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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과 사(死)의 경계를 넘나들다 길을 찾았다.
2003년 12월, 척추에 고름이 생기는 병으로 조계종 교육원장 소임을 놓은 무비 스님. 하루에 수십 번 기절하고 깨어나길 반복하며 생(生)과의 사투를 벌이는 스님에게 신도들이 찾아왔다. 걱정과 안타까움을 내비치던 신도들 틈에서 스치듯 한 마디가 들렸다. “스님 공부하신 것 아까워서 어쩌나.”
퇴원 후 건강을 추스른 스님은 그 말을 가슴 깊이 담고, ‘공부한 것’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생각해낸 것이 인터넷이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스님에게 인터넷은 ‘방 안에서 세상과 만나는’ 획기적인 전법의 장(場)이었다. 2004년 11월, 혼자 힘으로 인터넷 카페 ‘염화실(http://cafe.daum.net/yumhwasil)’을 열고 그동안 강의했던 내용과 법문을 올렸다.
“처음엔 다들 한두 달 하다 말겠지 했어요. 매일매일 글 올리고 회원 관리하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거든요. 더구나 늙은이 혼자 한다고 했으니 얼마나 하겠나 싶었겠지요.”
현재 염화실 회원은 8800여 명. 입소문을 타고 하루에 300명이 가입한 날도 있다. 스님은 “거품도 많지만 회원들의 10% 정도는 활발하게 공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염화실에는 하루 200~300여 명의 회원이 꾸준히 방문한다. 스님의 저서를 매일 1페이지씩 입력하거나 강의 내용을 음성 파일로 올리는 회원들도 있다. “인터넷이 아니면 큰스님 가르침을 들을 기회가 이렇게 자주 있을 수 있겠냐”는 회원들의 간절한 마음이 염화실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지난해에는 스님의 처소에 마이크가 설치됐다.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스님이 직접 DJ가 되어 인터넷 방송을 열고 법회와 강의를 진행한다. 범어사 염화실에 앉아 미국과 호주, 브라질, 일본 등 전 세계 각지의 불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물론 스님에게도 ‘안티’가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이웃 종교인들의 공격과 회원들의 불만, 이치에 맞지 않는 교리 논쟁도 피해갈 수 없다. 안티를 해결하는 스님의 방법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 꼭 대응을 해야 할 때는 최대한 진심을 담아 겸손하게 글을 쓴다. 진심은 언젠가는 통한다는 믿음에서다.
“인터넷에서는 반응이 즉각적이에요. 교감이 잘 되는 것이지요. 현대인들의 급한 성정을 나무랄 것만이 아니라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고 봐요. 인터넷이 그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전법에 매진하고 있는 스님은 모처럼 서울나들이를 계획했다. 불교인재개발원이 진행하는 ‘무비 스님 초청 <서장(書狀)> 강의’를 맡았기 때문이다. 10개월간 한 달에 한 번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서장>의 가르침을 전한다. 6월 20일이 첫 강의다.
“<서장>은 대혜 선사가 편지로 송대(宋代) 사대부들에게 선의 요지를 설명해주는 내용입니다. 저는 강의를 통해 이 시대의 사대부들에게 불자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10달 동안 잉태해 선(禪) 동자를 탄생시킨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강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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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지침서인 <서장> 강의를 앞두고 스님은 ‘간화선만이 유일한 깨달음의 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참선해서 깨달은 사람은 없다. 경전 봐서 깨달은 사람은 많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육조 스님이나 혜가 스님도 경전을 보다 깨달으셨습니다. 부처님 제자들도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닫지 않았습니까? 음성교체(音聲敎體), 즉 말이 교화의 본체라고 합니다. 깨닫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선각(先覺)들은 가르침을 통해 깨달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선(禪)은 무엇일까? 스님은 ‘선은 생활’이라고 말한다. 선은 불가(佛家)의 다양한 생활방식 중 하나이므로, 부처님의 참 가르침을 배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스님은 이 시대의 불교는 ‘인간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 그대로가 부처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활동할 수 있는 이 능력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보다 위대한 능력은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건 불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 사람들도 다 부처냐’고 되묻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들도 모두 다 부처입니다. 부처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위대해서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이 위대하다, 복이 많다고 하지만 사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현대인들만큼 풍요로웠습니까? 부처님이 위대한 것은 모든 존재가 여래의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매사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법문은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돋아나는 욕심을 버리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불교로서 자기 자신을 비춰보는 사람이라면 대다수가 그런 고민을 합니다. 바람직한 삶을 살기 위해 욕심을 버리고자 하지만, 그것은 결코 버려지지 않고 또 완전히 버리고는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기존 불교의 해결책은 ‘돌로써 풀을 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한동안은 풀이 자라지 않겠지만, 뿌리가 죽지 않아 언젠가는 조그만 틈이라도 비집고 올라옵니다. 욕심이라는 것도 억누르면 잠재워지기는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결국 해결책은 ‘인간불교’입니다. 사람이 부처라는 것, 존재의 본질은 더할 수 없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면 인연 따라, 세월 따라 저절로 욕심이라는 업(業)이 녹아납니다. 그 도리를 알면 최소한 부당한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하더라도 세월을 기다릴 줄 알게 되는 것이지요.”
현대인들의 제일 큰 ‘욕심’이라 할 건강에 대해 스님은 욕심을 버리고 노력을 기울이라고 당부한다.
“하루 1시간은 자신의 건강에 공(攻)을 들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한창 때는 그 시간에 책이나 한 줄 더 보자, 건강은 나빠지면 그때 챙겨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흔한 말이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기자를 배웅하던 스님은 염화실 앞뜰의 커다란 소나무를 가리킨다.
“나무가 저렇게 큰 데도 매년 자랍니다. 아무리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나무는 말없이 일러줍니다.”
무비 스님은? 1943년 경북 영덕 生. 58년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해인사 통도사 등 선원에서 10여 년 동안 정진했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의 강맥(講脈)을 이은 대강백으로 통도사ㆍ범어사 승가대학장, 조계종 승가대학장, 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했다. ‘무비 스님의 경전시리즈’를 비롯해 <화엄경> <신심명 강의> <금강경 강의> <임제록 강설> <법화경> <사람이 부처님이다>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