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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석가모니가 처음 태어나자마자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사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으시니, 땅에서 연꽃이 저절로 나타나 그의 발걸음을 받들었다. 그리고 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 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사자후(獅子吼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한 사자의 목소리)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그림4).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어찌 들으면 자칫 오만하게도 들립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개인의 주체성만이 진리’라는 실존철학적 냄새도 풍기는 듯합니다. 석가모니의 첫 말씀.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일본 후쿠오카 혼카쿠지(本岳寺)에 소장되어 있는 ‘석가탄생도’에는, 마야부인의 룸비니동산 방문, 무우수(아쇼카 나무) 아래의 출산, 사방 칠보 걸음과 석가 최초의 사자후, 구룡 욕불(浴佛 또는 灌佛, 탄생석가불을 목욕시키는 의례) 장면, 정반왕의 친견 행차, 탄생에의 찬미와 그 상서로운 징조들이 매우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난 연재에서 논의한 바 있듯이, 본 작품은 조선전기 편찬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 등과 관계있는 조선전기(15세기 후반) 왕실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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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은, 석가의 생애 중 가장 기념이 되는 주요 여덟 장면 즉 팔상도(八相圖) 중에 석가모니의 탄생을 그린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에 해당하는 그림입니다. “(석가가 탄생하니) 천지가 진동하고 삼천대천세계가 다 밝아졌다. 그 때 사천왕이 하늘 비단으로 안아서 금궤 위에 얹고(연재13 그림3 참조) 제석은 천개를 떠받치고 범왕은 불자를 잡고 양쪽에 서서 향을 뿌렸고, 아홉 용이 물을 내려 씻기니, 물이 왼편엔 덥고 오른편엔 차가왔더라(연재13 그림1) … 천룡 팔부가 공중에서 풍악을 울리며 부처님의 덕을 노래부르고 향을 피우며 영락과 꽃비가 섞여 떨어지니(그림5) … 채녀가 하늘 비단으로 태자를 싸안아 부인께 모셔오니 스물여덟 대신이 네 모퉁이에서 받들어 모시더라(그림6). 청의(궁녀)가 돌아와 왕께 기별을 아뢰니까 왕이 사병을 데리고 동산에 들어가시는데 한 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려우셨다(그림7).” <석보상절> 발췌 인용.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 전 음력 사월 초파일날 바로 이 작품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광경들이 펼쳐지고, 우리가 교과서에서 접하는 역사와는 또 다른, 대외적인 사건들로 엮어진 역사가 아니라 대내적인 자아, ‘나는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근본과 씨름하는 역사의 여명이 밝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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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 ‘탄생게’로서 우리는 보통 앞서 언급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문구에만 익숙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뒤의 문구 “모든 세상이 고통 속에 잠겨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三界皆苦 我當安之)”, 즉 고해의 바다 속 중생을 구하겠다는 이 커다란 서원에 앞 문구 못지않은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 구원의 방법으로 석가가 제시한 것이 사성제와 팔정도이지요. 자신을 스승삼아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중생 모두 건지겠다는 대승불교적 보살정신, 이는 이 작품의 소의경전이 되는 <석보상절>의 서문 첫 구절에 나타난 그 취지와도 같습니다.
“부처는 삼계의 존귀하신 분이라 중생을 널리 제도 하시니(佛爲三界之尊 弘渡群生) 그 무량공덕을 사람과 하늘 다 기리지 못하는 바 됩니다” 이 석가모니의 이루신 업적을 ‘그림으로’ 또 ‘정음(한글)’으로 쉽게 풀이하여 백성에게 널리 읽혀 몽매한 이들을 교화 제도하겠다는 <석보상절>의 편찬 취지는, 민중교화ㆍ민중계몽의 취지로 창제된 훈민정음 창제 의도, 한 개의 달이 수천 개 강에 비치어 세상의 어둠을 밝힌다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의 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핵심원리입니다. 민중불교에의 진정한 시작은, 이렇게 한글창제와 불경언해사업을 몸소 시작한 세종과 세조로부터, 불교가 그 어느 시대보다 탄압받았던 숭유억불시대에, 그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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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상을 구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구해야겠지요. 그리하여 석가는 29세에 출가하여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의 나이 35세가 되는 해에, 육체적 탄생이 아니라 새로운 ‘정신적 탄생’을 하게 됩니다. 무명에 가리워졌던 자성(自性)이 그 통로를 찾아 밖으로 표출되게 되면 빛을 발하나 봅니다.
석가 득도 후, 녹야원으로 첫 설법을 가던 도중, 한 사문이 그의 안색에 광명이 넘치므로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너의 스승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답니다. 석가 왈, “나는 일체에 뛰어나고 일체를 아는 사람/ 무엇에도 더렵혀짐 없는 사람/ 모든 것을 버리고 애욕을 끊고 해탈한 사람/ 스스로 체득했거니 누구를 가리켜 스승이라 하랴/ 나에게는 스승 없고, 같은 자 없으며/ 이 세상에 비길 자 없도다/ 나는 곧 성자요 최고의 스승/ 나 홀로 정각 이루어 고요롭도다/ 이제 법을 설하려 가니/ 어둠의 세상에 감로의 북을 울려라”라고 하였답니다. 다름 아닌 바로 ‘탄생게’의 사자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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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는 열반에 들기 전 그의 유명한 마지막 유언에서도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라. 남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법(진리)을 등불로 삼고, 법을 스승으로 삼아라. 이 밖에 다른 그 무엇도 의지처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과 법(自燈明 法燈明), 이 밖에는 그 어떤 편도도 지름길도 없습니다.
석가는 그의 ‘탄생 때’와 그가 ‘깨달은 직후’, 그리고 ‘열반에 들기 전’, 이렇게 세 번에 걸쳐 모두 일맥상통하는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나를 스스로 등불삼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