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개월 간, 아이들은 맞벌이 등으로 바빠 돌봐줄 사람이 없는 낮시간 동안 ‘보리 방과후교실’을 찾아와 영어공부도 하고 숙제지도도 받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영어도 배우고 미술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미술 선생님이 얼마나 잘 가르쳐주는데요~!”라고 자랑한다. “공부방 부엌에서 간식 만들어서 먹은 적도 있니?”라고 묻자 민주(10ㆍ홍연초3)는 “그럼요! 선생님들이랑 같이 만들어 먹었어요. 떡볶이, 팥빙수, 까나페…”라고 손을 꼽는다. 옆에서 예슬이(8ㆍ홍연초1)가 “우와, 언니는 공부방을 오래 다녀서 그동안 많이 만들어 먹었구나”라며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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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동 주민 대부분은 생계형 맞벌이를 하고 있어, 금장사 공부방은 ''단비'' 같은 존재다. ‘보리방과후교실’은 현재 월, 수요일에는 원어민 강사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화요일에는 논술교실, 목요일에는 풍물, 다도, 요가교실, 금요일에는 미술교실을 운영한다. 그 외에도 매일 숙제를 지도하고 선행학습과 독서지도도 한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개별 학습을 실시하고 한자지도와 특기적성 교실도 운영할 예정이다.
그간 불교계 내부에서도 ‘사찰 방과후공부방 운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논의가 돼 왔으나 정작 사찰에서 공부방을 운영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이번 금장사 보리방과후교실 개원식이 이목을 모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장 본각 스님(서울 금장사 주지)은 어째서 공부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1999년 서대문구 홍은동에 금장사가 자리 잡으면서, 스님은 동네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천자문교실’을 열었다. ‘사찰에서 스님이 한자를 가르친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2년동안 80여명의 아이들이 금장사를 거쳐갔다. 본각 스님은 어린이포교까지 이어질 수 있는 보다 체계적인 방안을 고심하다 구청에 문의한 결과, ‘방과후 공부방’에 대해 알게 됐다.
‘방과후 공부방’이란 부모가 맞벌이를 하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사교육을 못 받는 아동을 낮 동안 위탁하고 교육시키는 곳을 말한다. 그간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사교육비 지출을 감소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방과후 공부방의 보육ㆍ교육시설 지원을 강화해왔다. 따라서 사찰도 자격만 갖추면 공부방을 쉽게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 스님의 주장이다. 현재 정부가 방과후 공부방을 운영하는 시설에 지원하는 월 평균 운영비는 1백 15만원, 보조교사비는 30~1백5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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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종사자와 시설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아이들이 30명 미만인 시설에는 시설장 1명 아래 교사2명이 있어야 하며, 시설장은 3급 이상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관련시설 근무경력이 3년 이상이어야 한다. 근무경력이 없어도 교원자격증이나 보육교사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면제된다.
공부방을 준비하던 스님은 뜻밖에도 “다른 어린이관련시설 시설장은 보육교사 1급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종교시설의 경우 대표자가 시설장이 될 수 있도록 관련법이 개정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스님은 그 때부터 금장사 바로 앞에 위치한 건물을 매입해 2월 28일부터 서대문구청의 허가를 얻어 내부설계를 하고 시공에 들어갔다. 완공이 끝난 것은 7월 10일.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의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나 국가의 지원을 받아 사찰 방과후 공부방을 개원하기까지는 몇 차례의 시행착오도 겪었다. 구청이 원하는 규격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건물 내부를 꾸몄다가 다시 뜯어내고, 인가를 얻는 과정에서 특수보육시설로 분류돼,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기도 했다. 스님은 이후에야 사찰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은 ‘수익사업을 하지 않는’ 비영리법인 사업자등록증을 교부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참고할만한 타사찰 운영사례가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이후 개원식 두 달 전부터 문을 열고 아이들을 모집하기 시작해 8월에는 3천만원의 시설보조비도 받고, 청호나이스로부터 협찬 받아 산동네 곳곳을 누비며 아이들을 태울 버스도 마련했다. 현재 공부방은 27명의 아이들을 추가로 모집할 계획에 있다.
본각 스님은 “타종교계는 종교시설장이 방과후 공부방을 쉽게 운영할 수 있도록 관련법령이 개정됐다는 정보를 듣고 7월초에 이미 800여개의 방과후 공부방을 개설, 1주일에 한번씩 성경공부를 실시하고 있다”며 “각 사찰마다 작은 공간만이라도 개방해 방과후 공부방을 만든다면 불자가정 어린이 뿐 아니라 무종교, 타종교에까지 자연스럽게 포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본각 스님이 말하는 ‘방과후공부방’ 개설 노하우
① 무턱대고 신청하기에 앞서 지역 내에 다른 ‘방과후 공부방’이 있는지 알아보라. 타종교시설이 이미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을 경우, 구청에서 허가를 내주려 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② 운영 프로그램의 질을 높여라. ‘아이들이 학교 마친 후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시간만 채워주면 된다’는 식으로 방과후 공부방 운영을 막연히 생각한다면 금물이다. 학부모가 믿고 맡길 수 있는 튼튼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실력 있는 교사가 선발돼야 한다. 금장사의 경우 ‘미술교육이 알차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아이들이 늘어났다.
③ 사찰문화 프로그램으로 특성화하라. 한문서당이나 다도교실 등 스님이 직접 가르치면서 인성교육을 이끌 수 있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④ 지역 구청 공무원 등 관련 인물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라. 관계자들과 충분히 알아야 지역소식도 자주 접할 수 있고 방과후 공부방을 개설하기도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