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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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무상 아는 불자의 삶은 늘 활기찹니다
[빛고을불교아카데미]⑧원담 스님(서울 조계사 주지) '쌍림열반상'(11월29일)
광주불교사암연합회와 현대불교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2006 빛고을 불교아카데미’가 11월 29일 ‘쌍림열반상’을 끝으로 2개월에 걸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빛고을 불교아카데미는 1100명이 등록해 매주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빛고을 불교아카데미에는 광주지역 30여 신행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내년에도 새로운 주제와 강사진을 갖추고 진행된다. [편집자주]

오늘은 이번 빛고을 불교아카데미의 마지막 강좌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입니다.
현대들어 서양의 식자층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인류문명사의 흐름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아직 정확한 답은 정리되지 않았지만 모두가 동의하고 인정했던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명상이 바로 인류문명사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서구의 지식인과 지성인들이 동양, 인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인도를 찾아 스승을 정하고 명상, 요가를 배우고 돌아갑니다. 이런 인도에서 이천오백 년 전 부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계·정·혜 열심히 닦아라”
인류사에 영향을 끼친 많은 위대한 인물들 중에 부처님만큼 당신의 삶이 드러난 분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35세 때 깨달음을 이루신 이후 당신이 뱉으신 말 한마디까지도 전부다 기술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재세시 당신의 행동, 말씀 하나하나를 제자들이 보고들은 것을 장로들 앞에서 얘기하고 그것을 모아서 경전을 결집했기 때문입니다.
<유행경>을 보면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일 년 전부터 사바세계와 인연이 다 되었음을 예측 하시고 인연들을 정리하시려고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왕사성에서 쌍림열반을 하신 쿠시나가라까지 일 년 동안 쭉 걸어가시면서 인간 붓다의 모습과 법의 붓다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부처님이 길을 가다가 하루는 쉬어가자며 자리를 깔아 달라고 하십니다. 요즘과 달리 그때 80세는 굉장히 연로한 연세입니다. 부처님 재세시 인도사람 평균수명이 20세 안팎이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누워계시니 아난이 보기에 얼마 안타깝겠어요. 부처님이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고민을 하다가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계와 정과 혜를 열심히 닦아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불자 중에 계정혜(戒定慧) 삼학 열심히 닦으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당부한 첫번째 말씀이 계정혜 삼학을 닦으라는 말씀이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스님들과 불자들이 계에 대해서 소홀히 하는 부분이 있는데 불교가 융성하는 시기를 보면 그 나라의 스님과 불자들이 계율을 잘 지킬 때입니다. 계율을 모두 지키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지키려고 하는 몇 가지 계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계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살아가는 모습이 반듯합니다. 자기 계율이 없는 사람은 살아가는 모습이 반듯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뒤집혀져 있습니다.
다음에 정(定)을 닦으라고 합니다. 계정혜 중에 계율을 잘 지키면 우리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배어나옵니다. 반듯한 사람들은 자체 에너지가 많은 사람입니다.
인류문명사적으로 명상문화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불자에게 삼매는 불교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 스스로의 삼매를 가지도록 늘상 애를 써야 됩니다. 내 스스로의 삼매를 가지지 않는 사람은 축원문에만 올라있는 불자이지 부처님이 말한 법의 모양으로 살고 있지 않는 겁니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을 향해 가는데 반드시 동반이 되어야 할 것이 정의 세계, 삼매의 세계입니다. 절을 하든, 경전을 독송하든 주력을 하든 참선을 하든 봉사를 하든 무엇을 하든지 여러분의 마음이 삼매로 가는 과정이라면 그 분은 제대로 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겠고, 삼매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고 한다면 자기 수행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부처님이 무수한 경전에서 자기 마음의 헐떡거림을 멈추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내 마음이 헐떡거려서 생기는 문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내 마음이 헐떡거리고 있으면 내 삶이 중생의 삶을, 흔히 말하는 업을 짓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이 고요하게 있으면 두 번 시기 질투 할 것 한 번 줄어들고, 다섯 개 가지려고 하는 것 한 개로 만족할 수 있고, 나중에는 백 번 저지르려는 나쁜 짓을 한 번도 안할 수 있게 됩니다.
부처님은 업을 짓지 않는 이라고 합니다. 부처님도 우리와 똑같이 삶을 살았는데 업을 짓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늘상 삼매의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나의 수행이, 나의 신앙생활이 잘 되고 있는가 아닌가는 나의 마음이 삼매로 잘 가고 있는가 아닌가를 볼 수 있으면 틀림없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혜(慧)인데, 수행적 의미의 혜는 조금 다르게 해석합니다. 우리가 종교에 기독교, 가톨릭교, 힌두교 이렇게 교(敎)를 붙이는데 불교는 꼭 불교라고 하지 않고 불법이라고도 합니다. 불교는 어떤 절대적인 것을 따르는 종교가 아니고 법의 길을 좇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어떤 종교보다도 지혜를 중시합니다.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중생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절대로 욕심이 많은 자리, 시기와 질투가 많은 자리 즉 헐떡거림이 많은 자리에서는 좋은 지혜, 아름다운 지혜, 따뜻한 지혜가 나오지 않는다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정을 잘 닦고 있으면 혜가 따라서 드러난다고 하신 겁니다. 지혜를 증득하기 위해서 따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삼매를 잘 닦고 있으면 생겨나는 겁니다.

