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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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흔들림 없이 '철야정진'
거사선의 리더들4-청봉 전근홍 거사

서울 성북구 정릉동 산 기슭에 자리잡은 보림선원(조실 묵산 스님). 이 절의 선방에서는 매주 토요일 20여 불자들이 어김없이 밤을 꼬박 새우며 정진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1965년 창립된 보림회(www.borim.co.kr)가 이렇게 매 주말 철야정진과 여름ㆍ겨울 휴가에 맞춰 실시하는 일주일간의 용맹정진을 한번도 빠뜨리지 않고 해온 지는 어언 34년. 올해는 서울 보림선원과 부산 화엄사에서 7월 26일부터 8월 1일까지 제 67회 하계철야 정진법회가 열린다. 한국의 유마 거사로 존경받았던 백봉 김기추(1908~1985) 거사의 제자들의 모임인 보림회가 스승의 입적 후에도 중단없이 용맹정진을 이어 온 것은 청봉 전근홍(56) 거사의 드러나지 않은 원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림회의 철야정진은 백봉 거사가 ‘무자’ 화두를 타파하여 확철대오 한 후 재가 수행자를 개오(開悟)시키는 방편으로 주말 및 일주일~열흘씩의 철야정진을 부정기적으로 실시하다가 74년 여름 철야정진때부터 정기적으로 시행됐다. 백봉 거사는 85년 여름 23회까지 직접 제자들을 지도했으며, 입적한 이후에도 철야정진을 놓치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그는 철야정진 기간 동안 좌선과 함께 설법을 통해 제자들이 공부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서 많은 공부인을 양성했던 것이다.

청봉 거사 역시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74년 1주일 용맹정진을 시작으로 철야정진을 계속한 결과 77년 여름 철야정진, 82년 동계 철야정진에서 각각 체험을 얻고 득력(得力)함으로써, 철야정진의 중요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청봉 거사가 처음 선(禪)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된 것은 74년 여름 철야정진 때였다. 하지만,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기 시작한 것은 77년 여름 철야정진 때였다. 당시 선방에 시계가 있었는데 참선을 시작해서 1~2분만 지나면 시계소리 조차 들리지 않고 오직 화두만 들렸다. 그러자 어느 순간 화두가 딱 끊어지면서 어떠한 실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의 심경을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마치 포항제철 같은 커다란 공장에서 엄청나게 큰 기계들이 돌아가고 그 소음에 사람말소리 조차 들을 수 없다가, 정전으로 갑자기 기계가 딱 멈췄을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적적함이라 할까. 아무튼 처음으로 생각을 쉬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사람은 누구나 1초도 안 쉬고 생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한동안 정신이 멍멍 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스승으로부터 받은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 동산이 물위를 간다)’ 화두의 답이 저절로 나왔다. 무엇이라고 표현할까 생각할 필요 조차 없었다. 마치 정해진 답처럼 거침없이 생각이 나서 종이에 적었다.

“예리한 칼을 들고 쫓고 쫓을 새, 갈 곳 없는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이 내 집안 소식을 토하는구나. 산은 푸르고 물은 맑은데, 할 일도 많았던 내 집안 일이 하나도 할 일 없는 그대로구나.”
백봉 거사는 이 글을 읽어 보고 고개를 끄덕 끄덕 하더니 설법시간이 시작되자 대중들 앞에서 글을 읽어 주고는 “전군(청봉)이 화두를 깼다”고 말했다.

청봉 거사는 82년 동계 철야정진 때도 다시 한번 법열(法悅)을 체험한다. 이때 백봉 거사는 공겁인(空劫人: 불생불멸하는 본래면목을 상징)에 대한 설법을 하였는데, 어느 때와는 달리 자신이 바로 공겁인이라는 실감이 절실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공겁인의 분상에서 공겁사(空劫事)를 굴린다는 이 도리만 안다면 앞으로 나흘 동안 더 할 것이 없어. 춤밖에 출 것이 없어.”

스승의 이런 법문을 들으며 느낀 청봉 거사의 법열은 처음 화두를 깼을 때와 또 달랐다. 적적하다는 생각조차도 없이 쭈욱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자 백봉 거사는 도반들에게 “전군이 설법을 할 수 있는데 장가도 안 간 총각이 말이야” 하고 웃었다. 스승은 청봉의 77년 화두 타파에 이어 82년의 체험까지 인정한 것이다.

참선 수행자에게 화두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요 방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24시간 내내 공부를 지어 갈 수 있는 스님들과는 달리 거사들은 화두를 순일하게 가지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가자들은 기존의 화두(말귀: 우리말 표현)로서는 순일하게 화두를 들기 어렵기에 백봉 거사는 새로운 화두인 ‘새말귀(新話頭의 우리말 표현)’로서 한결같이 공부를 지어 나갈 수 있는 거사풍(居士風)을 내세웠다. 즉, 이전의 화두가 먼저 의심을 하고 들어간다면 ‘새말귀’는 설법을 통해 우리가 항상 쓰고 있는 이 몸뚱어리 자체에 성품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법신(法身)이 성품이 없는 색신(色身)을 통해 항상 굴린다(쓴다)는 사실을 알아서 곧바로 믿고 들어가 실천하는 화두법인 것이다.

청봉 거사는 일상 속에서 새말귀 화두로 공부하는 예를 이렇게 설명한다.
“운전수인 경우 운전을 할때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법신이 손을 시켜서 운전을 한다는 생각으로 핸들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주의를 잘 살피며 운전을 잘 하는 것 그 자체가 그대로 새말귀를 지니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생활 속에서 응용하면 행주좌와 어묵동정 그대로가 모두 화두가 될 수 있습니다.”

청봉 거사는 ‘새말귀’는 화두 타파 이후의 보임(保任: 중생의 오랜 습기를 제거하고 깨침을 누리고 쓰는 공부) 공부에 큰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옛 성현들도 견성을 하고 나면 죽을 때까지 오후(悟後) 공부과정에서 성태(聖胎)를 길렀다는 것이다.

스승의 입적 후, 청봉 거사는 도반들이 각자 녹음해서 가지고 있는 법문 테이프 3백여 개를 모두 모았다. 또 스승이 탈고한 인쇄되지 않은 <선문염송> 원고 10권부터 15권을 추가해 8년만에 완간하였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면 한 번도 빠짐 없이 직접 죽비를 들고 주말 철야정진을 이끌고 있다. 낮에는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사무장 소임을 보면서 밤이면 스승의 유고(遺稿) 출판작업과 참선으로 쉴 틈이 없는 청봉 거사. 한없이 겸허하고 부지런한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세간에 사는 수행자가 어떻게 하심(下心)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공부해야 할 지를 저절로 본받게 될 것이다.
김성우 객원 기자 | buddhapia5@hanmail.net
2007-06-20 오전 11:02:00
 
한마디
"오후보임"에 대해서 오해의 소지가 보여 한마디 하렵니다. 깨달음과 오후보임이 둘이 아닙니다. 두조각이 된 것이죠.....
(2007-07-02 오후 2: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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