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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에 붙어있는 지대방에서 음미하는 한 잔의 보이차는 그야말로 선다일미(禪茶一味)의 세계로 이끈다. 차를 마시며 나누는 법담은 언제나 작은 기쁨으로 충만한 느낌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요가연수원, 정신세계원 등에서 활발하게 관법을 지도하던 그가 정진에만 매진하고 있는 까닭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제는 수행 지도자들이 많아졌잖아요. 저도 제 수행을 갈무리하고 싶고요.”
불원 거사는 1979년 선(禪)에 입문하여 경봉, 성철, 향곡, 송담 스님 등 당대 선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시중과 산사 토굴에서 10여 년 간 참선한 선객이었다. 간화선을 통해 힘을 얻은 그는 미진한 수행을 보충하기 위해 1990년 미얀마 마하시 위빠사나 선원으로 출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얀마에서 비구계를 받았다.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의 선원에서 관법 수행을 했고, 1992년 일본 시모노세키 모지 선원에서 정진했으며, 갑장사 조실 세웅 스님의 지도하에 대승관법을 닦기도 했다. 수행경력만 해도 27년이나 된다.
불원 거사가 젊은 시절, 간화선 수행을 하게 된 동기는 소박했다. 사업에 성공하여 유마 거사처럼 남을 돕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성철 큰스님을 찾아뵙고 재벌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스님은 ‘삼베 서근(麻三斤)’이라는 화두를 주면서, “매일 108배 참회와 보시행을 하면 소원이 성취 된다”고 했다.
이후,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화두 참구의 요령을 체득한 그는 기아산업 무역부에 근무하던 시절, 하루 평균 18시간 화두를 붙들고 있을 만큼 애를 썼다. 화두가 잡히자 꿈에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을 만큼 용맹정진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5년, 직장을 버리고 산 속에서 5년, 꼬박 10년간 계속해서 화두를 들었다.
간화선으로 힘을 얻은 후, 불원 거사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미얀마나 태국의 관법(위빠사나)을 두루 공부했다. 구도여행은 원효 스님의 대승관법을 복원하겠다는 발원 때문이었다.
“저는 한국 수행법의 원형을 원효사상에서 찾습니다. 남방 관법이 아비달마의 아공ㆍ법유(我空法有)와 업감연기에 근거해 일신의 열반에 머무는데 반해, 원효 스님의 대승관법은 일심의 진여에 의지해 너와 내가 둘이 아닌 금강심지(金剛心地)에 머물면서 동체대비의 보살행을 지향합니다. 한국적인 관법을 복원해 간화선 수행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위빠사나와 간화선의 연결고리인 동시에 양자의 회통을 가능하게 하는 대승관법에 더욱 궁금증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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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의 간화선과 남방 위빠사나를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지만, 불원 거사는 정(定, 止, 사마타)과 혜(慧, 觀, 위빠사나)를 함께 닦는다는 점에서는 양자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본다.
“남방에서는 무아(無我) 위주의 현상관(隨觀) 중심이고 북방에서는 공을 중심으로 하는 불성의 본성관(直觀) 위주입니다. 남방에서는 오온 구성 요소의 변화 속에서 무상, 고, 무아의 현상을 관찰했고, 북방에서는 오온과 열반을 하나로 보아 본성을 직관(회광반조)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입니다. 현상과 본체는 불꽃과 빛처럼 둘이면서 하나이기 때문에, 그 중 하나만 철저히 꿰뚫어 보면, 본래 있는 참 나인 열반은 발견되는 것입니다.”
불원 거사는 화두로 깨쳤다면 그때는 자동적으로 반야관이 완성된다고 본다. 깨달은 아라한이나 붓다는 한 결 같이 자비와 반야관을 실천했으며, 달마 대사로부터 육조 스님 이전의 초기 선종인 여래선(如來淸淨禪)은 대승관법의 원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후기 선종사에서 간화선이 형성되면서 나타난 일부 수행자들의 선병(禪病)은 대승관법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명연수 선사는 <종경록>에서 깨치고 나서도 마음의 생ㆍ주ㆍ이ㆍ멸을 알아야 한다며, 4념처 관법을 강조했습니다. 선종, 특히 후대의 간화선에서는 너무 공관(空觀)에 치우치면서 유식(唯識)을 경시했기에, 유식관법에서 수행체계를 보완해야 합니다. 대승의 유식관법이 거의 단절되었으므로 남방의 12연기관을 보완하든가, 천태지자 대사의 지관법이나 초기 선종 선사들의 수행법, 원효 <대승기신론소>의 자성 진여관, <금강삼매경론>의 무생관 등에서 수행체계를 복구해야 합니다. 특히 자비관과 원효의 6바라밀 수행은 깨달음만 강조하는 한국 선수행의 보완점이라 생각합니다.”
불원 거사는 통불교의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는 간화선과 위빠사나가 함께 발전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대승경전에 입각한 화두선과 관법이 조화롭게 체계화 되는데 일조할 계획이다. 그의 조용한 노력이 간화선 수행체계의 확립과 대중화를 고민하고 있는 조계종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란 기대감에, 하산 길의 발걸음이 더욱 경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