▷마음 헐떡거림 멈춘 자리에 지혜 드러나
반듯하게 자기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계를 가지고, 그 다음에 고요함을 익힙니다. 그러면 따로 닦으려고 하지 않아도 혜는 스스로 와서 법의 세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지혜의 힘이 생길 것입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안거 때 아난존자가 묻습니다. “부처님 이제 가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때 부처님은 두 번째 가르침을 주십시다. “제행이 무상하니 방일하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라.”
부처님 말씀에는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어요. 어렵게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이 어려워지고 있는 겁니다. 불교가 어렵다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어렵게 가르치거나 어렵게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해 간다는 겁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해가게 되어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해가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가지 말라고 부처님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러면 무엇이 불자의 삶이겠습니까. 부처님은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불자의 삶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삶에 집착하며 제행이 무상한 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비불자의 모습이고, 제행무상을 알고 서 있는 지점에서 열심히 정진하고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 불자의 삶입니다. 불자일수록 삶이 활기찹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변하면서 흘러가니 그런 것들에 얽매이지 말고 본인 스스로 그 자리에서 공부하고 수행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두 번째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귀의 법귀의 하라”는 마지막 유훈입니다.
자기에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라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부처와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가신 겁니다. 그런데 그 법을 듣는 우리는, 나는 중생이라고 생각하며 늘상 부처님에게 치대는 신행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경전을 통해서 내가 여래가 되고 내가 여래인 것처럼 너도 여래가 되고 너도 여래라고 무수히 말씀하시는데, 그것을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기 마음 안에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내 스스로가 부처가 될 수 있고 내 스스로 부처본성을 가지고 있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꼭 생각해야 합니다. 내 스스로가 존귀하지 않은데 어떻게 옆의 사람을 존귀하게 생각하거나 존경하겠습니까. 내 스스로가 존귀할 때 다른 것들도 다 존귀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한꺼풀만 벗기면 모두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의 길을 잘 좇아 가면 가장 귀한 세계가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꼭 자귀의 법귀의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 1년을 보면 잔잔한 소설 같습니다. 부처님은 참으로 인연을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열반에 들기 전날 밤까지 계를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가족·친구·이웃 등은 엄청난 인연
불법 만나기가 힘들다는 말을 절에 와서 많이 들었습니다. 지구는 태양계에 있고 태양계는 은하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 끝을 빛의 속도로 가면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천억 광년을 가야한다고 합니다. 눈 깜짝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가는 빛의 속도로도 엄청난 세월을 가야 은하계 끝을 갑니다. 그러니 우주세계에서 보면 지구는 먼지 티끌만한 작은 것입니다. 시간적으로도 지구는 45억년쯤 되었다고 하는데, 우주의 시간은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무량수입니다.
무시무종이라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에서 살고 있습니다. 태평양에서 바늘침하나 딱 떨어지는 지점보다도 작은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이 넓은 우주 속에 긴 시간 속에 우리가 만난 것입니다. 가족 친구 이웃의 얼굴을 보세요. 엄청나게 힘든 인연으로 만난 인연인데 우리는 그 인연을 과소평가하고 홀대하고 무시하곤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남아있는 이 생을 귀하고 아름답게 생각하시면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답게 쓸 것입니다. 이 인연을, 이 삶을 가볍게 생각하면 여러분이 남아있는 삶도 가볍고 무시된 삶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시고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셨던 가르침을 틈틈이 챙기면 남아있는 생, 지금 살아가는 오늘의 일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 인연으로 다같이 보살과 아라한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광주/정리·사진=이준엽 기자 |
2006-12-04 오전 10:04:00
 
한마디
합법적인 편취인생 본인들을 먼저 되돌아 보십시요
(2009-12-04 오후 6: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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