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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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부처짓’해야 불자”
황대선원 조실 성수 스님 “확실히 몰라야 크게 깨닫게 돼”
용추계곡으로 유명한 경남 함양군 안의면. 해발 1천1백93미터의 황석산 자락 황대마을에 터를 잡은 황대선원은 문턱이 낮은, 아니 문턱이 아예 없는 절이다. 일주문이 따로 없고 법당과 선방, 요사채 등의 9개 건물이 동네 집들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절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세간과 출세간이란 이분법이 이 도량에서는 무의미 하다는 의미다. 30세 이후, 늘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새 땅에서 새로운 인재를 키우겠다고 발원한 성수 스님(조계종 전계대화상, 명예원로의원)의 원력이 깃든 수행처라 그러한지도 모른다.

선원 후원으로 난 길을 따라 작은 개울의 돌다리를 건너 자리 잡은 성수 스님의 토굴과 조실채는 지난 해 새로 지은 건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침 텃밭에서 운력(雲力)하는 신도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하고 있던 스님께 인사를 드리자, 반갑게 조실채로 안내하신다.

서울 법수선원 등에서 뵌 후, 석 달 만에 찾아뵙는 스님의 건강은 85세의 고령임에도 여전이 정정하다. 인터뷰 내내 수십 년 전의 일을 숫자까지 세세히 기억하며 말씀하시는 모습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애독자들에게 전할 법문을 청하자, 곧 작지만 큰 법석이 펼쳐진다.

“부처님오신날만이라도 ‘부처 아들’인 불자(佛子)로서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서 부처가 됐는지를 잊지 말고 생각해 봐야 해. 부처님은 500생 동안 몸을 받아 살면서 헛말, 헛짓, 헛걸음 안한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어. (복덕이 아닌) 공덕이 쌓여서 마지막으로 부처가 된 거지. 그런데 부처님 행동은 흉내를 내지 않고 입으로만 부처요, 마음으로만 부처라고 하면 불자는커녕 사람도 안 돼. 사람 되고 부처가 되는 거잖아. 이 날 만이라도 부처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애비와 같은 짓을 해야 해. 하루라도 ‘부처 짓(佛行)’을 해야 불자 아니겠어.”

성수 스님은 40년 전 조계사에서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문을 할 때, 파격적인 설법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싯다르타 태자는 네 가지 큰 죄를 지은 놈이니라. 하지만 그는 3000년 동안이나 존경받고 있다. 자기 밥 먹고도 욕먹는 자식 되지 말고, 싯다르타 태자의 재주가 뭔지 물어보고 배워서 알고 믿어라.”

이 법문에 스님과 신도들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깊은 뜻을 알아듣고는 모두 기뻐했다고 한다.

스님은 싯다르타 태자에게는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네 가지 큰 죄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국사를 돌보지 않고 출가했으니 부왕의 대를 잇지 않은 죄요, 둘째는 부모의 뜻을 거역했으니 천추만대(千秋萬代)의 불효죄요, 셋째는 젊은 부인을 버린 배신죄(背信罪)요, 넷째는 라훌라를 낳고도 기르지 않고 자식을 버린 죄라는 것이다. 이런 중죄인이 3000년 동안이나 세상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는 까닭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을 계기로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하고 억울하게 죽어야 하나?’ 하고 깊이 느끼고, 안 죽는 법을 알기 위해서 6년이나 찾아 다녔다. 몸은 껍질하고 뼈만 남아서 옆에 있는 밥도 먹을 사이 없이 구상하고 연구했으나 세월은 다 가버리고 지쳐서 쓰러져 있는데, 우루벨라 촌장 딸 ‘수자타’가 유미죽(乳糜粥: 우유로 만든 죽)을 한 그릇 갖다 줘서 먹고 나니까, 피와 살이 되어서 정신이 드는 것이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보니까 죄를 짓고 나와서 인도 땅 밟을 자격도 없고 인도 땅의 물을 먹을 수도 없고 산천초목까지도 ‘네 가지 죄 지은 싯다르타 태자 놈아!’하고 전부 욕을 하는데,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쳐서 ‘아이고, 내 팔자야!’하고 통곡하다가 깨달은 때가 납월 팔일이다. 확실히 모르고, 분명히 모르고, 크게 몰랐기 때문에 크게, 아주 크게 깨달았음을 알아야 해.”

