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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윤택하게 하는 지장보살의 등장과 더불어 이‘같은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나고 그곳에 모인 회중들은 무한한 가피력을 입습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어원은 범어 키티쉬가르바(Ksiti-garbha)입니다. ‘키티쉬’란 ‘대지(大地)’를 뜻하고 ‘가르바’란 ‘생명을 품는 태(胎)’를 의미합니다. 고대 인도의 ‘대지의 신’인 대모지신(大母地神)에 그 연원이 있다는 지장보살은, 대지가 마치 어머니와도 같이 세상만물을 품어 발육 성장시키는 신성한 힘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물론 지장보살은 우리에게 명부전(冥府殿), 즉 죽음의 세계를 관장하는 주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구한다는 구원자로서의 지장보살의 의미에 앞서, 대지가 만물을 기르는 것과도 같이 중생을 윤택하게 증장시키고, 또 죽은 영혼에까지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지장보살의 보다 근본적인 의미는, 지장보살 관련 초기 경전인 이 <지장십륜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온갖 위험과 고난에서 구해주기는 부모와 같고, 여러 가지 비겁하고 용렬한 것을 감싸주기는 우거진 숲과 같고, 여름에 먼 길을 가는 이에겐 쉬어갈 큰 나무와 같고, 더위에 목마른 자에겐 맑은 샘물과 같고, 굶주린 이에게는 달디 단 과실과 같고, 몸이 드러나 자에겐 의복과 같고, 더위에 시달리는 자에게는 두터운 큰 구름과 같고, 빈궁한 자에겐 여의보주와 같고, 두려워 떠는 자에게는 편안히 의지할 바가 되고, 갖가지 곡식을 가꾸는 이에게는 단비가 되고….’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와 같은 이러한 여성적 느낌을 한껏 풍기는 아름다운 고려시대의 지장보살을, 태평양 건너 미국 워싱턴에서 우연한 기회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프리어갤러리(스미소니언협회)는 한ㆍ중ㆍ일의 동양 유물 컬렉션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에 소장된 고려불화 조사를 마치고 돌아서려니, 담당 학예관이 비공개 작품이 하나가 더 있다며 신주 모시듯 가지고 나와 펼쳐보여 준 것이 이 고려 지장보살도입니다(그림1).
고려시대에는 단독 ‘지장보살도’,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함께 그려진 ‘지장삼존도’, 열 명의 시왕과 함께 그려지는 ‘지장시왕도’ 등 다양한 형식의 지장보살도가 다수 존재하여 아미타신앙과 더불어 지장신앙이 매우 유행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독으로 그려진 지장보살입상도 중에서, 이렇게 자태가 아름답고 맵시 있는 지장보살은 참으로 보기 드물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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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보석이 알알이 박힌 금석장(그림2)을 한 어깨에 걸치고 석장대를 왼손으로 살짝 잡아 바치고 있습니다. 영롱한 투명 여의주(그림3)를 오른손 바닥에 받쳐 들고 있고, 가사는 남색에 군의(치마)는 붉은 색인데, 수놓아진 문양이 아직도 생생하게 금빛을 발합니다. 지장의 발은 금연화(그림4)가 떠받치고 있군요. 그 외 장식은 링 귀걸이와 영락 목걸이로 다른 보살에 비해 매우 간결합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가락 놀림, 왼발을 살짝 당기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표현된 옷자락의 탄력, 과하지도 또 덜하지도 않은 매우 매력적인 자태입니다.
물론 지장보살은 보살입니다만, 보통 보살처럼 높은 보관을 쓴다거나 화려한 영락 장식을 주렁주렁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머리모양은 삭발한 승려인 성문형상입니다. 그러니까 보살과 성문의 중간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장십륜경> 및 <지장보살본원경> 등에도 ‘성문(聲聞)의 모습으로 몸을 나투신다’라고 명기되어 있는데, 지장보살을 어찌하여 보살임에도 불구하고 성문형 즉 승려의 모습을 취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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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신앙과 관련한 지난 연재에서도 언급했듯이, <법화경>에는 성문과 같은 범부의 모습으로 중생들 속에 섞이어 이들을 구제하는 것을 ‘방편을 쓴 보살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보살들은 부처의 세계와 속세를 연결해주는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보살의 모습보다 더욱 친근한 중생들과 같은 성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민중 속으로 대중들의 고통 속으로 가깝게 다가서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겠지요.
미래의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육도(六道: 천, 인,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한 후, 성불하겠다고 커다란 서원을 세웠기에 지장보살은 ‘대원본존(大願本尊)’ 지장보살로도 통합니다. 지장보살은 이렇듯 중생들이 현세에 지은 악업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내세(특히 지옥계), 즉 업(業)을 짓는 현재 인간세와 그 업에 대한 보(報)를 치르는 내세, 양쪽과 밀접히 관계하기에 ‘유명교주(幽冥敎主)’ 지장보살 및 ‘남방화주(南方化主, 남방이란 남염부제를 지칭하며 인간세를 뜻한다)’ 지장보살로 지칭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천계에서 지옥계에 이르는 육도를 분주히 다 넘나들자면, 게다가 지옥의 형벌 현장에서 죄지은 영혼을 변호하랴, 염라대왕을 설득하랴, 세운 서원대로 삼악도의 일체 중생들을 모두 건져내려면, 화려한 장식과 의습 거추장스런 보살의 차림새로는 사실 무리겠지요.
지장보살은 금석장과 여의주를 그 특징 지물로 가지고 있습니다. 석장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대신하는 징표입니다. 마치 왕의 권한을 대신하는 암행어사의 마패와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특히 그 누구도 열 수 없다는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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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님이 특별히 빌려준 석장을 가지고 아비지옥으로 향하는 목련존자의 이야기를 목련경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여의주는 어두운 지옥에 광명을 비추어 밝히는 기능을 합니다. ‘그 광명으로 인해 병이 있는 자 모든 병이 낫고, 죽게 되거나 결박되어 옥에 갇힌 자들이 모두 풀려나고, 몸과 말과 뜻이 거칠고 무겁고 더럽고 탁한 자들도 모두 부드럽고 청정함을 얻고 … 가지가지 형벌로 고통당하는 자가 이를 모두 여읠 수 있다<지장십륜경>’고 합니다.
조선전기 성종16(1485)년에 간행된 경본을 비롯한 다수의 현존하는 <지장보살본원경>의 첫머리 지장경계청 부분에는 ‘자비스러운 인으로 선근을 쌓아 맹세코 중생을 구제해내는 (지장보살이) 손 가운데 가진 금석주장을 떨치면 지옥문이 스스로 열리고, 손바닥 위에 밝은 구슬의 광명은 널리 대천세계를 비추나니’라는 문구가 확인되어 그 지물의 기능을 명료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지장보살을 어김없이 지옥과 현세의 고통 속 현장을 넘나들며 금석장으로는 수많은 지옥문을 두드리고, 여의주의 광명으로는 어둠 속 영혼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