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금강으로 불리는 대둔산 영주사에 주석하는 풍운 보안(風雲 普雁) 스님. 조실채로 찾아뵈니 “자연에 순응하며 살 뿐이니 편히 쉬었다 가라”며 자상하게 맞아주신다.
“여기가 부처님 품안입니다. 산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에워싸고 있어 연밥에 해당하는 자리이죠. 그래서 영주사에 오면 모두들 편안하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산이 좋아 골이 깊은 월정사로 출가한 스님은 전국의 명산을 찾아 정진했다.
23년 전, 황산벌을 찾아 우연히 들른 대둔산이 편안해 인연터라 생각하고 황무지에 바랑을 풀고 주지 법천 스님과 함께 불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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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곳에는 영은사라는 절이 있었다. 계백장군이 이끌던 5천 결사대와 나당 연합군 5만명이 싸우던 황산벌에서 수많은 이들이 전사했다. 영은사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한 사찰이다.
“풀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어요. 오직 기도만 했어요. 그러다보니 서서히 일이 되어 가고 오늘에 이르렀지.”
‘기도’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골이 깊은 계곡에 대웅전, 명부전 등 전각이 20여 채에 국내 유일의 노천 오백나한전, 금강사리석탑, 거대한 남북통일 미륵대불, 납골당 등 4만여 평의 대지에 대찰이 우뚝 서기까지에는 뭔가가 있겠지 했는데, 그것이 기도란다.
“무슨 기도를 하셨습니까?”
“실천입니다.”
의외였다. 풍운 스님이 말하는 기도는 여느 스님들의 기도와 달랐다. 스님은 “법당에서 목탁만 친다고 모두 기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실천할 때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기에, 중생들이 기도(실천), 참회하고 인격을 기르는 도량불사를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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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강조하는 ‘실천기도’는 쉽게 말해 ‘은혜를 갚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대자연의 은혜 속에 살고 있다. 사람은 물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덕택으로 살고 있다. 이들의 은혜를 알고 갚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가 스님의 화두이자 기도이며 정진이다.
세수 80을 바라보건만 풍운 스님의 당당한 풍채는 마치 대둔산을 지키는 호랑이 같다. 요즘 사람들의 최대 관심인 건강관리가 궁금했다.
“자기 몸에 지나치게 관심 갖는 것도 잡념입니다. 여기에 얽매이면 도리어 큰일나요. 천지우주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며 사는 것입니다”
영주사를 찾는 대중은 풍운 스님으로부터 법문 듣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스님은 “그저 풀 뽑고, 밥 잘 먹고, 소화 잘 시키고, 그렇게 실천하는 것이 법문”이라며 손사래를 치곤 한다. 스님은 하루종일 대중과 함께 있어도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도량 청소가 되었는지, 누가 왔다 가는지, 밥이 어떤지, 옷이 어떤지 일체 탓하지 않는다. 단지 손수 보여줄 뿐이다. 사실 스님은 끊이지 않고 실천법문을 하고 있건만 제대로 듣는 이가 많지 않은 것이다.
하루는 어느 불교대학에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다. 평소 법단에 오르지 않지만 불교대학측의 간곡한 정성을 뿌리칠 수 없었다.
가사장삼을 수하고 법단에 올랐다.
“거짓말하며 은혜만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오늘 참회합니다. 저의 절을 받아주세요.”
세 마디 하고 대중을 향해 큰절 세 번 올리고 법좌에서 물러났다.
영주사로 들어서는데 아랫마을에서 노인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거마비로 받은 봉투를 그대로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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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대중 앞에 나서지 않던 스님이 얼마 전 산에서 내려와 세상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사람답게 사느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죽는 것도 중요하다. 계룡산을 지키는 일에 한 목숨 내놓는 것이 뭐가 아깝겠는가?”
호남고속철도의 계룡산 통과 저지를 위해 지역불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 것이다.