스님이 보기에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신 뜻을 모르고 불상에 절하는 것은 전부 ‘헛절’이다. 때문에 “헛절 많이 하지 말고 절 한자리를 해도 부처님의 본뜻을 알고 해라. ‘정말 네 가지 죄를 지었는데도 3천 년을 존경받는 그 이유를 내게 눈꼽만치라도 가르쳐 주면 내가 고마워서 절해 주겠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절해 보라”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전국에서 봉축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싯다르타 태자가 ‘주행칠보(走行七步: 일곱 걸음을 걷고)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와 아래에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이라고 말한 그 뜻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봉축 행사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라 하는 그 정신은 아만도 아니요, 도도한 아상(我相)도 아니요, 오직 이 밝은 빛이며, 참 자아의 발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밝은 빛은 성인의 것도 아니요, 중생의 것도 아니요, 우주 법계에 항상 존재하고 있으나, 그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싯다르타 태자만이 먼저 발견한 것이야.”

부처님께서는 저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부처요, 조사임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각자가 ‘본래부처’임을 자각하고 부처행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격식 밖(格外)’의 도리를 담고 있는 법문이다. ‘유아독존’의 깊은 도리를 체득해 그 자유자재한 뜻을 맛보게 되면 비로소 ‘산 불자’가 된다는 가르침이다.

부처님 오신 참뜻을 이렇게 설파하는 성수 스님은 누구보다도 부처님오신날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초파일, 석탄절, 불탄절 등으로 불리던 부처님 탄신일을 순 우리말인 ‘부처님오신날’로 통일해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님은 무려 40년 전의 일을 오늘의 일처럼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말씀하신다.

1967년 조계종 총무원 포교부장과 조계사 주지 소임을 볼 때의 이야기다. 당시만 해도 젊었던 성수 스님은 평소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뛰어넘어 활달한 포교사업을 펼쳐 불교계를 놀라게 했다. 아직 가난한 시절, 스님은 조계사 주지에 취임한 지 3일 만에 서울 시장을 만나겠다며 면담을 신청했다. 그러나 시장이 바쁘다보니, 그날 저녁 7시에야 만나게 됐다.

9살 연상이었던 김현욱 시장은 초면에 스님에게 거침없이 말했다.

“왜 찾아오셨소?”
“조계사 신도회장 좀 맡아주시오.”
“나는 그런 거 할 줄 모릅니다.”
“경상도 무지렁이가 서울 와서 일 좀 하게 해주시오.”
“그럼 뭘 도와드려야 합니까?”“구청장 17명이 신도회 부회장으로 들어와야 일 좀 할 것 아니오.”
“그건 맞소.”

이튿날 서울 시장과 구청장들이 조계사에서 예불을 했으며, 시장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당시 논 100마지기에 달하는 거금인 20만원을 선뜻 내놨다.

이렇게 해서 그 해 부처님오신날에는 그야말로 풍성한 생일잔치가 벌어졌다. 스님은 삼립식품 공장에 고급 빵 3만 개를 주문했다. 이 빵으로 스님은 서울시내 111개의 양로원에 수용돼 있는 8751명의 노인과 종사자에게 1만 개를 나눠주고, 1만 개는 조계사를 찾는 신도들에게, 나머지 1만 개는 서울역 행인들에게 나눠주었다. 봉축의 기쁨을 서울 시민과 함께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쯤에서 스님의 법문이 다시 이어진다.

“불자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보시의 의미를 알아야 해. 부처님은 등 팔아먹으라고 오신 게 아니야. 부처님께 올린 떡이나 과일, 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돌려주는 게 참된 생일잔치다. 양로원에 빵이라도 보시하고, 학비 없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미꾸라지 한 그릇이라도 방생하며 보시하는 날로 기억해야 해. 도(道) 닦는 것도 나눠줄 줄 알아야 진짜 도 아니겠어.”

1975년, 부처님오신날의 공휴일 지정에도 성수 스님은 큰 역할을 했다. 김현욱씨와 불자국회의원 등을 통해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지정을 박 대통령에 수차례 건의했으며, 학자 10명과 스님 10명이 참석한 세미나도 열고, 시민들의 도장을 받은 서명 용지를 트럭 세 대 분이나 청와대에 싣고 가기도 했다. 결국 국민들의 50% 이상이 찬성한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지정이 성취된 것이다.

