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선진교육을 책임질 만한 인격적 자질과 인권 감수성을 갖춘 교사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수 함량미달의 교사들 때문에 전체 교사들에 대한 신뢰감이 상실되고, 특히 교사 개인의 종교편향성과 인권의식 결여로 인해 학생들이 겪게 되는 고통은 이제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학교 내에서 종교 갈등과 인권침해를 없애고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리감독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학교장의 인권의식과 해결의지일 것이다. 사실 학교장의 의지만 확고하면 교육현장에서의 웬만한 종교인권 침해는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학내 종교 갈등은 문제의식이 부족한 학교장 스스로가 덮고 감추려는 경향 때문에 더 꼬이기도 한다.
더구나 학교장의 종교성향이 강하면, 공교육의 일선 책임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아예 앞장서서 종교 강요와 차별을 부추기는 경우마저 없지 않다. 도봉구에 있는 서울외국어고등학교의 예를 들어 보자. 이 학교 김희진 교장은 2006년 9월 16일 전일제 계발 활동(CA) 대신 자신이 집사로 있는 교회 목사를 강사로 초청, 1, 2학년 학생 전체를 강당에 소집해 종교집회에 참석하도록 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강사는 개신교식 ‘예배’를 진행하고 “원죄의 결과는 죽음 뿐”이라는 섬뜩한 내레이션과 함께 ‘사탄ㆍ미신ㆍ무교ㆍ불신ㆍ죄악’ 등 불교를 암시하는 듯한 문구가 적힌 송판을 격파하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하였고, 교장은 한 술 더 떠 “이 강연은 서울외고가 미션스쿨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는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재학생들과 동문들은 명백한 종교행사로 규정, “큰 교회에서나 있을 법한 부흥회였다. 입시에 시달리는 수험생들에게 편협한 종교집회 참여를 강제하는 게 말이 되느냐. 2005년 11월 서울외고를 인수한 청숙학원(이사장 이주헌)이 서울외고를 미션스쿨로 변신시키려 한다”며 반발했다고 한다. 이 학교는 또 2006년 1월 기간제 신임 교사를 채용하면서 자격 요건을 ‘기독교 신자’로 제한해 법이 보장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누구나 나름대로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현실에서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났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당연히 본인이 져야 한다. 종교 관련 시민의 권리를 위해 창립된 ‘종교자유정책연구원’에서 보낸 질의서에 대한 답변공문에서 김 교장은 “기독교 가치관에 따라 학생들이 성장하길 바라는 교장 개인으로서의 소망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것으로 책임이 모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나 순진하다 못해 무지하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미 학생들의 학습권을 무시하고 인권을 짓밟은 권력을 휘두르고도 교장 스스로 무엇이 잘못 된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상급 감독기관인 교육청과 교육부 관료들의 무사안일주의적 태도일 것이다. 종교 관련한 사립학교의 정체성 문제나 특정종교 신자 교사 채용 문제 등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그렇지만 비교육적ㆍ반인권적 사건에 대해 신속하게 파악 수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사전예방 차원이나 사후관리 차원에서도 국민들이 신뢰할 만한 엄격한 행정지도를 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학교를 감독하기보다 감싸기에만 급급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기보다 소나기를 피해가려는 객처럼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학교 현장에서의 인권에 대해 관심도 없고, 특히 종교인권 문제라면 아예 눈을 감아버리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자신의 종교와 연관 지어 의도적으로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물론 교육부 관계자도 사건이 표면화 될 때마다 “국가 의무교육기관인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는 민ㆍ형사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원론적인 지적은 한다. 그러나 소송 가능성의 원칙만 가지고 구제할 길이 열려 있다고 변명하는 것은, 입시전쟁이란 상황과 함께 우리 국민의 정서상 학부모가 자녀의 스승이나 모교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짐짓 모른 체하는 구차한 책임회피에 다름 아니다.
교육청과 교육부가 종교문제는 골치 아프다며 외면하거나 교사 개인이나 학교장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종교자유 같은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인권침해 문제가 사법부로 넘어가기 전에 그래도 국민이 기댈 곳은 관리감독기관인 교육청과 교육부 아니겠는가. 어쩌면 감독기관의 안이한 태도가 일부 종교사학의 종교만행을 더 심화시키지 않았나 생각된다. 모든 교육주체가 학교에서의 종교 강요와 차별은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인식과 공동의 책임의식이 없는 한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은 후진국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