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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의 부처에게 절하지 말고 마음부처에게 절하세요. 자기 마음과 더불어 생불이자 활불, 본래불, 미래불인 남편과 아내에게 각자 맞절하시기 바랍니다.”
3월 21일 오후 7시, 봉은사 법왕루에서 문을 연 ‘월암 스님의 간화정로(看話正路) - 간화선을 말한다’ 주제의 법회에는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5백여 대중이 빼곡히 자리를 메웠다. 서울 불자들을 대상으로 첫 법문에 나선 월암 스님(벽송사 선원장)은 “선(禪)은 지금 여기, 고통의 현실속에서 그 고통이 ‘실체가 없음(空)’을 직하(直下)에 요달(了達)하여, 고통을 행복으로 돌려쓰는 깨어있고 열려있는 삶 자체"라며 대중들의 정진을 촉구했다. 법문 중간중간에 실생활 속의 선수행을 언급하며 본래부처(本覺)로서 부처행(佛行)하며 살 것을 당부하는 대목에서는 신도들이 박수를 치거나 웃음으로 화답한다.
서울에서, 그곳도 강남 한 복판에서 열린 선법회에 이렇게 많은 불자들이 동참해 법문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는 것은 이례적인 광경이다. 서울 강남에서도 선(禪) 바람이 불었다고나 할까. 여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수좌 출신의 명진 스님이 새 주지로 부임하면서 ‘선종 수(首)사찰’ 봉은사에 수행붐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수행ㆍ휴식 도량을 가꾸기 위한 주지스님의 중창불사 1000일기도 중 107일째를 맞은 가운데, 월암 스님이 지난해 9월 8~18일 지리산 벽송사에서 복원한 선회(禪會)를 봉은사에서 다시 열면서 선풍(禪風)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선회는 선교겸수(禪敎兼修)와 참선의 생활화를 위한 월암 스님의 원력을 실감한 자리였다. 석달간의 겨울안거를 마치고 나온 수행자가 당신의 정진에서 얻은 힘을 나눠주기라도 하려는듯 ‘뜬 구름 잡는 선이 아닌 자심(自心) 속에 살아움직이는 선’을 힘차게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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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란 삶을 떠날 수 없고, ‘한 생각(一念)’을 떠나 말할 수 없기에, 한 생각 일어나는 즉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이날 법문의 요지이다. 곧 한 생각 일으킬 때 번뇌ㆍ망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일념해탈’과 ‘일념성불’을 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념윤회에 너무나도 익숙한 프로들이다. 한 마디 좋거나 나쁜 말에 잘도 웃고 잘도 운다. 경계가 일어날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다. 때문에 임제 스님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주체적인 삶을 살고,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진실되라(隨處作主 立處皆眞)” 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주인으로, 일심으로 살라는 가르침이 ‘일념해탈’의 도리인 것이다.
사람은 본래부터 성불해 있어서 본각이지만, 무명으로 인해 경계에 끄달리는 불각(不覺)의 삶을 살고 있다. 중생이 불각에서 본각을 회복하기 위해 일심을 닦는 것이 수행이다. 하지만 선은 방편을 거치지 않고 그 마음을 바로 보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을 강조한다.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인심(人心)이 곧 불심(佛心)이라 말하는 것이다. <화엄경>에서 “삼계는 오직 일심이니, 마음 밖에 별다른 법이 없다. 마음, 부처, 중생이 일심으로 평등하다(三界唯一心 心外無別法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고 설한 것도 이와 같다. 마조 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즉심시불(卽心是佛)’을 말했고, 임제 스님은 사람이 그대로 부처라는 ‘즉인즉불(卽人卽佛)’을 설했다. 마음이 곧 부처인 도리를 깨닫는 것이 참선이요, 마음이 본래 없는데 마음으로 마음을 닦는 것이 참선인 것이다.
월암 스님은 “법당의 등상불에게는 정성껏 절하면서 본래불, 미래불인 살아있는 부처에게는 시기, 질투를 쉬지 않으니 이는 불공을 잘못한 것”이라고도 했다. <육조단경>에서는 “내 마음이 밝으면 부처님에게 절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마음 씀씀이(用心)‘가 바늘 구멍만해서 잘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서산 대사는 ‘천계만사량(千計萬思量)이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 했다. 천 가지 계교와 만 가지 사량분별이 붉은 화로 위의 한 점 눈과 같다는 것이다. 평생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하며 살아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인생이다. 결국, 마음 공부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실존적인 문제임을 스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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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이 밥값 계산하는 것은 순서가 따로 없습니다. 갑자기 염라대왕을 만나 혼비백산 하지 말고 태평한 시절에 이 일념, 일심, 한 물건(一物) 이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나고 살다가 죽는 것이 무엇인가? 이뭣고? 하는 화두를 챙겨야 합니다. 참선은 일심, 한 물건을 찾는 피할 수 없는 여행입니다.”
선은 딱딱하게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숨쉬고 내뱉는 일념지간에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이다. 일념 사이에 고통이냐 행복이냐, 생사냐 해탈이냐를 다투는 문제이다. 오욕락에 허우적 대다가 문밖에서 염라대왕의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릴 때 후회하지 말고, 삶이 반환점을 돌아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에 오직 할 것은 마음공부 뿐이라는 것이다.
가지가지의 완곡한 비유와 삶속의 예화를 곁들인 월암 스님의 선법문은 움츠리고 닫혀있던 불자들의 마음에 단비를 뿌려주는 심지법문(心地法門)이었다. 20년간 이곳저곳의 시민선방에서 참선했다는 보정(51ㆍ개포동) 보살은 “수행자인 대승보살은 언젠가는 본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법문에 환희심이 났다”면서 “번뇌ㆍ망념을 버리고 진여 본심으로 돌아가(捨妄歸眞) 본래부처로 부처행 하며 사는 것이 참선임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번 법회는 21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7~9시, 총 9회 동안 진행된다. (02)511-6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