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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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에 맞는 '분수 그릇' 챙기세요"
[큰스님]재곤 스님(군산 관음사 회주)
당시 그 청년의 꿈은 교회에 있었다. 절대자에 의지하며 행복을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의심이 솟아났다. 도대체 절대자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발길 닿는 대로 쏘다녔다. 우연이었을까? 순간, 머물 곳을 만났다. 1964년, 꽃 피는 고창 선운사. 청년은 그 길로 머리를 깎았다.
재곤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군산 나운동 관음사. 열 집 건너 한 집이 교회다. 인구 밀도당 교회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 인연이 얄궂다. 스님은 여전히 입산 전의 ‘오래된 기억’과 마주하고 있다.
포교, 수행의 다른 이름이었다. 척박한 군산불교를 알차게 일궈야 했다. 78년, 허허벌판 한 곳에 블록 벽돌로 10평 법당을 짓고, 매주 어린이법회와 일요법회를 열었다. ‘포교도 수행이다’란 믿음으로 부처님 법을 자나 깨나 알렸다.
관음사 경내는 온통 지장세계다. 108분의 지장보살님들이 도량을 지키며 중생 구제의 원을 밝히고 있다. 무더운 여름 재곤 스님이 시원한 물로 지장보살님들을 씻겨주고 있다.

“포교 없는 수행은 없어야. 나 혼자만 수행하면 뭐 하겠서잉. 아무리 좋은 옥답이라고 해도 누군가 개척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여. 황무지를 개간하지 않은 사람은 문전옥답이 되는 황무지의 소중함을 모르지. 그저 문전옥답만 생각하는 거여. 마찬가지로, 여기 군산이 불교의 불모지임을 누구나 아는 사실이여. 그란디 ‘여기 군산이 원래부터 불교의 황무지이니까, 개간하지 않아도 돼’ 한다면, 대한민국에 좋은 농토는 없는 거여. 처음부터 옥토는 없는 것이여.”
스님이 불교 불모지 군산에 관음사를 창건한 것은 척박한 지역에 점 하나를 찍은 것과 같다고 말한다. 만약 관음사라도 생기지 않았다면, 불모지는 더 불모지가 되지 않았겠느냐며 스님은 반문한다. 30년 넘게 군산불교를 일궈온 스님. 잠시 추억에 잠긴다. 하긴 개척자로서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선원에 들어가 방석 때를 묻히고 싶은 간절한 염원도 꼭꼭 눌러두고….
스님의 생생한 포교담은 나른한 오후를 긴장시킨다. 저린 다리를 고쳐 앉히고, 기자의 귀를 사정없이 잡아당긴다.
“목탁 소리가 법당 담을 넘어갈 때면, 어김없이 타종교를 믿는 동네 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왔서야. 그러면 대웅전 문 닫고 선풍기만 틀고 기도를 올렸지. 그때나 지금이나 군산은 교회 천국이여. 군 말없이 조용히 포교를 했서야. 왜 그런 줄 알어잉? 나 듣기 좋다고 남 듣기 싫은 짓을 해봐야 뭐하는감? 도심지에 직장인들이 잘 시간에 방해하면 뭐하겠는감? 그것은 부처님 욕 먹이는 짓이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늘 베푸는 마음이 불자들의 마음이 아니겠는감?”
스님의 말이 깊게 울린다. 수행자의 자세가 무엇인지. 왜 포교가 중요한지, 이해란 이름으로 타종교인에게 보이지 않은 폭력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지 곱씹게 된다. 머리로 아는 것은 늘 몸으로 한 경험만 못하다는 말이 어느 때와 다르게 다가온다.
스님의 포교관은 10년 넘게 해온 가족법회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조용해도, 내 가족이 불편하면 세상이 불편하다’는 말로 스님은 법문을 시작한다.
“세상이 불편하다고 해도 가족 구성원이 화목하면, 그 웃음소리로 가정도 세상도 평안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이여. 나부터 행복하지 못하면서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겠서야? 자기한테 가장 행복한 것은 자기 안에 있어. 그러니 가족 법회는 우선 가족부터 행복하자는 뜻으로 열기 시작한 것이여. 가족부터 행복하면은 그 행복은 어디에서나 넘쳐흐르지 않겠어?”
매달 한번씩 여는 가족법회. 재곤 스님이 행복을 주제로 법문하고 있다. 사진=고영배 기자

내가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게 보인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 낯설게 느끼지는 까닭이 무엇일까? 스님의 답이 명쾌하다. ‘나의 불행으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의심하기 때문이여.’
스님은 새벽 3시 45분이면 일어나, 좀 앉았다가 법당에 올라간다. 그리고 5시까지 좌선을 한 뒤 곧바로 새벽 6시까지 예불을 올린다. 출가 이후, 단 한번도 빠뜨리지 않은 철칙이다. 새벽예불 봉행은 출가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것이다.
“우리 법당에 올라가는 계단이 24개여. 가장 가까운 데 부처님이 계시지. 그런데 부처님을 뵙지 않는다면, 과연 불자이겠는감.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 예불은 반드시 올리지. 그것이 출가자로서 나와 약속한 서원이여. 그렇지 않으면 출가자가 아니지.”
스님의 건강비결이 궁금해진다. 쉼 없이 포교활동을 해온 스님. 칠순의 나이에도 포교열정이 조금도 식지 않은 이유를 묻자, 조금은 싱거운 대답이 돌아온다.
“딴 것 없어야. 자기가 자기 몸을 움직일 때, 비로소 건강이 있는 것이여.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건강할 수 없지. 안 그런가잉.”
더위가 잔뜩 독이 오른 듯 하다. 푹푹 찌는 게 찜통이다. 덥다는 생각조차 덥다. 그래서일까? 세수 70에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재곤 스님의 포교열정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글=김철우 기자·사진=고영배 기자

재곤 스님의 가르침
불자들은 생활 속에 녹아든 인연법을 바로 깨쳐야 합니다. 붙들면 놓치고 내던져야 붙들리는 그 이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네 일상적인 만남도 인연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간 알게 모르게 지어온 인연관계를 만남을 통해서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서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붙들면 놓치고 내던져야 붙들린다는 재곤 스님. 재가불자들이 일상 속에서 이런 연기의 이치플 깨치면 자유인이 된다고 강조한다.

