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잤다카이. 와그라는데.”
“스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던데요? 말해보이소!”
“….”
주황색 와이셔츠에 검정색 바지를 똑 같이 입은 경상도 사나이들이 옥신각신 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서울 조계사에 올라와 놓고, 정작 중요한 시간에 졸았던 것이 영 못마땅한 눈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 졸고 꿋꿋하게 들은 스님 법문을 알려주겠다며 금세 목소리를 높였다.
| ||||
5월 24일,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 한국운전기사불자연합회 대구지역회원 300여명이 서울 조계사로 ‘청법(聽法)’ 나들이를 왔다. 새벽 6시에 대구를 출발, 장장 4시간을 넘게 6대의 대형버스에 몸을 실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이들의 특별한 나들이는 비단 오늘뿐만 온 것이 아니었다. 전날 23일에는 230명이 왔다 갔고, 다음날에는 200여명이 청법 나들이에 나섰다.
“택시 3부제 땜시, 이렇게 세 차례 나눠 올라 왔지예. 우리 지역회원이 700명이 넘거든예. 회원 전부가 스님 말씀 들을라꼬 서울로 왔서예. 한번 보이소. 조계사 경내가 주황색 물결로 넘길대지 않능교?”
| ||||
대구운불련 회원 오철환(36)씨는 스스로 운전기사불자임을 뿌듯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회원이 단합된 모습을 보이면서 서울로 올라온 것 자체가 기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럼, 대구운불련은 왜 대단위로 뭉쳐 상경 길에 올랐을까?
“우리 운전기사불자들은 ‘달리는 법당, 거리의 포교사’가 아닌교? 운불련 회원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작은 법당의 ‘주지’라고 생각합니데이. 일 년에 한 번씩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가 스님들의 고귀한 말씀을 듣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닙니꼬. 매번 큰 스님의 가르침을 받는 생각에 설렘을 안고 절에 가고 있습니데이.”
| ||||
운불련 활동 3년차인 남형수(34ㆍ시헌)씨의 말에서 대구운불련이 서울 ‘청법’ 나들이에 나선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대구운불련은 지난 1986년 창립 이후, 1년 두 차례씩 전국의 조계종 교구본사, 삼보사찰, 오대 적멸보궁 등을 찾아 ‘청법’ 구도행을 해왔다. 그간 법을 청한 스님들만도 300여 분이 넘는다고 한다. 바쁜 일상생활에서 스님의 법문은 청량제와 같이 활력소가 된다고 회원들은 입을 모았다
“조계사 참배는 대구운불련에서는 처음이라예. 개인적으로 30년 전, 조계사에 왔었는데예, 지금 보니 억수로 변했네예. 그때는 조계사가 엄청 크게만 보였는데예…. 운전기사란 직업은예, 욕심내거나 잡생각을 내면, 곧바로 사고로 연결된데예. 매번 이렇게 절에 찾아가 스님 법문을 들으면, 그런 잡념이 말끔히 없어지지예.”
| ||||
운불련 회원 중 홍일점인 정부돌(53)씨의 말처럼, 운불련 회원들은 이번 청법 나들이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대구운불련 회원들은 오전 11시 30분부터 조계사를 1시간 넘게 둘러봤다. 삼삼오오 모여 향을 사르며 탑돌이를 하고, 범종루의 사물을 살펴봤다. 또 대웅전에서 108배를 올리기도 하고, 경내 나무 벤치에 앉아 법담을 나누기도 했다. 특히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둘러보는 운불련 회원들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묻어났다. 연신 조계사가 ‘한국불교의 심장’이란 말을 토해냈다.
| ||||
잠시 후, 회원들은 장소를 옮겨 역사기념관 공연장에서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장 진명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운불련 이경수(55ㆍ정도) 구도부 차장의 집전으로 청법가를 올렸다.
‘덕 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감로법을 주소서. 옛 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청법의 발원이 간절했다. 재가불자로서, 운전기사로서 스님에게 올리는 청법은 남달랐다. 그래서 일까? 회원들의 눈빛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법문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표정이었다.
“여러분들은 달리는 법당의 법주이시죠?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실어 날라야 제대로 싣는 걸까요? ‘인시복덕(人施福德)’이라 했습니다. 사람에게 베푸는 보시가 제일 큰 복덕이라는 뜻이지요. 운전기사불자님들은 사람을 실어 나르되, 그 분들에게 불법과 자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대장경’을 실어 나르는 우직한 소처럼, 끊임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리의 포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알겠지요?”
| ||||
50분간 진명 스님의 법문이 끝나자 회원들이 낯빛이 환해졌다. 운불련 5년차인 김규동(53ㆍ길명)씨는 ‘마음의 배’가 배부르다고 말했다.
“''우직한 소처럼 수행하라‘는 스님의 법문에 감명을 받았지예. 운전기사들은 하루 종일 차 안에서 생활하다보니, 늘 마음이 답답하지예. 이렇게 스님 법문을 듣고 나니,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될 것 같아 기쁘네예.”
회원들은 법회를 끝내고, 하나둘씩 조계사를 나와 대형버스에 올랐다. 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이 만행을 떠나왔다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본래 자리로 떠나기 위해서였다. 운불련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듯이 주황색 와이셔츠 운불련 ‘법복’을 입고서 말이다.
대구 운불련 신상용 회장은 “청법 구도행은 말 그대로 공부하려는 성지를 찾아 스님들에게 법을 듣는 신행활동”이라며 “앞으로도 회원들이 알찬 신행생활을 위해 청법 나들이를 계속 떠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