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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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음으로 사물을 보라
혜거 스님에게 듣는 '유식삼십송'
유식(唯識). 초심자는 물론이고 불교를 웬만큼 공부한 불자라 하더라도 ‘유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흔든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사실 불교학 가운데 ‘유식’ 만큼 어려운 분야도 없다. 특히 유식학의 요체인 <유식삼십송>은 명쾌한 해설 없이는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혜거 스님(금강선원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혜거 스님이 <유식삼십송> 강의를 하고 있다


조계종 교육원의 서울불교전문강당 졸업생들의 모임인 ‘경전 연구회’가 6월 9일 서울 대승암에서 혜거 스님을 초청해 <유식삼십송>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유식삼십송>은 어떤 것이고, 그 내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유식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혜거 스님의 강의 내용과 인터뷰 내용을 종합해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유식삼십송>은 무엇인가?

<유식삼십송>은 유식학의 모체다. 무착보살이 뼈대를 세우고 세친이 완성했으며, 이것을 해석한 것이 <성유식론(成唯識論)>이다. <성유식론>의 분량은 방대하다. <유식삼십송>은 5언4구로 된 30개 송으로 간단한 내용이지만, 여기에는 유식학의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

세상이 생겨나면서부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은 주재자(主宰者)가 있는지, 또 주재자가 누구인지였다. 부처님께서는 주재자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으며, 그것은 바로 ‘나’라고 하셨다. 나를 잊게 하거나 또는 나를 유지시키는 실체는 바로 마음인데, 그 마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의 주재자는 마음이며, 그 마음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불생불멸하는 절대 마음이자 근본마음, 인간의 모든 업이 저장돼 심왕(心王)이 있는데, 이것을 제8식(識) ‘아뢰야식’이라고 한다. 둘째는 인간 생멸에 가장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마음이 있는데, 이렇게 잠재된 의식을 제7식(識) ‘말라식’이라고 한다. 셋째는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으로부터 나오는 마음 즉, 바깥경계를 사유하고 분별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을 제6식(識)이라고 한다. 마음은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것을 ‘3식’이라고 한다. ‘나’의 모든 주체는 오로지 이 3식 뿐인데, 그 이치를 밝힌 것이 바로 <유식삼십송>이다.


생활 속에서 <유식삼심송>을 어떻게 응용하고 공부할 수 있는 것인지?

마음은 실체는 본래 아무 것도 없는 자리인데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쌓여서 내 마음이 된다. 즉, 경험과 지식이 ‘마음화’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지금까지 체험하고 배웠던 것, 내가 쌓았던 관념과 지식을 빼고 빈 자리 그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만물을 천차만별로 보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어떤 관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관념을 모두 버리고 보면 똑같이 보일 것이다. 상황인식이 서로 같지 않은 이유는 자기의 관념대로 본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제대로 보게 되면 삶이 달라진다.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삶은 온전치 못하며, 행복과 불행도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유식은 이렇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생활과 밀접한 것이다. 우리는 제6식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어차피 사는 삶이라면 7식도 쓰고 8식도 쓰자고 작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발심이요, 수행자의 자세다.


유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요건이 있다면?

유식을 이해하려면 교학적 토대도 중요하지만 실참수행을 병행해야 한다. 그 이유는 심소(心所ㆍ마음자리 또는 마음 씀씀이) 때문에 그렇다. 사물을 분별하는 의식이 있는데, 수행한 사람의 의식과 수행하지 않은 사람의 의식에는 차이가 있다. 수행하지 않은 사람의 의식은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대부분 잊어버린다. 수행을 하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잊지 않는다. 수행한 사람과 수행하지 않은 사람의 의식은 이렇게 다르다. 수행을 하면 사물을 분별하는 능력이 달라진다.

제7 말라식이라는 것은 잠재의식, 예지력을 말하는데, 이것은 오관(五官, 눈입코피부귀)에 가려 쉽게 드러나지 않으며, 수행을 통해서만 드러낼 수 있다. 다시 말해 누구나 예지력이 있는데 이것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수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것을 꺼내 쓸 수 있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 바로 유식이다. 유식은 이렇게 실참수행을 독려하는 경전이며, 수행은 오관을 잠재우는 훈련이다.


유식을 보다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팔만대장경은 모두 유식을 가르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강경>에서 갖가지 상(相)을 없애라고 하는데, 이것은 관념과 선입견을 벗으라는 가르침이다. <화엄경>의 첫마디는 ‘일체유심조’다. 이처럼 모든 경전들이 마음 가르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경전을 보면서도 이런 가르침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무착보살이 그것을 꺼내서 ‘이것이다’ 하고 드러낸 것이 유식이다.

모든 불자들은 경전을 볼 때에 마음 다스리는 법, 마음 조절하는 법이 경(經)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경을 볼 때마다 마음이 바뀐다. 이 개념을 안가지고 보기 때문에 경 따로, 마음 따로인 것이다. 유식은 이론적으로는 어렵지만 경을 읽을 때부터 인식하고 공부하면 어렵지 않다.

유식을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방법과 수행적 측면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바람직한 것은 둘 다 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어렵다면 수행적 측면에서의 유식을 하는 것이 낫다. 유식을 공부하는 이유는 수행을 위해서다. 수행을 하면서 유식을 이해하게 되면 저절로 궁금한 것이 생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학문적 탐구로 이어질 것이다.



한명우 기자 | mwhan@buddhapia.com
2006-06-16 오전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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