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법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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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방(龐)거사와 함께 과거시험을 보려고 낙양(洛陽)으로 가는 도중 행각(行脚)하는 스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차(茶)한잔을 나누던 중 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로 가시오?”
“과거를 보러갑니다.”
“공부가 아깝습니다. 어찌 부처를 뽑는 곳으로 가지 않고 벼슬아치를 뽑는 곳으로 갑니까?”
“부처를 어디서 뽑나요?”
“강서(江西)에 계시는 마조(馬祖)선사께 법을 듣고 도(道)를 깨친 이가 아주 헤아릴 수 없이 많소, 그곳이 바로 부처를 고르는 곳이요.”
즉시 길을 떠나 마조선사를 찾아가 절하고 찾아온 연유(緣由)를 말씀드리니 마조선사가 말씀하시기를 “ 남악(南嶽)으로 가면 석두(石頭) 장로(長老)가 계시는 총림(叢林)이 있으니 거기 가서 출가하시오.”
선비는 곧바로 석두스님을 찾아가 출가하여 후일 문수(文殊)의 화신(化身)이라고 할 만큼 유명한 당대의 대선지식(大善知識)이 되었습니다.
총림은 할 일없는 사람들이 모여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장소가 아니라 수행자들이 취두정진(聚頭精進)하며 부처를 뽑는 선불장(選佛場)입니다.
지난 해제(解制) 기간동안 일어난 불미한 일들은 부처를 뽑는 선불장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부끄러운 것입니다.
사판(事判)의 일로 대중간에 불화하고 종단과 대립하는 등 불조(佛祖)의 교지(敎旨)와 승분(僧分)의 대의(大義)에 어긋나는 일들이 수개월동안이나 지속되고 있음은 매우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사친출가(捨親出家)하여 방포원정(方袍圓頂)하고 있는 까닭은 맹목(盲目)을 탈각(脫殼)하고 혜안(慧眼)을 얻어 바른 지견(知見)을 행하고자 합니다.
대주(大珠)선사는 대운사(大雲寺) 도지(道智)화상에게 출가하였으나 후에 마조(馬祖)선사의 법제자가 된 분입니다.
하루는 어떤 행자가 대주선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한 생각을 통달하면 세계가 모두 부처요, 한 생각이 미혹하면 작은 티끌하나도 중생이니라.”
“어떤 것이 삿된 것(邪)이고, 어떤 것이 바른 것(正)입니까?”
“마음이 물건을 쫓으면 삿된 것이고, 물건이 마음을 쫓으면 바른 것이다.”
“어떤 것이 훌륭한 법(法)입니까?”
“자연(自然)을 알고 그 순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참된 법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실상(實相)을 깨달아 사지(四智)가 원명(圓明)하신 분입니다.
중생의 깨달음이란 이미 부처님께서 깨달아 전하신 법을 자신의 심식(心識)속에 체현(體現)시키는 일입니다.
부처님 눈으로 보면 세상 사람들이 귀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실체가 없는 허상(虛像)입니다.
부처님을 닮으려고 출가한 사람들의 마음이 물건을 쫓는 삿된 생각을 가져서야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입멸(入滅)하신 후 제자들간의 수많은 사상논쟁(思想論爭)이 있어 왔습니다.
수행자의 원통(圓通)과 홍지(弘智)를 위한 산문(山門)의 사상논쟁은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윤(利潤)과 자리(席)를 위한 다툼은 없어야 합니다.
금년 동안거에는 대중이 심기일전(心機一轉), 분심(忿心)을 내어 가일층(加一層) 정진하여 각자의 본분사(本分事)를 반드시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自從靈鷲分燈後 (자종영취분등후)
直傳海東輝古今 (직전해동휘고금)
六祖禪風嫡嗣家 (육조선풍적사가)
勤學精進一不退 (근학정진일불퇴)
曠劫無明當下滅 (광겁무명당하멸)
脫下舊鞋着新靴 (탈하구혜착신화)
一曲彈琴奏月明 (일곡탄금주월명)
四海香風從此起 (사해향풍종차기)
영취산에서 갈라진 부처님의 법등이
해동으로 전해져 고금을 비추네
육조의 선풍이 흐르는 적손의 집안에서
부지런히 정진하되 한걸음도 물러서지 말라
광겁의 무명을 당장에 떨쳐내어
(중생의) 헌 신발을 (여래의) 새 신발로 갈아 신고
한 곡조 거문고 소리로 밝은 달을 노래하니
사해의 향기로운 바람이 여기에서 일어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