이처럼 정치인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스님의 법력은 두둑한 배짱이 없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스님 표현으로는 “6개 본사급 주지소임을 볼 때마다 지역 어른들을 부려먹는(?) 재주가 비상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범어사 주지소임을 맡았을 때의 일화다. 스님은 처음 부산시장을 두 번이나 찾아가도 만나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스님을 무시한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초도순시 차 부산에 들렀을 때였다. 부산시장과 지역 유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성수 스님은 유일하게 스님으로서 현장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바쁜 일정상 다른 사람들과는 악수만 했는데, 스님과는 악수를 한 후 대화가 이어졌다.

“범어사 주지입니다.”
“범어사가 전쟁 통에 많이 황폐화되었는데, 복원은 좀 하오?”“부산시장이 음으로 양으로 거들어줘서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부산시장의 등을 툭툭 치면서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만 해도 대통령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때라, 그 신임을 받는다는 것은 출세 길이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부산시장이 부랴부랴 범어사를 찾아와서 주지실 앞마당에서 절을 했다. 절에 1원도 시주하지 않고서 대통령에게 칭찬을 들었으니, 스님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황송해 했다.

스님이 차 한 잔을 건네자, 부산시장이 말했다.
“뭘 도와드릴까요? 스님.”
“물질 말고 행정적, 사무적으로만 도와주시오.”
“그래도 뭐 좀 화주(化主)를 하고 싶으니 화주 책을 주십시오.”
“화주 책은 따로 없습니다.”

그 후 시장이 종무소에서 화주 책을 만들어 가서 시장실에서 시주를 받아 왔다. 시장실에 드나들던 지역 유지들이 적지 않은 돈을 시주해서 그것을 모아 절에 보시한 것이다. 이때부터 범어사에는 하루에 고급 승용차 50대씩이 드나들 정도로 사격(寺格)이 높아졌다. 덕분에 범어사는 30동의 건물을 새로 짓고도 돈이 남을 정도로 불사금이 풍부해졌다. 비구 스님 100명이 어렵게 공부하던 범어사가 재정이 넉넉해져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그야말로 대통령 앞에서 말 한 마디 잘 한 공덕으로 ‘범어사의 중창주’라고 불릴 정도로 성수 스님이 큰 불사를 한 것이다.

“돈은 잘 지키고, 잘 써야 해.”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중생제도를 위해 알뜰하게 모으고 좋은 곳에 써야 한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삼성그룹 창립자인 고(故) 이병철씨와 대한불교진흥원 설립자인 고(故) 장경호 거사 등 큰 부자들, 그리고 거물급 정치인들과의 인연담을 듣다 보면 스님의 법력과 불교의 보이지 않는 힘을 실감하곤 한다. 그러나 요즘은 불교세가 약해져서인지, 천주교 신부님들이 정치인, 경제인들과 유대관계도 깊고 영향력도 큰 세상이 되었다. 권력과 돈에 비굴하게 타협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과 경제인들을 정신적으로 지도해서 바르게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부처님 법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불이법(不二法)을 제대로 실현하는 길이 아닐까.

이런 연장선에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과 경제인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십사고 청했다. 그러자 스님은 “정치인들이 무릎 꿇고 물을 때, 한 마디 척 하는 거야.” 라며, 들을 자세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고 하신다.

그 대신 스님은 해방 후 범어사 위령재에 이기붕씨가 참석했을 때의 일화를 들려주신다.

당시 스님은 약관 27세에 불과했는데, 어느 큰 행사에서 좌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권력자인 이기붕씨에게 “질문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하고는 당당히 말했다.

“불교 재산을 빼앗아 노동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좋은데, 국보 등의 문화재를 관리할 예산은 세워놓았습니까?”

이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 이기붕씨는 “10리 안에 있는 사찰 재산의 절반은 돌려주라”는 행정지시를 내려서 통도사는 150마지기의 땅을, 해인사는 300마지기의 땅을 돌려받았다고 한다. 특히 해인사는 10리 안에 논이 거의 없어서, ‘100리 안까지 절 땅을 돌려주도록 예외 규정을 적용받았다고 한다.

