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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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이것만은]"문화포교 패러다임 견고히"
콘텐츠는 무한…작은 것부터 실용성있게 개발해야
김유신 축제기획 불무 대표
<법화경> ‘비유품’에 보면 장자와 세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노는데 정신이 팔려 불타고 있는 집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세 아들에게 장자는 이와 같이 소리쳤다고 한다.

‘너희가 좋아하고 가지고 싶어 하던 희유한 장난감이 여기 있는데, 너희가 지금 와서 가지지 아니하면 반드시 후회하리라. 저렇게 좋은 양이 끄는 수레(羊車), 사슴이 끄는 수레(鹿車), 소가 끄는 수레(牛車)가 지금 대문 밖에 있으니, 타고 놀기가 좋으니라. 너희는 이 불타는 집에서 빨리 나오너라. 달라는 대로 너희에게 주마.’

이 말을 들은 세 아들들은 아버지가 말하는 장난감이 마음에 들어, 매우 기뻐하면서 서로 밀치고 앞을 다투어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러자 장자는 여러 아들들이 무사히 나왔음에 기뻐하며 큰 수레를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불타는 집은 삼계화택(三界火宅)을, 세 가지 수레는 삼승(三乘)을 의미한다하여 불자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는 이 이야기를 다시 거론함은 오늘날 사회변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문화’를 불교계가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요즈음 불교계에는 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회흐름에 편승하여 ‘문화포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이는 양적으로 급속히 늘어난 산사음악회나 템플스테이, 사찰에서의 문화행사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문화’는 그 자체로 명제이자 패러다임이지 ‘수단 · 도구’의 개념은 아니라는 점이다.

법화경의 비유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장자는 아들들을 살리기 위하여 ‘수레’라는 것을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소위 근기에 맞는 방편의 활용이다. 여기서 우리는 수레를 곧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문화포교하면 의례 문화예술행사나 문화프로그램을 연상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인식이 아니다. 문화포교는 곧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불교에게 요구하고 있는 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인식의 전환, 즉 패러다임의 변화위에서만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자비로우면 저절로 지혜로워진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중생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것에 목말라 하는지를 헤아려 아는 것, 그것이 곧 문화포교의 시작이요, 문화를 바라보는 올바른 자세이다.

음악회도 좋고, 축제도 좋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를 바라보는 수많은 중생들을 아들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사찰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일일이 안내는 못할지언정 물은 이곳에서, 화장실은 저곳에서, 잠시 앉았다 가시는 곳은 여기라는 안내문을 사찰 구석구석에 붙여 놓는 마음이 곧 ‘문화포교’의 시작이다. 값 싼 차지만 공짜로 마실 수 있는 툇마루 한 자락이라도 선뜻 내놓는 자세가 문화적 영역에서 불교와 사회가 건강하게 만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불교가 지닌 문화 컨텐츠의 양은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많다. 소재가 없어 ‘문화포교’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소재에 천착하여 본질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전의 권위적 방식, 일방통행적 방식의 사찰운영이나 관리방식으로는 더 이상 이 사회를 설득시킬 수 없음을 인식하고 ‘불교’의 진정한 소비자, 향유자(享有者)인 신도와 일반 국민들에 대한 자비로운 마음, 지혜로운 배려가 ‘문화포교’의 시작이자 전부임을 명심하자.
김유신 | 축제기획 불무 대표
2007-01-24 오전 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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