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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서 칼럼]학교 내 종교적 폭력 행위 처벌 대상
어린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부모와 같거나 그 이상의 존재다. 그런 선생님으로부터 받는 종교적 차별대우는 학생들의 어린 시절을 어둡게 할 수 있기에 어른들이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자식을 학교에 맡기는 학부모들은 학교나 교사에 대해 웬만하면 문제 삼지 않는다. 아니, 문제 삼을 수 없다. 그것은 아이가 알게 모르게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서다. 선생님과 학생의 이러한 특수 관계 때문에 피해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후유증이 크고 오래 간다.

문제 발생 시 학생의 전학이나 교사의 전근은 모두 미봉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 아이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마음의 깊은 상처는 누가 치유해 줄 것인가. 기독교 국가도 아닌데 가해자인 교사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그대로 남아 있고, 종교가 다른 게 무슨 죄라고 학생과 그 가족은 전학과 이사로 또 다른 번잡함과 피해를 입어야 하는가. 또 문제의 교사를 전근시키는 경우도 학교로서는 대단한 결정을 한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 또한 상황의 개선으로 보기 힘들다. 옮겨간 학교에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감옥 갔다 와 별을 단 민주 투사라도 된 것처럼 오히려 같은 종교를 믿는 다른 교사들의 무언의 지지를 받으면서 의기양양하게 되풀이하면 또 전근을 시킬 것인가.

종교재단이 설립한 초중등학교에서는 편향적 언행 말고도 더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하니 심히 우려스럽다. 극소수이기는 하겠지만 어떤 선생님들은 상식을 넘어선 종교적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학생들의 증언으로 드러나고 있다.

초등학생의 경우와 달리 중고등학생쯤 되면 단순한 타종교 폄하나 개종권유에 크게 상처 받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면 마음 속 깊이 분노가 쌓이게 될 것은 뻔하다.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 즉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예를 들면, ‘이단 믿으면 안 된다’며 천주교 신자인 학생이 갖고 있는 십자가나 묵주를 빼앗아 박살을 내기도 하고, 성경책을 소지하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거나 심지어 구타 등 체벌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불자 학생들에게 제 돈으로 성경을 구입하여 들고 다니라 하고, 또 갖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때리기까지 하다니... ‘종교가 다르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큰 죄인가. 도대체 이게 어느 나라 얘기란 말인가.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기독교인에게 불경을 들고 다니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인권문제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방 입장이 되어 보면 간단히 풀린다.

종교를 이유로 폭력까지 휘두르는 학교현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라면 이를 바로잡기 위한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상식이 안 통하는 종교적 차별과 인권침해 사안은 강력한 제재 수단이 동반되지 않고는 개선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행위가 너무나 오랫동안 아무 죄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자랑스럽게까지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중단시킬 유일한 수단은 결국 그 행위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묻는 길뿐 아니겠는가. 예를 들면 종교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킨 교사들은 견책, 감봉, 정직 등의 징계와 함께 인사기록으로 남겨 차후 승진 등에 불이익을 받게 하고, 도를 넘거나 반복되는 경우 아예 해임 또는 교사자격 박탈로 교육계에서 영원히 퇴출하는 방안도 고려함직하다.

그러나 종교인권에 관한 의식이 현저히 부족한 교육계에서 그런 방향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할 의지가 있느냐는 상당히 의문이다. 정신적ㆍ육체적 피해정도가 심한 경우 어쩌면 미성년자인 학생의 법적 책임자인 학부모가 직접 나서서 소송을 통해 보상과 함께 사법적 판례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물론 학부모가 학교나 교사를 대상으로 법정에서 다투는 일은 우리 사회의 정서상 너무 힘든 일이며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유를 위해 그 길밖에 없다면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그것은 학교 내에서 종교인권 유린을 철저히 뿌리 뽑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 될 것이다.

공교육현장에서의 비교육적ㆍ반종교적 폭력 행위를 근절시키고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여러 통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우리 사회에 고발도 하고 하소연도 해보지만, 묵묵부답 우이독경이다. 자기 자식에 직접 피해만 없으면 눈감아버리고 마는 우리 어른들의 이기주의적 습성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 폭력은 의외로 가까이 있으며, 언제라도 내 자식이 그 피해자일 수 있다는 경각심과 관심만이 종교로 인해 고통 받는 학생들이 없는 밝고 건강한 학교를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광서 교수 |
2007-04-26 오후 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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