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삶의 지표가 다르니 사는 방식이 다름은 당연하다. 그래도 모두에게 다르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다운 삶’이다. ‘어떻게 사느냐’를 ‘사람다운 삶’에 놓고 본다면 그리 간단치 않은 화두다.
“어서 오세요. 현대불교신문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렵고 힘드실 겁니다. 하지만 세상사는 이치가 다 그러니 상심하지 말고 힘을 내세요. 다행히 폐간하지 않고 신문을 계속 낸다니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해오셨잖습니까. 그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기자를 보자마자 악수를 청하시더니 내민 손을 꼭 잡은 채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러면서 “제가 한 말을 신문에 꼭 써 주세요”하시며 말을 이으셨다.
| ||||
“세상살이는 다 비슷비슷합니다. 평탄한 세상살이가 지속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에요. 궂은 날씨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듯이 우리 인생이나 인류 역사나 모든 게 다 굴곡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럴 때에고자하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헤쳐나가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를 원망하면 더 어려워져요. 마음을 잘 다스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다. 보이지도 않는 그것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한 순간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도무지 그 마음을 찾지 못한다. 못 찾는 것인지, 찾지 않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목렌즈로 빛을 모으면 불을 낼 수 있지요. 이처럼 마음이 모아지면 어떤 일이든지 성취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의 초점을 모아서 사람에게, 일에게 집중시켜 보세요. <화엄경>이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마음은 자기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지요. 일체가 다 마음이 짓는 것이에요. 마음은 우주보다 광활하고 신비롭습니다. 부처님 8만4천 법문이 다 마음을 두고 한 말씀인데, 정작 부처님께서는 45년 동안 자신은 아무 것도 말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음 하나 설명하는데 45년이나 걸렸는데, 정작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고 하신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뜻을 찾는 것이 바로 마음을 찾는 일입니다.”
혜정 스님이 머무는 보은 법주사 사리각 주변은 고요했다. 스님이 기거하시는 처소는 책들이 빼곡히 진열된 책장과 탁자 위에 놓인 시계 하나와 접시 위에 놓인 시들어가는 모과 3개가 전부일 정도로 단촐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1시간 반 정도의 예불과 정진으로 시작하고 저녁예불로 마치는 하루는 늘 여여하다.
“불교는 있는 것을 다 버리고 존재의 본질을 찾는 종교지요. 나는 게을러서 모아놓은 게 없어요. 모아놓은 게 없으니 버릴 게 없지요. 공(空)에 가까이 가는 것이 수행자의 도리인데, 무엇에 욕심을 내겠습니까. 우리 존재의 본질은 무(無)이고, 무의 본질은 공(空)입니다. 우리 육신도 공이고 마음도 공이지요.”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자들에게 수행은 늘 화두다. 특히 생활 속에서의 수행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수행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인생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얘깁니다. 파도치는 물 위에 비치는 달빛같이 마음이 흔들리면 판단이 흐려지고 실패를 가져옵니다. 수행의 근본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에요.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지요. 이것을 우리는 신심이라고 하는데, 신심이야말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밑거름입니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산다고 다 사는 것은 분명 아닐진데, 그렇다고 뾰족한 답도 없다. 2007년 새해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리석은 질문에 혜정 스님은 빙그레 웃으신다. 난데없이 모과를 집으시고는 “이놈은 참 못났는데 향기는 좋아요”하신다. 모과의 향기. 모과는 자신의 생김새를 알까? 자신이 내는 향기를 맡아보았을까?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지세요. 당당하고 신나게 그리고 멋있게 사세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까. 당당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신나고 젊게 살아야 합니다. 흐르는 물을 거스를 수는 없지요. 그것을 거스르려 하지 말고 그 속에 뛰어들어 즐겨보세요. 그 속에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들이 다 있습니다. 신나게 헤엄치면서 마음껏 멋도 내세요.”
원로스님에게서 멋을 내며 신나게 살라는 말을 듣기는 처음이다. 스님의 모습에는 여유가 있다. 얼굴에 머금은 미소는 맑고 투명했다. 75세라는 나이가 스님에게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님의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