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만나자마자 지족 스님은 이 말씀부터 하신다. 오전부터 들이닥친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시면서도 지면에 소개되는 것은 조금 불편해 하셨다. 중간 중간 불편함을 비치시면서도 스님은 불쑥 찾아간 기자를 위해 보이차를 진하게 우려주셨다.
전국을 다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던 지족 스님은 1980년 서울 길동에 정착했다. 이곳이 바로 백제불교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대흥사 뒷산은 성산봉(聖山峯)이라고 불려진다. “전국에 성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몇 군데 없다”는 스님은 성산이 맘에 들어 맨몸으로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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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서울의 동쪽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에다가 길동(吉洞)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길상사라고 이름지으려다가 대흥사로 지었다. 대가람을 만들어서 이곳에 오는 납자들이 도를 다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 저도 부처님 은혜를 입고 살잖아요. 은혜를 갚기 위해 절을 세웠어요. 강동에서 문화재가 될 수 있는 절로 계속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대흥사는 한 번 불탔었다. 1995년 12월 동짓날 새벽 2시 50분. 방화였다. 법당이 불타고 있는 동안 스님은 일심으로 기도했다. “제발 주변 민가에 피해없이 법당만 타고 화마가 물러나라”고. 한겨울에 타오르는 불빛은 이상하게도 오색빛이 찬란했다. 그 불을 보면서 스님은 웃었다. “인연이 없어서 타는 것을 근심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불길은 지하 요사채에는 번지지 않은채 잡혔다. 스님은 수행도량을 세우겠다는 발심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다잡았다.
시멘트로 법당을 다시 지었다. 대가람 중창을 위해 그리고 깨달음을 위해 스님은 오늘도 기도 정진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실천으로 가르치셨듯 스님도 스스로 기도하고 정진하고 독경하면서 신도들에게 몸으로 일러주신다. 당신이 기도정진하듯 신도들도 기도하며 마음을 담아 참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대흥사 법당은 ‘대원보전(大願寶殿)’이다. 주존이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한 법당을 보고 주변에서 미쳤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지장보살상은 명부전에나 모시던 때였기 때문. 그때 스님은 “지장보살을 협시보살로라도 안 모시면 밥도 못얻어먹을 것”이라고 말하며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셨다.
법당에 들어서면 스님의 자상함을 느낄 수 있다. 각 불상과 불단마다 팻말이 붙어있는 것. ‘지장보살’ ‘칠성단’ ‘신중단’ 등 처음 들어오는 이라도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눈 뜨면 일어나고 눈 감으면 자는거지. 난 밥벌레야.” 말은 이렇게 하지만 스님은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아침예불을 드린다. 세수 일흔이 넘었어도 예불을 소홀히 한 적은 없다. 예불 후 두어시간은 꼬박 참선을 한다. 스님은 생활이 곧 수행이고, 수행은 곧 포교인 생활을 하고 있다.
문 앞에 ‘나무지장왕보살’이 붙어있는 스님 방은 매화 그림이 가득 차 있었다. 전면에는 매화 병풍이, 한쪽 벽면에는 금니매화도가 걸려있었다. 누구의 작품인지 물었다. 은사 화엄 스님의 작품이라는 대답이다.
“우리 은사스님에게 반해서 출가했다”는 스님의 방과 거실에는 지장보살도, 달마도 등이 즐비하다. “우리 화엄 스님은 중년에 가서야 그림을 그리셨는데 우리 절 현판도 스님이 써주셨어요.”
스님도 사실 글씨에 소질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배우지 않았다. 글씨나 그림에 노예가 되는 것이 싫어서였다. 스님은 그 흔한 유행가 한 곡도 부르지 못한다고 했다.
방 한켠에는 육환장과 불진, 죽엽삿갓이 걸려 있었다. “스님이 삿갓을 쓰고 다니는 것은 깨치기 전까지는 죄인이라 하늘을 못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시는 모습은 정말 죄인 같았다.
스님에게 젊은 시절 이야기를 청했다. 스님은 당장 앨범을 들고 와 일일이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주셨다. 그 가운데 10여년 전 지유 스님(현재 범어사 조실)과 함께 편안하게 방에 앉아 찍은 사진이 있었다.
