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한가운데는 22자 108톤 규모의 통일대불이 우뚝 서있고, 주위에는 청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달마상, 11면관음보살상, 약사여래불, 18나한상 12지신상 등 100여위의 다양한 석조부처님들이 봉안돼 있다. 7월 12일 봉행되는 통일대불 복장봉안과 8월 28일 선불장 통일대불 점안 봉불식을 앞두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크레인 소리 사이로 원각사 해동선원장 태응 스님은 불사 하나 하나를 직접 꼼꼼히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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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 옮기고 앉히는데도 온 정성을 기울이는 태응 스님. 스님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통도사 분원 서광사를 창건하고, 6만평 부지위에 한국 전통 목조 건축 양식의 법당을 세워 한국전통사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다.
매일 새벽 2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고 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은 빠지지 않는다. 공양도 물론 대중과 같이 한다. 원각사 해동선원은 결제기간 중. 하루 두 시간씩 4회의 수행정진시간 역시 불사 때문에 모든 시간을 참여하기는 어렵지만 매번 한 시간씩은 동참하려고 애쓴다. 스님의 24시간은 단 1초도 허투루 지내는 일이 없다. 24시간을 오롯이 깨어있는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기에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스님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따른다.
손상좌인 총무 동일 스님은 “스님이야말로 진정한 원력보살”이라고 말했다. 하안거 결제에 들어가기 위해 원각사 해동선원을 찾은 한 재가불자는 “정말 부지런한 어른이며, 한결같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스님 요사채에 꼭 가보라”고 귀띔했다.
창고를 개조한 한 평 남짓한 스님의 거처.
“방이 너무 작아 불편하지 않습니까?”
“방이 커요. 서이(세 명이) 누워도 충분해. 큰 데 가 보면 큰 게 골치 아프거든. 절대 큰 거랑 바꾸지 않을 거예요.” 스님은 작은 방에서 큰 만족을 이야기했다.
태응 스님은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회에 나가 살겠다는 뜻이 나질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를 위해 부처님 전에 기도하며 살고 싶었다는 스님은 17세 때, 불심이 깊은 형님을 따라 울산 미타암 주지로 있던 성수 스님께 세배하러 갔다가 ‘이렇게 큰 스님이 되는 것도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는 형님의 말을 듣고 출가했다.
“성수 스님은 별 말씀이 없으셨지요. 단,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니 깨달아야한다며 늘 참선을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말보다는 좌선하는 모습으로 가르침을 내려주셨습니다. 재주나 기교, 꾸밈이 전혀 없지요. 천진면목 그대로인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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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응 스님은 은사스님에 대해 한없는 존경심을 갖고 있다. 1966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했을 때도 스님은 원래 강사를 하기 위해 도반스님 10여 명과 직지사 강원에서 일대시교를 다시 완전히 배울 계획이었는데 ‘강원에서 일대시교를 봤으면 실천을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은사스님의 말에 모든 계획을 접고 오대산 상원사에서 7년간 선 수행에 전념했다. ‘배운 걸 가지고 참선으로 불교가 뭔지 깨달아야지 말로 익혀서는 안 된다’는 은사스님의 뜻을 따른 것이다. 당시 성수 스님은 “10년간 산에서 산돼지가 된다면 나올 때는 뭐가 되도 될 것”이라고 말해 주셨다.
가장 깊은 산을 찾아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간 태응 스님은 적멸보궁에서 1000일 기도를 했다. 그러나 10년의 시간을 채우진 못했다. 극락암 조실로 계신 경봉 스님을 꼭 한번 모시고 싶은 마음에 극락암에 잠시 내려와 살았는데, 성수 스님이 범어사 주지가 되는 바람에 범어사에서 원주 소임을 보며 은사 스님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스님, 운수납자의 삶에 미련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쉽지는 않으세요?”
“초발심으로 산에 올라가 도를 닦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다고 신심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스님은 절 살림을 하면서, 불사를 하면서 수행자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스님은 지금 이 순간도 화두를 놓지 않고 있다.
이야기 중간 중간, 불사의 과정 과정을 점검하는 스님은 일을 돕겠다고 나선 총무 스님의 도반에 대한 배려도 각별했다. 혹 젊은 열기에 무리를 해서 몸을 다칠까 마음 쓰는 태응 스님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윙윙거리는 크레인 소리에 신경이 거슬릴 법도 하고, 대작불사의 마무리 과정에 신경 쓸 일도 많을 텐데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귀찮게 물어대는 기자에게 한결같이 대하는 모습이다. 태응 스님에게서는 한 점 흐트러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을 지시할 때도 목소리엔 따뜻한 부드러움이 가득하다.
