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한 사찰의 거사림회 나이로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예산 향천사 거사림회. 이들이 스무 살을 자축하는 축제를 연다. 11월 11일 향천사 단풍나무 숲에서 열리는 제1회 ‘향천사 단풍제’. 절 입구부터 대웅전까지 1.5Km 가량의 향천사 단풍나무 길은 향천사 거사들의 20년 불심이 깃든 곳이다. 그 단풍나무 길에 거사림회가 20살을 맞아 뜻깊은 이정표를 세우자고 나선 것이다.
향천사 거사림회가 빛나는 이유는 20년 세월 때문이 아니다. 한결같은 신행으로 불심을 다지면서 향천사를 외호하고 지역불교 발전을 꾀하는 초석으로서의 몫을 다했기 때문이다. 불교세가 약한 충청도에서, 그것도 예산 지역만이 아닌 천안, 공주 등지에서 오는 불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86년 11명의 거사들이 모여 시작된 향천사 거사림회는 현재 128명의 많은 회원을 두고 있다. 향천사 유치원 건립과 일주문 및 금오교 건립 불사 등 오늘의 향천사를 있게 한 주역이 바로 거사림회다.
특이한 것은 거사림회가 연령에 따라 두 개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30대부터 50대까지 젊은 거사들의 모임인 ‘거사림회’는 사찰 행사와 지역불교 행사를 전담하는 향천사의 동력 역할을 하고 있고, 60대 이상 모임인 ‘유마거사림회’는 거사림회를 도우며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거사림회’ 활동을 하다 60이 넘으면 ‘유마거사림회’로 편입되는 체계라서 선ㆍ후배 간의 우애가 돈독하다.
물론 두 거사림회 모두 수행과 신행은 기본이다. 두 거사림회는 매월 11일 오전과 오후로 나눠 정기법회를 갖고 있고, 젊은 ‘거사림회’는 가을에 한 차례 직지사 법주사 등을 순례하며 1박2일 철야정진을 하고, 외부인사 초청법회, 교리강좌, 참선실수 등을 한다. ‘유마거사림회’ 역시 봄ㆍ가을로 성지순례법회를 갖고, 참선정진과 교리강좌법회를 연다. 또 한 달에 한 번은 ‘사시불공의식법회’를 열어 신심을 다진다.
특히 젊은 ‘거사림회’는 정기법회 때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참석해 법문을 듣고 서로간의 정을 나눈다. 향천사 거사림회 회원들은 이 ‘부부법회’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젊은 ‘거사림회’ 우제풍(55) 부회장은 “젊게 활동하고 싶어하는 회원들이 많아서 60이 넘었는데도 아직 유마거사림회로 가지 않은 회원들이 있다”고 귀띔한다.
향천사 거사림회의 또 다른 특징은 생업과 거사림회 활동을 연계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회원들이 한 지역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도움을 줄만도 한데, 향천사 거사림회는 이런 경우가 별로 없다. 생업과 신행이 연계되면 자칫 관계가 불편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사림회에 가입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거사림회에 가입의사를 밝힌 사람은 삼보전과 대중 앞에서 “신행을 열심히 하고 거사림회 규칙을 잘 지키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3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수습 회원’은 이 기간 동안 정기법회 등 각종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또 공부에 대한 열의도 보여주어야 한다.
어느 신행단체든 활동재원마련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향천사 거사림회는 그렇지 않다. 모든 회원이 매달 1만5000원씩을 보시하고, 이 보시금은 정기적금으로 예치된다. 성지순례나 초청법회 등 각종 비용은 이렇게 마련된다.
향천사 거사림회는 11일 단풍제를 앞두고 유니폼을 맞췄다. 일체감을 느끼겠다는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목적이 있다. 북핵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핵반대와 환경ㆍ생명ㆍ인류평화 파괴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 위해서다. 단풍제에 앞서 거사림회원들은 일제히 유니폼을 입고 우산을 펼쳐들면서 이 같은 메시지를 행사 참가자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수행과 신행이라는 본래 활동 외에 현실참여를 통해 시대적 고민도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향천사 주지 옹산 스님은 “거사불교는 치마불교를 벗어나 대중불교로 가는 절대적인 힘이며, 대중불교가 돼야만 생명력있는 불교가 될 수 있다”며 “대중불교의 주체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거사림회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향천사 제1회 단풍제 및 거사림회 창립 20주년 기념법회는 11일 오전 11시 창립기념행사로 시작돼 오후 1시부터는 풍물공연, 어린이합창, 시낭송, 피리연주, 살풀이춤, 가야금 산조, 회심곡 및 민요 등이 어우러지는 음악회로 단풍제를 수놓는다. (041)335-3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