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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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생문제 해결해 줄 이는 오직 자신뿐
[빛고을불교아카데미]②월운 스님 '비람강생상'(10월18일)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 두번째 그림으로 마야부인이 룸비니 동산 무우수 아래에서 싯다르타 태자(부처님)를 출산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아기 부처님이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걷고 오른쪽 손가락으로 하늘을, 왼쪽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또한 하늘에서 제석천왕이 내려와 비단옷으로 부처님을 받들고, 여러 천왕이 기뻐하면서 보물을 공양하는 장면, 아홉마리 용이 신성한 물로 부처님을 씻기는 장면, 부처님을 가마에 태워 왕궁으로 돌아가는 장면, 아지타 선인이 부처님을 친견하고 예언하는 장면 등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 우리 인생사는 ‘업계고신’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게 될 주제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입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이 태어나신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은 굽이굽이 우리 범부들이 생각할 수 없이 훌륭하게 사셨습니다. 부처님은 우리 중생들이 당신과 거리감 없이 당신 말을 듣고 생각하고 행동해주길 바라시며 우리 곁에 모습을 나투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개념으로 태어났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비람강생’ 이라고 합니다. 태어나기는 태어났지만, 우리가 어머니 배에서 태어난 것과는 달라서 ‘강생’했다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업계고(業係苦)’라고 합니다. 업에 끄달려서 끌려왔다가 끌려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사는 어디서 무엇하러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그저 끌려 왔다가 끌려간다고 하여 업계고신이라고 합니다. 업에 얽매여서 태어나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불보살이 태어나는 것은 의생신(意生身)이라고 합니다. 뜻하는 대로, 내 마음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불교의 특색이 뭡니까? 자기 문제를 남이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6년간 혼자 공부하신후 깨달은 것이 바로 내 마음의 조화입니다. 즉 내 마음을 잘 길들여야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스스로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가고 싶은데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 형무소에 있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본래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 분위기 때문에 그랬다거나, 친구 때문에 그랬다던가, 무엇에 홀려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내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을 업계신, 내 마음대로 하는 사람을 의생신이라고 합니다. 주관이 생기고 주관대로 살아갈 수 있으면 의생이라고 합니다. 뜻대로 사니까요. 뜻대로 사는 방향을 바로 선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르게 선택하는 길이 지혜입니다. 그 지혜를 불법 속에서 배우라는 이야기입니다.

▷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다
부처님 태어나실 때 엄청난 일이 벌어집니다. 한 손으로 하늘,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걸음을 걸으신 일입니다. 물론 문제가 있죠. 갓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벌떡 일어나겠습니까. 또 부처님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하더라도 왜 하필 일곱 발자국인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며 한 손을 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여기서 일곱 걸음을 걸으셨다는 것은 동서남북을 끝까지 갔다 왔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외친 한마디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우주만물 중에 내가 가장 존엄하다. 이처럼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한 말씀 하셨다고 해서 제일 사자후, 맨 처음에 하신 부처님 말씀이라고 합니다. 말이 그렇지 사실 갓난아이가 말을 했다고 하면 누가 믿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겠죠. 그러면 어떻게 믿느냐.

죄송하지만 지금도 부처님이 하신 그 소리가 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귀에는 안 들리니까 문제인 겁니다. 다른 소리는 들리는데 이 소리는 안들려요. 안 들린다고 해서 소리가 안 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고, 여름이 가면서 눈물 흘리는 소리도 있는데 안 들립니다.
그 당시 하늘 위, 땅에서 높은 분이 있다면 천지만물을 창조한 창조주가 제일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창조주를 기독교가 이야기 하지만 바라문 교, 마호메트 교 등 유신론에서 모두들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절대적인 신이 우리를 지배하고 천지만물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용서해주시고, 애들 쑥쑥 크게 해달라고 비는데, 애들 크는 것이 빌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오줌 똥 잘 싸야 쑥쑥 크는 것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것이 확실한 진리이고 으뜸가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으뜸가는 말씀이냐 하면, 불교가 그것 빼고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혼자서 존재하는 거죠. 우리가 신에 매달려 산다든가, 운명에 매달려 산다든가 그러지 말고 스스로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내 삶을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불교입니다. 첫째도 내 책임, 둘째도 내 책임, 그래서 이 말을 하려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정신만 차리면 행복이 굴러 들어오고, 정신만 차리면 불행을 웃으면서 받아넘길 수 있고, 정신만 차리면 힘이 들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불교입니다. 부처님의 첫번째 사자후, 이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가 없던 것이었는데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나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제일 사자후를 외치시고, 그걸 시현하기 위해 출가수행 하셔서 도를 닦으신 것입니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처음으로 설한 것이 <화엄경>입니다.