글=배지선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태응 스님은
태응 스님은 1956년 울산 미타암에서 성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57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60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스님은 통도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조계사·통도사 주지 제11대 중앙종회의원을 거쳐 (재)불교방송 이사 (사)생명나눔실천본부 총재 (주)불교텔레비젼 초대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캐나다 밴쿠버에 통도사 해외분원 서광사를 창건했다.
태응 스님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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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 스님은 어릴 때 자기또래의 친구들과는 놀지 않고 늘 노인들하고만 놀았습니다. 그래서 ‘햇노장’이라고 불렸답니다. 그 때 성수 스님이 노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원효대사 이야기였습니다. 성수 스님은 그래서 원효대사와 같은 분이 되기 위해 출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동선원에는 성수 스님이 직접 지시해서 조성한 원효성상을 주불로 모시고 있습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과거 어떤 전쟁이 일어났을 때보다 더 살기가 어렵습니다. 환경이 오염되어 세계적으로 이상 기온이 생겨나고, 홍수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는 물론 인재까지 겹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모두 중생의 업보로 생기는 것인데 모두의 정신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어야 하고 견성 성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수 스님의 원력이고 이 터를 잡고 불사를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경주남산에 가면 돌마다 탑을 모시고 부처님을 조성했습니다. 남산전체가 박물관이고 노천법당입니다.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법당바닥으로 삼았으니 세계에서 제일 큰 법당입니다. 이런 세계적인 안목으로 불사를 시작하고자 했고, 그리고 옛날 신라시대 김대성이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우고 석굴암 부처님을 모신 뜻을 다시 새겨 이곳에 봉안하려는 뜻도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대성은 다음생에 부잣집에 태어나 가난한 전생부모와 부자인 현생부모를 한집에 모시고 산 효자입니다. 그리고 과거 부모를 위해서는 다보탑을, 현생 부모를 위해서는 석가탑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아사달은 자신을 기다리다가 죽은 아사녀의 다음 생을 축복하기위해 석굴암 부처님을 조성했습니다. 인도의 부처님이 살아계셨던 영산회상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토함산에 생동감 있게 재현함으로써 아사녀를 위한 사랑을 세계적인 문화재가 되도록 승화시켰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라불교가 생사가 없는 영원한 삶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죽지 않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과거 부처님의 영산회상 당시를 활불로 재현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불사를 그냥 한 것이 아니고 생은 영원하다는 것을 전제로 그걸 재현한 것입니다. 김대성이 아사달에게 죽은 아사녀를 축복해주라고 한 것은 미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거든요. 또, 석굴암 부처님을 동해바다 해가 떠오르는 쪽에 조성해 해가 떠오를 때마다 붉은 햇빛을 받아 발그스레하게 살색을 띠면서 생동하도록 했습니다.
그대로 활불을 친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불성이 영원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생사가 없는 영원한 삶을 표현한 것입니다.
원각사 통일 대불도 당시의 원력을 이 순간의 원력으로 끌어들여 삼고자 했습니다. 불성은 영원하며, 생사가 없는 영원한 삶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수많은 돌부처님 앞에서 기도 참선정진을 해서 견성성불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매사에 지극하길 바랍니다. 이렇게 살기 어려운 때에 어떻게 살아가면 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나는 이미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실천을 안 한다는 것일 뿐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실천을 하세요. 실천의 첫 걸음은 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살생하지 마라, 사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등의 오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뭘 하겠다고 생각하면 어떤 괴로움이 있어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지장보살의 원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지극한 마음으로 소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도록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출가 수행자들은 물질과 명예에 재미를 붙이지 말고 정신 수행으로 성품 깨달아야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일반 세속에서는 산더미처럼 쌓고 끌어안아야 출세라고 생각하지만 부처님은 왕좌도 버리고 금식하고 6년 고행해서 출세한 분입니다. 이처럼 다 비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 거쳐야 생사 해탈을 뛰어넘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영원하구나’ 무릎치고 박장대소할 수 있는,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장부가 되어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왕좌까지 버린 그 자체가 대웅(大雄)입니다. 영웅 중에 영웅인 것입니다. 상대를 초월한 영웅, 그래서 법당을 대웅전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