 유식은 과연 어떤 연관성을 가진 것일까?
“수행이란 사실 식(識), 즉 망상을 타파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호랑이나 범인을 잡으려면 그 소굴로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의식의 구조를 알아야만 그것을 타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식론은 세계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식(識), 즉 분별의식이 움직인다고 본다. 만법은 중생의 8식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확철대오한 육조 선사가 바람에 움직이는 깃발을 보고,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분별심이 움직이는 것이다.”고 말한 것이 한 예다. 이 세계가 오로지 식의 분별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만법유식’의 이치를 모르면 선불교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선불교는 오로지 ‘식(識)을 타파’하라는 이야기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유식학의 수준은 법수(法數)나 문자 해석에 머물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너무나 복잡한 이론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경우마저 없지 않다.
난해하기로는 유식론과 쌍벽을 이루는 선어록인 <벽암록>을 비롯해 <종경록> <능가경> <육조단경> <달마대사 혈맥론> <이입사행론> <전심법요> 등을 원문으로 강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다. 아울러 <벽암록> <전심법요> <백장록> <동산양개화상 어록> 등 23권의 선어록을 완역, 성철 스님의 ‘선림고경총서’ 가운데 3분의 2 정도를 번역한 것은 선리(禪理)에 달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송 교수가 16세에 불교에 입문한 뒤, 선(禪)과 교(敎)를 함께 닦은 수행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세에 불문에 입문할 때 이미 4서와 <시경>을 보았을 정도로 한학에 출중했던 그는, 20세에 당대 최고의 대강백이자 선사인 탄허 스님 문하로 들어가 <서경> <주역> <좌전> <노자> <장자>등 동양고전을 섭렵했다. 13년 동안 유불선에 달통한 탄허 스님을 입적할 때까지 모신 그는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을 수료하기도 했다.
그는 선교쌍수의 구도역정에서 세 차례, 문자반야를 통해 마음의 이치를 터득하는 계기를 얻는다. 20대 초반에는 <조론>을 통해, 30대 중반에는 감산(憨山) 대사의 저서를 통해, 40대 초반에는 <기신론>과 <유식론>을 통해 공부의 큰 전기를 마련한다. 마치 감산 대사가 <조론>의 ‘물불천론(物不遷論)’과 <금강경>을 강의하다가 심안이 열려 활연대오한 것처럼, 공부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탁월한 한문 실력에 불법에 대한 깊어진 안목을 바탕으로 그는 감산 대사가 해설한 <조론>을 비롯해 <대승기신론> <금강경> <장자> <노자>의 주해서와 지욱 대사의 <금강경 파공론><종경록> 등을 잇달아 번역해 불교 내외의 지식인층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뜻으로 읽는 금강경> <법상유식학으로 이해한 반야심경> 등의 저서를 통해서는 독창적인 안목으로 경전 해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한 세월동안 간경 수행의 외길을 걸으며 부처님 법음을 전하고 있는 송 교수는 “경전과 어록을 보면서 회광반조(廻光反照)하여 마음에 이치를 되돌리면 그것이 바로 참선이다”고 말한다. 강의를 통해 한자 원문을 하나하나 새겨가면서 심오한 뜻을 드러내어 매순간 공부인들이 자기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어떤 교학을 공부하고 수행을 하더라도 본성(本性)과 일심(一心)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선어록도 안 보고 실참도 자기 식대로만 하면 평생 헛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경전과 어록은 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자신의 수행 여정을 점검할 수 있는 이정표죠.”
얼마전 세종로에 동현학림을 확장 이전한 송 교수는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명대(明代) 내지덕(來知德) 선생이 저술한 <주역집주(周易集註)>를 교재로 ‘주역 강좌’도 열고 있다. 동현학림에서는 <벽암록> <능가경> <장자해(莊子解)> <능엄경> <대승기신론> <화엄경십지품> <법화경> <천태소지관(天台小止觀)> <조론(肇論)> 등의 강의 테이프도 제공하고 있다. (02)732-3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