▷ ‘오늘의 나’ 똑바로 서기 위해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부처님의 첫 사자후인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풀이해놓았는데, 1 중생은 모두가 부처다. 2. 그런데 스스로의 제 욕심 때문에 제가 속아서 중생이 되었다. 3. 내가 그들에게 방편으로 참과 거짓을 가르쳐 주어, 4. 스스로가 부처임을 알게 하리라. 이것이 여래출현품에서 제일 사자후를 다시 풀이해 놓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불교의 전체입니다.
나 자신이 정신을 차리면 부처가 그냥 유지되는데 부처가 아닌 까닭은, 무슨 사탄이나 조상 탓이 아니라 나 자신이 부처를 찾지 않고 우선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즐기고 보자는 것 때문입니다. 뻔히 알면서도 자기 자신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종교입니다.
자기 자신을 지켜 자신의 힘으로 행복을 만들어 누리고, 행복을 누리는 과정에서 당연히 지불해야 할 고통이면 지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생활은 과거 현재 미래, 시방삼세를 살펴서 나의 정신이 삼세를 꽉 훑어보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이 발걸음이 지금 현재 내 발걸음이면 뒷발걸음이 과거이고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미래입니다. 그런데 앞은 볼 것 없이 막 내밀면 된다고 하는 이도 있고, 과거를 생각할 것이 없이 열심히만 살면 된다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안됩니다.
어제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 없는 미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수행은 오늘의 나를 똑바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어제의 잘못된 것을 철저히 나 스스로 정리하고 미래의 방향을 항상 챙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법문을 듣는데 법문만 듣고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나는 항상 부처님같이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불제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불제자인지 알고 있는가.
이 세 가지 물음을 항상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우선 내가 왜 불교를 믿는가를 모르면 그냥 내 몸에 진이 배길 정도로 마음속에 부처님을 새기면 됩니다. 아주 쉬운 방법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아침에 눈 뜨자 말자 앉아서 이를 딱딱딱 세 번 치고, 손바닥을 세 번 문지르고, 눈을 세 번 부비고 ‘관세음보살’ 아니면 ‘석가모니불’을 일곱 번 부르든지 시간이 없으면 다섯 번, 세 번, 아니면 한번이라도 불러보세요. 선도에서 손 비비는 것은 세수를 하고 얼굴 닦고, 양치하는 것입니다. 이를 딱딱거리면 늙어서 이가 놀지 않고, 눈을 비비면 눈이 나빠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침마다 하는데, 콩을 백 개 가져다가 하루했으면 콩을 종지에 한개 놓고, 빠졌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백일간만 하면 분명 달라집니다.
저녁에 잘 때 하면 더 좋습니다. “오늘 하루도 부처님 곁을 떠나지 않는 제자가 되겠습니다. 오늘 부처님을 많이 놓쳤지만 내일은 부처님과 더 가까이 부처님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반복하고 반복하다보면 내 속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힘이 생깁니다. 부처님을 믿는 힘. 이 힘은 믿음과 끊임없는 노력, 잊지 않는 기억과 흔들리지 않는 선정, 슬기로운 판단이 됩니다.
그렇지만 나쁜 마음을 생각하면 나쁜 힘이 생깁니다. 그런 것이 나를 끌고 가게 됩니다. 집안을 깨끗이 치워놓아 보세요. 파리가 오겠는가. 재앙이 괜히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쁜 향기를 피우니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불할 때도 ‘계향’ 하는데, 계를 잘 지키면 내 몸에서 향이 납니다.

▷ 부처님같이 살고 있나 늘 돌아보자
가족들에게 내가 불제자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왜 절에 가는지 일러줘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가족이,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가야 합니다. 정신 차리는데 불교가 무슨 필요 있는가 하지만 논리없이 정신차린다는 것은 바다의 등대가 꺼지지 않고 깜박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미래를 내다보려면 지혜로운 판단이 있어야 해요. 그 판단을 제공해 주는 것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그 판단만 제공하지 다른 아무 일도 해주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대신 너희를 극락을 보내준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족이 다같이 불제자 생활을 하고 절에 가서 이웃을 향한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자타일시 성불도’입니다.
비람강생상, 부처님께서 룸비니동산에 하강하시는 그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바로 알아 받들어서 우리 자신이 부처님을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광주/정리·사진=이준엽 기자 |
2006-10-24 오후 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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