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원문이 한문으로 돼 있는데다, 충분한 설명이 없다면 재가자들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를 감안해 서울 상도동 보문사는 前 직지사 강주 대진 스님을 초청해 9월 19일부터 <서장> 강의를 열기 시작했다. 강의는 10월 19일까지 매주 화ㆍ수ㆍ목 오후 2시부터 2시간씩 한 달간 진행된다. (02)823-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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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열린 <서장> 강의와 대진 스님 인터뷰를 종합해 <서장>의 핵심은 무엇이고, <서장>이 왜 재가자들에게 필요한 선 지침서인지 등을 정리한다.
▷ 재가자들이 <서장>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불자라면 마땅히 경전을 읽어야 한다. <서장>도 그런 차원에서 공부해야 할 책이다. 특히 재가자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재가자들은 세속의 삶을 살고 있는데, 그 속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서장>에 나와 있다. 다시 말해 실생활에서의 선 공부, 즉 생활선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서장>이다.
▷ <서장>의 핵심
소를 먹이러 가서 한 사람은 책을 읽고 한 사람은 잠을 잤는데, 둘 다 소를 잃어버렸다. 책 읽다가 소를 잃어버린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잃은 것은 똑같다. 도를 닦으면서 본래마음이 도를 향해 헐떡거리는 것이나 재물을 향해 헐떡거리는 것이나 헐떡거리는 것은 똑같다.
<서장>의 핵심 가르침은 정견을 확고히 세우고 화두를 참구하라는 것이다. 화두를 들든 위빠사나를 하든 정견이 바탕이 돼야만 무엇이든 제대로 할 수 있다.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이 하신 말씀도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서 빗나가면 외도다.
<서장>을 간화선 지침서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것은 <서장>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서장>에서 화두 얘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어떤 선을 공부하든 <서장>을 보면 선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 선수행 시 경계해야 할 것
<서장>에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앞선다면 그것은 어려움을 자초한 것이다…(중략)…만약 마음으로 깨달음을 기다리거나, 마음으로 휴식을 기다리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참선해서 미륵이 하생함에 이르러도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며, 또한 휴식도 얻지 못하고, 도리어 미혹한 고민만 더해갈 뿐이다”는 내용이 있다.
공부를 하면서 의식을 경직시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부처ㆍ도ㆍ깨달음ㆍ삼매ㆍ열반ㆍ무심ㆍ 무념ㆍ일심 이런 것들을 ‘특정 세계’로 설정을 해놓고 자신을 거기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이념가가 되고, 그 공부는 결국 이념과 사상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념이니 사상이니 이런 게 마음에 들어오면 끝없이 무엇을 주장하고 자꾸 외침이 일어나서 마음이 휴식을 못하게 된다.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 도라는 ‘특정 개념’을 설정해놓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이 특정 대상을 향해 달려가면 이미 그 자체가 탐욕이다. 도라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탐하는 것이나 세속사람이 재물을 탐하는 것이나 탐하는 것은 같다. <서장>에서는 이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도를 닦되 도를 갈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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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선의 요건은?
선을 논리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체험 없이 머리로만 이해하는 선은 선이 아니다. 실제 생활에서 실행이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대혜 스님이 강조한 것도 이 부분이다.
선을 공부한다는 것은 마음의 휴식과 평화를 찾는 일이다. 휴식과 평화가 찾아오면 그 자리가 도의 경계고 진리의 경계다. 이것을 조사들은 ‘당처성불(當處成佛)’ 이라 했다. 그렇게 하는데 구태여 앉아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탐하는 그 마음을 버리는 것은 생활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마음을 바로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자신의 본래본성을 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본래마음을 잃게 된다. 대혜 스님은 생활을 통해 선을 구현하려 했다. 화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 <서장> 공부하면서 유념할 부분은?
<서장>이 어렵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는가. <서장>의 내용은 사실상 대혜 스님이 재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우선은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충분히 공부한 뒤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장’ 은
중국 남송 시대의 대혜 스님(1089~1163)이 주로 사대부들에게 ‘선공부에 관한 여러 요지’를 대답해 준 편지글.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수준에 맞게 구체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애정 어린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일체가 본래 성불해 있다는 선의 근본 입장을 드러내면서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제시해 조사선의 체계를 확립한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