스님의 서재에 들어서자 경전은 물론 법률 서적과 일본판 불교서적이 가득했다. 잠시도 책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일본판 ‘사후에 어디로 가느냐’ ‘불교설화’를 번역하고 있다. 굳이 책으로 출판하기보다 공부를 놓치지 않으려는 방편이다.
스님은 경전과 함께 법률판례집을 즐겨본다. 판례에는 세상사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스님, 저렇게 많은 경전, 판례집을 요약하면 무엇이라 하시겠습니까”
“중도입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물질과 정신, 선과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들을 잘 병행조절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불즉중도 중도불변(佛卽中道, 中道不變)’, “불교는 곧 중도이며, 중도는 천지우주의 근본 진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
풍운 스님의 가르침
사람들은 현대가 과학의 발전으로 생활이 풍족하고, 편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어 합니다. 사실 과학이 편리한 것 같아도 사람을 속박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학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잘사는 것이 아니라 파멸을 재촉합니다.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해야 하는데 과학을 내세워 자연을 훼손시키고 있습니다. 좀더 빨리 가겠다고 산 밑으로 굴을 뚫고, 제멋대로 제방을 쌓습니다. 과학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무한정 발달할 수 없습니다. 지구가 상처를 받다가 한계가 넘어서면 지각변동으로 뒤덮이고 하나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요즘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상재해가 바로 전초현상입니다. 자연훼손을 멈춰야 지각변동을 조금이나마 연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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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지구상에 서식하는 동물, 식물은 물론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주인입니다. 더불어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거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대자연의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 형제뿐 아니라 우주천지의 덕택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을 보세요. 색이 제각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육안으로 보았을 때의 색입니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중생의 땀과 피의 색입니다. 중생의 땀과 피를 먹고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항상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 합니다. 말로 갚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실천으로 갚아야 합니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남의 피와 땀을 거저먹고, 입고 살아서야 쓰겠습니까. 보답을 해야지요.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하나’를 화두삼아 열심히 일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실천이 어려워요. ‘체’병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났다’는 ‘체’병 말입니다. 없으면서 있는 체, 못났으면서 잘난 체,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이 병은 한번 걸리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중도사상입니다. 물질문명과 정신문화, 몸과 마음, 선과 악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것들을 병행조절 하는 것이 중도입니다.
과연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요, 아니면 악할까요?
우리는 코끼리와 장님 우화를 알고 있습니다.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정의를 내리는데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은 기둥이라고 하고, 배를 만진 이는 벽이라 하고, 꼬리를 만진 이는 구렁이 같다고 합니다. 코끼리를 만지기는 만졌지만 일부분만 만진 것입니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와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가 인간의 성품을 보기는 봤지만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듯 일부분만 본 것입니다. 선과 악을 동시에 겸하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동시에 겸했는데 어느 것이 악이고, 어느 것이 선이겠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악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에게는 기본 욕망이 있습니다. 그 욕망을 충족시키다가 어떤 선을 넘어서 다른 사람 권익을 침해할 때 우리는 악이라 합니다. 선을 넘지 않고 자제하는 것을 선이라고 합니다. 악이라고 전부 없어야 하고 선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잘 병행 조절되어야 합니다. 단지 악이 나타나는 현상을 형이하학, 선은 형이상학에 속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병행조절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풍운 스님은
192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중학교 입학과 함께 8·15해방을 맞았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로 사회가 혼란해지자 전국의 명산을 찾았다. 그해(17세)에 오대산 월정사로 들어가 5년간 행자생활을 마치고 초대 조계종 총무원장 지암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았다.
월정사 강원, 동국대 불교학과, 일본 경도제국대학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스님의 향학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속 나이로 환갑이 넘어서 한남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마쳤다. 스님은 운동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다. 젊은 시절 수행삼아 했던 검도, 우슈 고수이기도 하다.
정리=이준엽 기자·사진=박재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