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 스님은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은 벼랑도 없고 또 문도 없다”며 “만약 몸과 목숨이 둘이라면 영원히 근심이 없어지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추위와 더위가 있어 그대들의 목숨을 재촉할 것”이라 중생의 안목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수행정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스님은 또 “만약 누군가가 이 산승에게 ‘더위는 그만두고 추위가 닥쳐온다면 어떻게 피하리오?’라고 묻는다면 그 자리에서 ‘피해서 무엇하리오’라고 매정하게 대답할 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병술년 동안거 결제 법어 전문.
“추위와 더위가 닥쳐오니 어떻게 피하리까?”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왜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는가?” 그러자 그 남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디가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습니다. “추우면 추운대로 네 놈을 얼려 죽일 것이고, 더우면 더운 대로 네 놈을 쪄서 죽일 것이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여름의 더위는 간 곳이 없고 이제 반대로 추위를 걱정해야 하는 삼동결제가 되었습니다. 중생의 분상에서 더위나 추위나 그 근심은 이래저래 끝이 없습니다. 사실 추운 것이나 더운 것이나 알고 보면 그 도리가 그 도리입니다. 추위와 더위가 닥쳐온다는 것은 생사(生死)가 오고간다는 말입니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은 생사가 이르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하니 그 생사의 도리를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겠냐고 하는 말입니다. 동산 선사는 “왜 추위나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그 납자는 마치 사냥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는 것처럼 연거푸 섬돌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달그림자를 잡으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안목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소견 없는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놈은 얼어 죽거나 쪄죽더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입이 한개가 아니라 백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제대중들이여! 추위도 더위도 없는 좋은 곳은 벼랑도 없고 또 문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여기에 몸과 목숨을 둘 수만 있다면 영원히 근심이 없어지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추위와 더위가 있어 그대들의 목숨을 재촉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중생안목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동안거 결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누군가가 이 산승에게 “더위는 그만두고 추위가 닥쳐온다면 어떻게 피하리오?”라고 묻는다면 그 자리에서 “피해서 무엇하리오”라고 매정하게 대답할 줄 것입니다. 한시한살요지귀(寒時寒殺要知歸)하니 영야설포명월리(永夜雪鋪明月裏)로다. 추울 때 몹시 춥게 한다는 말 그 참뜻을 알아야 하니 긴 밤에 눈 쌓이고 달은 밝도다. 불기 2550(2006) 동안거 결제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