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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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드는 화두 ‘꿀맛’
[큰스님편안하십니까]구미 문수사 주지 혜향 스님
때 이른 장마를 시샘이라도 하듯 불쑥 찾아온 무더위가 한창인 6월 19일. 100호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경북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 부락에 도착하자 산 중턱에 어렴풋이 문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의 ‘백장 스님’이라고 불리는 혜향 스님이 선농일치를 실천하는 도량이 저기구나 하는 마음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마을을 지나자 정겹게만 느껴지는 오솔길이 나타난다. 주변에는 벼포기가 실팍한 논과 사과밭이 즐비하고 아카시아 향이 가득했다. 경내에 도착하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스님이 아닌 바로 꿀벌들. 혜향 스님이 아들같이 키우고 있는 벌들이 산사를 찾아온 손님을 아는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경내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을 오가며 부지런히 꿀을 따고 있는 벌이 스님의 하루 일상을 말하는 것 같았다.

혜향 스님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후반 강원도 영월 법흥사에서 수행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사하촌 주민에게 양봉 기술을 배웠다. 1962년 만행으로 지금의 문수사에 잠시 머물렀을때 신곡리 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거르는 현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님은 직접 뒷산을 일구어 밭을 만들었고 주민들을 설득해 양봉을 시작했다. 선방에 앉아 참선을 하는 것도 수행이지만 중생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더불어 사는 것도 수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혜향 스님은 중국의 백장회해(百丈懷海, 769~814) 스님이 가르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법어를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았다.

“주민들이 너무 어렵게 살아서 시작한 일이 이렇게 한 평생의 살림살이가 됐어요. 몸뚱아리 놀려서 뭐 하겠어요,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게 분명한데…. 가부좌를 틀고 화두를 드는 일이나 농사일을 하며 화두를 드는 것이 다를 바가 없어요. 모두 마음의 문제니깐.”

혜향 스님의 일과는 여느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새벽 3시에 일어나 상좌 월담 스님과 함께 예불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불과 함께 잠시 참선을 한 이후 스님은 바로 양봉통을 찾아가 꿀벌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아침 공양을 하고나면 과수원에 가서 사과나무가 잘 크고 있는지 살핀다. 경내 한 모퉁이에 텃밭을 일구어 상추, 고추 등 먹을거리를 재배하며 하루를 보낸다. 먹물옷을 입었지만 장갑을 끼고 한손에는 호미를 들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스님은 경을 보거나 염불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항상 ‘이뭣고’ 화두를 든다. 젊은 시절 일을 하다가 화두를 놓치고 밤에 자려고 하면 큰스님들이 ‘오늘 하루도 헛살았구나’ 하는 말이 생생했다는 혜향 스님. 몸이 피곤해 육체의 한계를 느낄때일수록 화두가 더 성성하게 살아있다고 말한다. 최근 당뇨 합병증으로 심장의 혈관이 막혀 여섯번이나 대수술을 했지만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하루도 농사일을 거르는 법이 없다.

“육체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합니다. 너무 편안하니깐 공부가 안 되는 거예요. 열심히 일하다 잠시 쉴 때 번쩍 빛나는 화두의 참맛이 농사일을 수행으로 살게 하는 것 같습니다.”

혜향 스님은 가끔 시간을 내 신곡리 마을 경로당을 찾는다. 같이 농사일을 하는 ‘도반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스님은 주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간간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곤 한다.

상좌 월담 스님과 담소를 나누는 혜향 스님(왼쪽).
,신곡리 주민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스님을 마을의 어른으로 생각한다. 스님이 가르쳐준 양봉을 통해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다. 스님은 지금도 마을 행사나 주민들의 애경사를 직접 챙긴다. 또한 인근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주며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있다. 이에 보답하듯 주민들도 부처님오신날 등 사찰에 큰 행사가 있으면 내집 일처럼 돕는다. 신곡리 마을 한 가운데 커다란 교회가 있지만 100호 가운데 문수사 신도가 97호에 이른다고 하니 신곡리 주민들과 스님간의 각별함을 쉽게 알 수 있다.
혜향 스님은 요즘 요사채 불사를 마무리 하느라 분주하다. 지난 겨울 농한기를 틈타 시작한 불사가 이제야 마무리 공사를 남겨두고 있다. 불사가 다소 늦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예산 부족. 다른 사찰에서는 신도들의 모연을 통해 불사를 진행하지만 문수사는 오지라 스님이 직접 농사일과 양봉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불사를 진행해왔다.

혜향 스님은 스님들도 자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생이 얼마나 고생을 해서 돈을 벌고 있고 그 돈으로 시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중생구제는 모두 ‘공염불’이라는 것. 선방에서 수행을 하더라도 하루 한 두 시간 정도는 노동을 통해 진정한 땀의 의미를 알아야 중생의 아픔도 알 수 있고 깨달음의 길에도 빨리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평생 노동을 하며 수행해 왔지만 이제야 부처님의 법을 조금 알 것 같아요. 빨리 깨치겠다고 자신을 다그치지 말고 고목나무처럼 한자리만 지키며 열심히 정진하다보면 깨달음은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있으니 열심히 정진하세요.”


