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의 인연을 질문하는 기자에게 오아시스 레코드 손진석(79) 사장은 되레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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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나 자식 등 가족 자랑이나 늘어놓는 모자란 사람”이라 대답하니 손진석 사장은 “국어사전에서는 그것만 나오는데 ‘팔불출’에 진리가 다 있다”는 답변이다.
“‘팔불출’의 뜻을 불교사전에서 찾으니까 더 깊어요. 뭐냐,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거불래(不去不來) 불일불이(不一不異) 부단불상(不斷不常)’ 이 여덟 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팔불출’ 이라는 겁니다. 이 여덟 가지가 바로 불교의 진리이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법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손진석 사장이 처음 불교를 만난 것은 사찰도 아니고 주변인들의 권유에서도 아니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음반회사를 하다보니 긴급조치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에 구속된 적이 있었어요. 몇 십 년 전이죠. 그때 7개월 20일 동안 감옥살이 하면서 불교서적들을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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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불서와의 만남은 여든을 눈앞에 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무실 곳곳에 손때 묻은 <육조단경> 등이 평소 그가 읽었던 자취를 남기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딱 나를 위한 것 같아요. 불교는 철학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이죠. 의문을 가지면 답을 줘요. 기복하라는 것이 아니잖아요. 기복은 안돼요.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알고 믿어야죠.”
책을 통해 불교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론적으로 알면 알수록 불교는 무궁무진한 재미를 안겨줬다. “어떤 일본인 책을 보니까 ‘불(佛)’은 곧 ‘마음(心)’이고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이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 ‘부처’라고 설명했습니다. 제가 찾던 것이 바로 이겁니다.”
경주에서 태어난 손진석 사장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수재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8회 졸업)한 손진석 사장은 과대표를 시작으로 단대학생회장, 총학생회장, 전국학생회장 등을 모두 휩쓸기도 했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탓에 고생도 많이 했다. 초ㆍ중교는 일본인 선생 밑에서 일본의 역사와 말을 배웠다. 내 나라 역사를 일본의 역사보다 모른다는 자책감도 있어 더욱 책을 열심히 봤다. 간도에 건너가서 학교를 다닌 시절도 있었다. 한때 부산에 기거하며 부산사범을 다니기도 했다. 여러 곳을 다녔어도 학업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영어 중국어 일본어 3개 국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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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라는 것이 말을 안 하면 다 잊어버려요. 그래서 단어라도 안 잊어버리려고 말 하는 중간 중간에 영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죠. 중국어는 새로 좀 공부하려고 했더니 온통 약어들이 많아져서 쉽지가 않더군요.”
손진석 사장의 나이를 잊은 학구열은 대단했다. 불교서적들도 한국어 일어 가리지 않고 읽는다. 기자와 만날 날도 찾아온 손님으로부터 <야마토(ヤマト) 어근사전> 등의 책 선물을 받고 눈길을 떼지를 못했다. 일본인이 썼다는 <대무량수경> 읽은 얘기를 하면서 손진석 사장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가득 채워진다.
그가 만들어낸 불교음반은 송춘희 찬불가를 비롯해 영인 스님 염불 시리즈, 박범훈 창작불교음악 시리즈, 영산회상곡, 참선 명상의 말씀, 이차돈의 하늘 등 다양하다. 얼마 전 오아시스 레코드는 불교계 봉사단체 무량회의 음반을 만들었다. 단순히 음반만 제작한 것이 아니다. 작곡을 맡은 이동훈 작곡가에게 불교음악에 대한 감각을 키워주기 위해 불교음반을 한 아름 안겨주고 교육도 시켰다. “새벽 6시에 출근하자마자 2~3시간 동안 무량회 음반을 계속 들었어요. 작품이 너무 좋아요. 불교가 음악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진석 사장의 사무실에는 동자승 그림이 걸려있다. “예전에 진관사에 가서 찻집을 들렸어요. 그런데 이 그림이 표구도 되지 않은 채 놓여 있더군요. 그림에 쓰인 문구가 너무 맘에 들어서 사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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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 직접 그림의 문구들을 가리키면서 일일이 설명해준다. 그림에는 ‘말이 화살 같이 나가는데 가볍게 나가는 것은 안 된다. 한번 사람 귀에 들어가면 힘이 있어도 빼내기 어렵다’는 문구가 써있었다. 손진석 사장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림에 쓰인 글을 읽는다.
이 그림이 간직한 인연은 이게 끝이 아니다. “나중에 범패하시는 범진 스님이 범패 녹음 때문에 사무실에 왔는데 당신 그림이라고 하더군요. 인연이 참 대단하죠?”
그가 전하는 불교 에피소드 하나. 화두를 처음 접했을 때의 이야기다. “한자로 ‘話頭’라고 쓰잖아요. 처음엔 책 서문을 말하는 건줄 알았어요. 화두에 대해 여기 저기 많이 물었는데 내 맘에 딱 떨어지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어요. 이후에 성철 스님 책을 보니까 ‘이뭣고’ ‘What is this’가 나오더군요. 성철 스님 책을 보면서 많이 배웠죠.”
손진석 사장은 불교TV의 강의는 빼놓지 않고 본다. 불교강의를 잘하면 스님이든 재가이든 메모해뒀다가 그들의 강의는 꼬박꼬박 챙겨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손진석 사장이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곳은 레코드 원료를 수입하던 무역회사였다. 이 곳과 거래하던 오아시스 레코드가 물건 값을 내지 못하는 바람에 무역회사에서 인수를 했고 그 때부터 오아시스는 손진석 사장의 몫이었다. 음반 계약을 위해 인도로 미국으로 영국으로 전 세계를 발아래 두고 열심히 뛰던 시절이었다.
“당시 영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영문학 전공에 미군부대 연락장교로 복무하면서 영어에 익숙해있던 저였습니다. 덕분에 EMI나 워너 쪽과 직접 계약해서 음반을 내기 시작했고 회사를 살려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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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부터 있던 레코드사중에서 남아있는 것 이제 오아시스 한 곳 뿐이다. 50년 동안 사장으로 이끌어온 오아시스는 민요나 창 등 인간문화재들의 음반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서정주 시인이 어느 글에서 ‘때 되면 오는 것이 죽음’이라고 했어요. 이제 철이 좀 든 것 같은데 철들자 죽을 때라더니 딱 그렇네요. 하하하”
손진석 사장은 ‘즐겁게 살자’주의자다. 짧은 인생 우거지상으로 살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잘 웃는다. “사전에 한 마디가 사후에 열 마디 보다 낫다”는 것을 늘 강조하는 손진석 사장의 경영철학은 ‘정직한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는 항상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이 세상 60억 인구 중에서 ‘나’는 오로지 하나 뿐입니다. 인간뿐이 아니에요. 모든 생물이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그 생물체 하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도 없으니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입니까.” 손진석 사장의 말은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