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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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선의 리더들①-월담 이동호 거사
“견성이후 보임공부 통해 사무애(事無碍) 체득해야”

선종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연원이라 할 수 있는 <유마경>을 보면, 부처님의 10대 제자는 물론 여러 보살들이 유마 거사(維摩居士)와 문답하면서 쩔쩔 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인도의 유마 거사 이후 중국에는 방(龐) 거사, 한국에는 부설(浮雪) 거사가 3대 거사로서 불법을 드날렸다. 이후에도 고려의 청평(淸平) 이자현(李資玄), 조선의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거사가 높은 안목을 드러냈으며, 현대에도 백봉 김기추(1908~1985) 거사를 비롯한 여러 거사들이 재가선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유마 거사의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을 이어받아 생활선을 선양하는 거사들을 만나 재가 선수행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아프다’는 대승의 메시지를 남긴 유마 거사의 발원처럼 실제로 아픈 이들을 치료하며 불법을 전하는 이가 있다. 전주 이동호내과의원 원장 겸 대한태극권협회 회장으로서 국민의 심신 건강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월담(月潭) 이동호(李東豪ㆍ69) 거사가 그 주인공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에 위치한 내과의원 원장실에서 만난 월담 거사는 오랜 수행에서 우러나오는 선기(禪機)를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서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병원 진료실과 태극권 수련실, 병원 내에 설립한 한국동양학연구원을 월담 거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차례차례 둘러 보던중 12개 국어로 된 대장경과 불교, 유교, 도교 등 동양학 관련 5만권의 장서를 갖춘 연구원의 규모에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국민생활체육전국무술연합회 회장, 인상학원ㆍ인상무술고등학교 이사장, 원각정사 선원장, 등 10여개의 직함을 가진 월담 거사는 바쁜 단체 업무를 병행하며 진료 시간 틈틈이 인터뷰를 하는데도, 대화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어졌다. 내방한 손님을 맞이하고 전화받고, 회의하고, 진료하는 그 바쁜 시간들이 무심(無心)으로 이어지면서도 활발발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아무 것도 한 것 같지 않다”는 월담 거사의 말을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일없이 한가한(無事閑) 도인’을 눈앞에서 목격한 셈이다.

19살 때, 아름다운 동네 누나를 짝사랑하면서 그 열병으로 도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월담 거사. 그가 서양철학, 기독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를 탐구하다 한계를 느끼고 비로소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전남대 의대본과 1학년에 재학당시 광주 동광사에서 현공(玄空) 윤주일(尹柱逸ㆍ1895∼1969) 법사를 만나면서 부터였다. 한용운, 백용성 스님의 감화를 받고 수행해 온 노 법사의 탁월한 법문을 듣게 되면서 월담 거사는 비로소 대신심, 대의심, 대분심이란 수행의 3요소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월담 거사는 화두 의심이 독로(獨露)되어 자나 깨나 화두(화두는 공개하지 않음)가 들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심지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도 화두 의정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깊은 마음이 화두 의심이라면, 옅은 마음은 시험을 풀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화두가 잡혔을 때는 등ㆍ하교 길에 이마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길을 걷다 전봇대나 장애물에 부딪히곤 했기 때문이다.
1958년 8월 어느 날, 선정삼매 중에 홀연히 화두가 풀려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무엇이든 보고 들으면 곧 이해되었다. 삼라만상이 그와 부합한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제방의 선지식을 참방하기 시작했다. 전강, 구산, 고암, 혜안, 청담, 서옹, 성철, 월산, 송담, 청화, 묵담, 일타, 법전 스님 등 당대의 선사들을 뵙고 가르침을 받았다. 63년에는 순천불교선우회를, 이듬해는 남원불교선우회를 창립했으며, 67년에는 한국대학생불교단체 지도교수회를 창립ㆍ발기했다. 75년에는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를 시도하기도 했다.

월담 거사는 39세 때, 간경삼매 중에 다시 한 번 돈오체험을 하게 된다. 어떤 불자가 병원으로 <보조어록>을 가져 왔는데, 책을 읽던 중 ‘성재하처(性在何處)오? 성재작용(性在作用)이니라’ 하는 대목에서 눈이 번쩍 뛰었다. ‘성품은 어느 곳에 있는가? 그 작용에 있다’는 뜻의 이 문구를 읽는 순간 머릿속의 의심과 번뇌가 모두 사라져 버리는 체험을 하였다. 그동안 은연중에 본체가 현실 밖, 일상생활 밖의 다른 세계에 있다고 생각했던 착각을 송두리째 부숴버리는 문구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대목을 읽고 나서 모든 것을 놓을 수 있었다. 어떤 할 일이 생각나더라도 마음이 달려가지 않았다. 하는 것과 안하는 것에 걸림이 없어졌다.

그러나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했던가. 이 체험 후 하루 건너씩 곧 죽을 환자들이 병원에 들이닥치는 등 엄청난 마장이 들이닥쳤다. 경계가 크게 닥쳐오자 마음 한구석에서 미세한 감정의 흐름이 일었다. 그때서야 그는 보임(保任)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옛 선지식들이 돈오한 후 20∼30년 동안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보임했던 데는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58년에 화두가 타파되며 법안(法眼)이 열린 것이 이치에 걸림이 없는 ‘이무애(理無碍)’에 해당된다면, 78년의 개오(開悟)는 사무애(事無碍)에 해당된다는 게 월담 거사의 견해다. 즉 육조 스님이 깨달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의 도리에 계합되어, 일체의 사물에 걸림없이 자연스럽게 응하게 되는 경지이다. 보임을 통해 사무애를 닦아 대도사가 되는 과정에 숙명통을 비롯한 신통을 갖추게 되고 비로소 부처님과 같은 일체지(一切智)가 증득된다는 것이다.

월담 거사는 1990년대부터 워킹 메디테이션(Walking Meditation: 行禪)이라 불리는 태극권 보급에 나서, 생활체육계에서 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양가 태극권은 몸과 마음을 느긋하고 고요하게 하고 잡념이 사라지게 하며, 성품을 부드럽고 포용력 있게 하는 장점이 있어서 보급에 나선 것이다. 준비된 수행자와 지도자가 부재한 오늘날, 그는 불교 밖으로 ‘법의 그물(法網)’을 던지며 혼신을 다해 전법에 나서고 있다. (063)287-6932
김성우 객원기자 | buddhapia5@hanmail.net
2007-03-07 오후 1:35:00
 
한마디
호연지기 늘상~~존경을 드립니다^^
(2010-07-18 오후 6: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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