“지유 스님은 생불이야. 대한민국 수좌 중에 지유 스님 따라갈 사람은 없어요.” 지유 스님에 대한 자랑이 넘쳐난다. 무소유로 살면서 장좌불와를 실천하는 스님이라는 것이 지족 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은 관세음보살모다라니 주력을 8년 했다. 제방 선방을 다니며 화두선에도 정진했다. 그래서일까. 뭐든지 하면 이루어진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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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 스님에게 어떻게 수행해야 할지 물었다.
“무식이 도를 깨친다고 하잖아요. 무식하면 집중하거든요. 물론 유식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에요.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지. 석가모니 부처님은 행으로 실천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신 분이에요. 염불의 길도 깨달음의 길이요, 참선 화두 드는 것도 그 길입니다.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찾아서 열심히 하세요. 우리 불자들도 열심히 근기에 맞게 수행 정진하면서 마음을 바로 세우면 성불합니다.”
스님은 “나의 법명이 곧 화두”라며 “스스로 만족할 수 있으면 큰 일을 이룬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지족 스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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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54년 경북 상주 남장사에서 한산 화엄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청봉 스님에게 사교를 마치고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문경 혜국사 주지 소임을 시작으로 구미 도리사, 포항 보경사, 울산 내원암 등 선원에서 수행했다. 태고종 원로의원으로 1980년 서울 대흥사를 창건해 현재까지 주석하고 있다.
지족 스님의 가르침
마음을 비우면 바로 그곳이 극락이요, 번뇌가 있으면 지옥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바세계라 하는 그곳을, 속세에서는 우주세계라 합니다. 우주세계는 3요소가 있어야 해요. 모양이 있어야 하고, 흡수(먹어야)해야 하고, 음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만물이 다 그렇습니다. 나무도 모양이 있고 수분을 흡수하고 암수의 음양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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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으면 윤회합니다. 이생에서 선행을 많이해 선업을 쌓았으면 다시 사람으로 나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축생이나 아귀가 되는 거에요. 이 세상이 너무 좋아서, 살기 좋은 세상이라서 1초라도 더 살려고 하는데요. 우리가 인생에 속아서 사는 겁니다.
윤회해서 태어나면 괜찮아요. 그런데 태어나지 못하고 집착에 붙들려 중음신(中陰身)이 돼서 떠돌아요. 내가 관에 들어가서 보면 떠돌아다니는 중음신들도 먹어야 하거든. 중음신은 1년이 하루예요. 1년에 한 끼 먹고도 사는 겁니다. 중음신은 3요소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먹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인연 닿는 곳 가족 등에게 붙어서 대신 먹고 사는 거죠.
그 중음신이 붙으면 보이지 않는 물체를 짊어진 것처럼 짐이 돼서 몸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몸이 약해지는데 병원 가봐야 병명도 나오지 않아요. 또 몸이 약해져서 면역력도 떨어져 다른 병도 쉽게 생기죠.
말법시대에 오면 스님이나 사찰에서도 점을 보고 그런다잖아요. 지금이 말법시대에요. 그래서 점치고 이런 것들이 횡행해요.
내 마음이 공(空) 상태에 들어가 화두를 잡고 관하면 중음신이 나를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달라붙지 못하지. 내가 잡념이 들었을 때 생에 대한 집착만이 남아 있는 중음신이 들러붙는 거예요.
말법시대라도 정도를 따라야 합니다. 어떻게 정도로 가느냐. 하심하고 공부해서 오로지 정진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혼란하고 각박할수록 점·사주 등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문제입니다. 점 봐서 나쁘다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돈주고 재지내고 부적 사서 붙이고 이렇게 할 겁니까? 아니죠. 기도하세요. 기도해서 덕을 쌓으면 되는 겁니다.
말법시대에는 이기주의와 사기가 판을 쳐요. 우리 불교가 바로 잡아야 합니다. 사회 윤리 도덕을 살려야 해요. 지장보살 이타사상으로 중생을 제도해야 합니다. 지옥에 중생이 없어야 성불한다고 하잖아요.