바로 여기에, 일상을 사는 재가불자들이 선 수행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들어 있습니다. ‘언젠가 만났던 인연인데?’ 하고 그 만남의 인과를 의심하는 것. 이것이 선공부입니다. ‘이 만남의 인연은 무엇인고, 어디서 왔는고?’ 하는 것이 화두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남의 인연을 궁구하는 것이 일상 속 선 공부법이 됩니다. 즉 ‘이 뭣꼬’ 화두가 일상에 녹아든 것입니다.
마음을 다듬고 생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집니다. 거울은 항상 상대를 거짓 없이 밝혀줍니다. 그러나 닦지 않으면, 습기나 먼지 같은 것이 끼게 됩니다. 인간도 거울과 같이 맑은 마음을 갖는데, 항상 닦지 않으면 탁한 것이 끼게 되어 있습니다. 수행은 항상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늘 마음을 닦다 보면 깨끗한 마음이 그대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도들에게 말합니다. 거울을 보고 웃으라고. 웃으면서 거울을 보면, 자기 모습이 어떤지 압니다. 누구보다도 자기가 먼저 압니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서 예불을 드리기 전에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친견하면, 부처님이 빙그레 웃는 미소를 보입니다. 자기 마음을 어떻게 갖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불자들은 첫발을 잘 디뎌야 합니다. 공부할 시기를 놓치게 되면,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면, 초년에 힘들더라도 앞을 내다볼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주인을 어떻게 잘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주인을 잘 만나면 이 몸뚱이는 좋고, 그렇지 않으면 주인이 몸뚱이를 따라다니게 됩니다.
늘 이런 말을 강조합니다. ‘중이 되서는 중의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또 주지는 주지 소임을 갖고 살아야 하고 선객은 선객답게 살아야 한다’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분수를 지키라(守分)’는 가르침입니다. 중은 중노릇을, 속인은 속인노릇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마음공부의 나침반입니다.
어떻게 분수를 지킬 수 있을까? 자기 배를 다스리는 것과 같습니다. 식탐을 잘 절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뱃속을 음식물로 꽉 채우고 살면 안 됩니다. 조금은 부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식탐을 조절하기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욕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분수 그릇’을 갖고 있습니다. 그 그릇 크기만큼 음식을 담아야 하지, 더 담으려면 넘쳐흐르게 됩니다. 터무니없는 욕심 때문입니다.
마음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으면 잘못된 점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은 자신 밖에 모릅니다. 불자들은 ‘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면 남에게 끌려 다니게 됩니다. 행여 끌려 다녀도 ‘옳게 끌려 다녔는가, 옳게 끌려 다니지 못 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통해 반성하고 참회해야합니다.
아침에 부처님께 예불을 드릴 때, ‘어제의 삶을 반성하여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30분에서 1시간 정도 기도를 하면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또 자기 일을 가다듬어서 생각을 하게하고, 취침 전에는 자기가 계획한 것이 어디까지 성취됐느냐를 생각해서 다듬어야 합니다. 혹자는 자신의 진심을 상대방에게 내보인다는 것은 내 자유를 그 사람에게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배신이나 이용도 당합니다. 재가불자들이 사회생활 속에서 마음을 쓰기가 어려운 까닭이 이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베풀다 보면 나는 아무것도 없지요? 텅 비었습니다. 무소유자는 말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가 마음도 편하다고 했습니다. 가령 가방에 돈이 한가득 들어있다면, 그 가방을 아무 곳이나 함부로 둘 수가 없습니다. 가방 속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 나 밖에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가방 속에 치약, 칫솔, 세면도구만 넣어갖고 왔다면 아무데나 놓고, 또 좀 놀다가 보면 있으면 있는가보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이처럼 마음은 편한 것입니다.
때문에 불제자들은 절대 가식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가식으로 살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을 아는 상대방에서 비판을 받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을 때, 참다운 아름다움이 나옵니다. 당사자 나름대로 독특한 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바른 불제자의 자세입니다.
정리=김철우 기자·사진=고영배 기자

재곤 스님은
1937년 공주 출생. 64년 선운사에서 출가했다. 은사는 남곡 스님. 66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68년 동화사 강원을 졸업했다. 이후 문경 봉암사, 공주 마곡사 선원 등에서 안거를 했다. 교구본사 선운사 주지를 역임한 스님은 이후 내장사, 대흥사, 조계종 감찰부장·규정부장 등을 지냈으며, 조계종 9ㆍ10대 종회의원, 종정 사서실장 등을 맡았다.
스님은 특히 88년 전북불교총연합회장, 군산불교사암연합회장 등을 맡아 전북불교 활성화에 전력했으며, 84년부터 군산교도소 지도위원과 9군단, 35사단 등 군포교에도 앞장서왔다.
군산/글=김철우 기자 사진=고영배 기자 | in-gan@buddhapia.com
2006-08-22 오후 2: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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