혜향 스님은

1937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혜향 스님은 15세에 합천 해인사로 출가했다. 16세에 상주 남장사에서 동산 스님의 6번째 상좌인 화엄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고 부산 범어사 강원에서 5년간 수학했다. 이후 직지사 강원, 조계사 강원, 영월 법흥사 등에서 경학과 참선 수행을 병행했다. 1962년 구미 문수사에 주석하면서 현재까지 ‘농사꾼’으로 수행하고 있다.
글=김두식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혜향 스님의 가르침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발심했을 때가 곧 깨달음을 이룬 때라는 말입니다. 그 만큼 초발심이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출가한 사미가 지켜야 할 덕목을 적은 경전이 바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입니다. 신라 원효 스님이 지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중기 지눌 스님이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고려 후기 야운(野雲)이 지은 <자경문(自警文)>을 하나로 역은 책이지요. 오늘은 그 가운데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출가 수행자를 위해 지은 내용이지만 재가 수행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법화경>에는 유명한 ‘화택(火宅)의 비유’가 나옵니다. 늙은 부자가 어느날 밖에 나갔다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집이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달려가서 보니 아들들이 노는데 정신이 팔려 불타고 있는 집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늙은 부자가 아무리 나오라고 소리쳐도 아들들은 듣지 않았고 집이 불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부자는 아들에게 온갖 보물을 주겠다고 하여 집밖으로 나오게 합니다. 여기서 불타는 집, 화택(火宅)은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우비고뇌(憂悲苦惱)로 점철된 세상을 뜻합니다.

다시말하면 중생이 사는 세상이란 불타고 있는 집이나 마찬가지며 번뇌 망상이 자신을 파멸시키리라는 지엄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불이 시시각각 다가옴을 모르는채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생은 평생동안 자신의 몸에 대한 애착과 온갖 욕심에 휩싸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한 몸의 욕심과 쾌락을 버리면 부처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효 스님은 “이 몸뚱이는 허망한 것이고 곧 무너질 것이므로 아무리 아끼고 보호해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세속에 대한 미련을 끊고 계행을 철저히 지켜 조사가 되고 부처가 될 목표를 세워 정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도를 닦는 수행자가 호화스러운 비단옷을 입고 많은 것을 소유한다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좋은 음식을 먹고 애지중지 보살피더라도 이 몸은 반드시 사라질 것이며 비단옷을 입어 보호하더라도 이 목숨은 반드시 마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흙·물·불·바람의 사대(四大)로 구성된 몸은 곧 흩어지므로 오래 살 수 없습니다. 오늘도 벌써 저녁이 되고 내일이면 또 다른 해가 뜹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하루가 지나가고 하루하루가 흘러 어느덧 한달이 되며 한달이 지나서 어느덧 한해가 되고 한해 한해가 바뀌어서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됩니다. 얼마나 시간이 빨리 흘러갑니까. 그러니 지금부터 서둘러야 합니다. 세상의 향락 뒤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고 한번 참으면 오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찌 도를 닦는데 게을리 할 수 있겠습니까?

망가진 수레가 굴러갈 수 없듯이 사람도 늙으면 수행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수행을 해 보니 늙으면 기력이 쇠해서 마음먹은 만큼 몸이 따라 주지 않더군요.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일념으로 정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재가자의 경우도 수행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생활 자체가 곧 수행입니다. 저도 한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한순간도 ‘이뭣고’를 놓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 화두가 잡혀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옛날 큰스님들이 편하면 공부가 안 된다고 했듯이 일상 생활이 바로 경계입니다. 그 경계가 있기에 화두를 더 성성하게 잡을 수 있습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라는 유명한 법어를 여러분들 잘 아시지 않습니까. 문제는 바로 실천입니다. 아무리 세상사를 많이 알고 부처님 법을 많이 배웠다고 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 합니다. 그러니 젊었을 때 발심을 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십시오.

수행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나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정해 놓고 참선을 해 보십시오. 보통 내가 6시에 기상한다면 내일부터는 5시 50분에 기상하세요. 10분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10분 더 길어지는 것입니다. 늘어난 10분동안 매일 참선을 해 보세요. 인생전체를 놓고 보았을때 엄청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침 6시부터 5분간 참선을 한다고 칩시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 저녁에 조금 일찍 잠을 청해야 하고 곡차도 덜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생활 속에서 약간의 변화가 나타날 것이며 결국에는 그 작은 변화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 정진을 계속해 가다보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주인공이 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배움이 조금 모자라도 뒤돌아보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쥬리반트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하도 어리석어 제대로 배우지를 못하자 부처님께서 너는 쓸고 닦는 일만 생각하고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은 쥬리반트카를 손가락질 했지만 매일 쓸고 닦던 어느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수행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입니다. 몇 생을 걸고 하는 것이지 이 한생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급한 마음 가지지 말고 매일 매일 규칙적인 생활과 반복을 통해서 몸에 습을 들이고 평생을 정진해 나간다면 누구나 성불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세요.
정리=김두식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김두식 기자 | doobi@buddhapia.com
2006-06-27 오전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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