지금 이 시대가 바로 지옥입니다.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를 이타사상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불국토가 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왜 지장보살일까요. 관음보살은 산 사람을 제도합니다. 지장보살은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모두 제도합니다. 그래서 지장보살 이타사상으로 중생을 제도해야하죠.
사람이 지나치게 돈만 따르면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중생은 내 그릇이 작은데, 내 분수에 맞지도 않는 탐심을 내는 겁니다. 남을 속이고 사기치면서 내 욕심만 채우려고 드는 거죠. 내 그릇에 맞지 않게 욕심내서 남의 것 빼앗아 큰 집 지니면 뭐 합니까. 그 집에서 살 수 있나요? 아닙니다. 돈만 긁어대다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물론 탐심이 없으면 이 세상 못삽니다. 다만 분에 넘치는 탐심을 내면 안된다는 겁니다. 닦아서 착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바로 그것이 부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도들에게도 한달은 <금강경>을, 또 한달은 <지장경>을 독송하도록 합니다. 신도들에게도 법문만 듣지 말고 열심히 기도해서 마음을 깨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불교에 귀의하고 절에 오는 목적은 성불이에요. 팔만대장경에서 설한 법은 부처님께서 불자들을 성불로 이끌기 위해 각기 좋아하는 얘기들을 해주는 방편인 겁니다.
요즘 불서도 많잖아요. 그것 뿐입니까. 불교방송 불교TV 등 방송도 있고, 불교계 신문들도 많잖아요. 사경공덕을 말하는데 사실 옛날에 사경했던 이유는 책이 없어서 그랬던 거 아닙니까. 사경만 죽어라 한다고 성불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마음을 바로 세워 참된 인생을 살아야, 사람 노릇 제대로 해야 성불하는 겁니다.
사람 노릇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 말씀대로 열심히 수행하면 돼요. 속이지 않고 참되게 살기 위해 불도를 닦는 거에요. 부처님께 귀의해서 아침 저녁으로 예불 정진하니까, 마음을 비우고 덕을 쌓으니까 이렇게 사는 겁니다.
중생들도 마찬가지에요. 자기 마음만 바로 세우면 주위에서 저절로 추앙해줍니다. 그것이 불도에요. 사람을 참되게 만들어야죠. 그러기 위해서 스님들부터 모범이 돼야 합니다.
가정을 생각해봅시다. 부모는 거짓말하고 잘못하면서 자식한테 하지 말라고 해요. 내가 제대로 하면서 자식한테도 말해야죠. 그래야 통합니다. 사회가 혼탁한 이유는 모두가 제대로 못 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스님도 시주를 받으면 열심히 수행하고 닦아서 신도들에게 돌려줘야 해요.
보시 역시 내가 빌려주는 거에요. 제대로 살지 못하면 스님이라도 업장을 많이 짓게 됩니다. 일하지 않고 시주받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청빈하게 똑바로 불도를 닦아 신도를 이끌지 않으면 그 업장이 그대로 쌓입니다.
열차가 탈선하면 철로에 다시 올려놓지 않습니까? 이렇듯 신도들이, 불자들이 잘못된 길을 가면 스님이 나서서 바로 잡아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님의 의무에요.
어려운 이에게 보시를 하면 아무리 무주상 보시라해도 어느 때인가 나한테 그 복덕이 돌아옵니다.
제가 관(觀)에 들어보니까 인연은 금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만나는게 참 힘들어요. 부부가 죽어서 내생에 다시 만나자 하지만 개개인의 업장이 틀리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 없어요. 몇겁생에 가다가 한 번 만날까 말까 한거죠.
우리 은사스님이 내 법명을 참 잘 지어주셨어요. 지족(知足)만 하면 바로 극락이고 부처세계죠. 그래서 이 세상 이 우주 진리가 모두 다 내꺼에요. 그래서 중이 가장 큰 도둑놈이지. 작은 것 아닌 큰 것, 우주를 탐을 내잖아요. 허허허.
정리=강지연 기자·사진=고영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