2시간여의 즉석 법문에 피곤하신지, 스님은 불자들을 위한 당부의 말씀으로 특집 인터뷰를 정리하신다.

“정신이 1초만 나가도 송장이 되는 것이니, 삶이 소중한 줄 알고 살아야 해. 지구가 돌고 돌지만 태양은 움직이지 않잖아. 밝은 정신은 가만히 있는데, 물질은 빙빙 도는 것과 같아. 숨들이 쉬고 내쉬지 못하면 죽잖아. 자기한테 속고 살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꿈속에 살면서 남의 다리 긁지 말고 불알 값 하는 사내가 돼야 해. 나는 사내 같은 사내냐? 뭐하고 사느냐? 하고 따져 보고 꿈을 깨어야 해. 나이 80이 돼도 배울 건 배워야 해.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고 확실히, 분명히 몰라야만 크게 깨닫게 돼.”

조실채 바깥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시는 스님께 인사를 올리고 돌다리를 건너면서 한 생각이 일어났다. ‘올 부처님오신날은 애독자들의 가슴에 어느 해보다 밝은 등이 켜지지 않을까?’ 라고.

성수(性壽) 스님은
192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난 성수 스님은 44년 양산 내원사에서 성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 48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67년 조계종 총무원 포교부장, 조계사 범어사 해인사 고운사 주지, 78년 세계불교지도자 대회(일본주최) 한국 대표, 81년 조계종 총무원장, 94년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승려에게 계를 내리는 최고 책임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전계대화상 겸 명예원로의원이며, 경남 함양 황대선원, 산청 해동선원, 서울 법수선원의 조실로 주석하고 있다.
저서에 <선문촬요> <불문보감> <열반제> <선행문> 등 10여권이 있다.
함양 황대선원=김성우 객원기자 |
2007-05-24 오전 9:53:00
 
한마디
"초파일 폐지운동" 작성자여, 그대 눈을 뜨고 하늘을 보라 하늘이 보이는가. 눈을뜨고 땅을 보라 땅이 보이는가. 무엇이 다른가. 서구에서는 이미 몰략에 접어든 기독교가 마지막 우리나라에서 서광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왠일인지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3국시대 이후고려까지, 불교가 천년가까이 민족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을 알고는 있는가. 조선조의 척불숭유로 불교가 지독한 박해를 받는 속에서도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 불교를 신봉하며 궁궐안에 내불당을 짓고 신행생활을 왜 했는지 그대는 아는가. 또 부인인 소헌왕후가 죽자 수양대군을 시켜 석보상절을 짓게하고 이 석보상절을 보고 찬한 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니 이 모두 국문학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걸작임은 알터..., 해서,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불교를 모르는 사람이 불교에 80%이상 귀의 할때까지 부처님오신날의 참 뜻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특별주간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처님오신날 공휴는 대한민국과 영원히 같이하고, 생업에 지장이 있다면 그대의 판단처럼 더 많은 사람이 쉬는 12월 어느날 부터 공휴를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2007-05-24 오후 4: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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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을 공휴로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이다. 국민 중에 초파일에 절에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기독교와 천주교 인구가 국민의 절반을 넘었다. 불교는 25퍼센트도 안 된다. 따라서 국민의 2할 정도를 위해 휴일로 지내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좀 먹는 일이다. 앞으로 불교는 전국민 중에 1할 정도가 따르는 소수 종교가 될 게 뻔하다. 지금도 소수 종교다. 특히 학생들은 절에 거의 안 간다. 군인들도 부대에서 보면 초파일이라고 해서 절에 가는 게 아니다. 국민 중에 늙은 사람들만 절에 다닌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공부하고 일하러 가야 한다. 노인이나 부녀자들은 공휴일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절에 갈 수 있다. 출근을 하지 않는 노인이나 부녀자들은 평일날에 주로 절에 간다. 초하루나 보름법회라는 걸 보면 주로 평일날 낮에 한다. 그러니까 굳이 공휴일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자기네 종교 생활을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초파일을 공휴에서 우선 제외시키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아니면 전 국민이 서명을 하자!!! 특히 교회나 성당에서 서명을 받으면 전국민의 70프로가 동참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다. 많은 국민이 찬성하면 따라야 한다.
(2007-05-24 오전 10: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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