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광명으로 환한 도량이 바로 각황사에요. 그믐에도, 비가와도 환합니다. 장마가 져도 개울에 흙탕물이 아닌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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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가 좋은 까닭일까. 서울 인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맑은 물과 깨끗한 산자락을 20여분 걸어 도착한 각황사. 스님은 시원하게 들이키라면서 말간 물을 한 잔 내밀었다. 갈증이 나기도 해서 얼른 마신 물은 차지도 않았고 달콤한 맛이 났다. 스님은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마신다고 했다.
“내 건강 비결이여, 물이 좋으니 밥을 지어도 맛있고 차를 달여도 맛있지. 내가 40여년을 한결같이 여기 물을 마셨지만 한번도 탈 난 적이 없어요.” 각황사의 달콤한 약수는 스님의 건강 비결 가운데 하나였다.
새벽 2시에 시작되는 스님의 하루 일과는 어떤지 물었다. “<화엄경> 등 경전을 읽다가, 참선도 하다가,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잠자고, 심심하면 산 한바퀴 돌고 합니다. 방선이 바로 그거에요.”
이번에는 스님의 건강이 궁금했다. 기자가 허덕이며 올라간 20분 거리 산자락을 스님은 밤에도 손전등도 없이 오른다고 했다. 쉬엄쉬엄 경전을 읽으면서 안경을 쓸 때도 있고 안 쓸 때도 있었다. 그만큼 시력도 좋아 보였다.
“나이 70이 넘도록 병원 다닐 일도 없고 약 먹을 일도 없으니 얼마나 건강한 것이냐”며 스님은 환하게 웃음 지었다.
건강관리를 묻자 대뜸 직지사에 있을 때 일화를 들려준다. “직지사에 있을 때에는 후원에서 강주 스님은 잡숫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항상 얘기들을 했어요. 난 한 가지만 먹어요. 그날 밥상을 보고 김치를 먹어야 겠다면 김치 한가지로 밥을 먹고, 된장만 먹어야겠다 하면 된장국만 먹습니다.” 스님의 소식(小食)은 바로 스님의 건강으로 이어졌다. 건강관리의 비결은 다른 특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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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음식은 좋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파 마늘 없고 비린 것이 없으면 잘 먹어요”라고 덧붙인다. 김 두부 된장국을 좋아하시는 스님. 스님의 밥상은 소채로 소박하게 차려져 있었다.
스님을 만난 첫 인상은 천진불 그 자체였다. 스님의 웃는 모습은 ‘아름다움’이상으로 그 모습을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할 정도다. 스님의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은 웃음의 흔적이요, 환희의 흔적이다. 주름 하나하나에도 웃음의 자국만이 남아있다.
스님이 자주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님은 낙행(樂行)주의자다. “항상 웃음을 많이 가지고 살아요. 즐거우니까 웃는 겁니다.” 기자와 마주하는 시간 내내 스님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스님은 당신의 낙행을 부처님이 견성성불하기 위해 했던 수행법이라고 설명한다. “부처님이 설산에서 고행 6년을 했다는 것은 알아도 낙행 6년 한 것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싯달태자는 고행 6년은 잘못된 것이라고 해서 하산을 한거에요. 고행이 도 닦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스님이 말하는 낙행은 바로 부처님이 수행했던 여래선이다. “보살의 단계를 살펴보면 초지가 환희지에요. 환희에서 시작해 성불의 견지까지 가는 것이죠. 여래선으로 선정에 드신 부처님은 환희지에서부터 즉 즐거움에서부터 삼매에 빠져들어 성불의 경지에 오르신 것입니다.” 여래선 얘기가 나오자 스님의 목소리 톤부터 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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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니까 부처님께서 6년의 세월을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드셔서 한 자리에 머무실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그래서 스님은 여래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괴로우면 수행이 되지 않는다는 스님은 그래서 더 웃고 더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님은 몇 년 전 직지사 강원에서 학장을 그만두고 올라왔다. 서른 되던 해에 부처님 광명이 머무는 땅이라는 불광동 지명이 좋아 지었던 사찰 각황사는 좁아서 책을 둘 곳이 마땅찮았다. 그래서 고향인 경기도 안성에 터를 잡아 서재 삼아 꾸민 곳이 미륵당이다.
수 만권에 이르는 스님의 책들은 미륵당에 있다. “미륵당은 편히 쉬는 내 서재에요. 자심난야(慈心蘭若)라 이름지었죠.” 미륵당에는 한국 유불선 삼교의 책 수 만권으로 가득 차 있다. 스님은 동양 사상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유교경전들도 다 갖춰놓고 수시로 읽는다.
미륵당 입구에는 ‘입차문례 막존지혜’(이 문에 들어와서는 알려하고 해석하려 하지 마라)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뜻과 달리 문에 들어서면 책이 잔뜩 쌓여있어서 이 뜻하고는 조금 어긋나죠.”
요즘 스님은 너무 바쁘다. 여기 저기 법문을 청하는 곳이 많아서다. 전국 각지 불러주는 곳에는 모두 발걸음 한다.법문 요청이 많은 주에는 일주일에 3~4번 정도를 법문하러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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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각지를 다니는 스님의 가슴에 가장 많이 남는 사찰은 어딜까. “욕심만 버리면 다 극락세계에요”라는 스님의 대답에 갸우뚱했다. 어느 절이든 다 좋다는 스님은 정작 절 구경은 많이 안다니는 편이라고 한다. 단풍이 아름답다는 내장사도 안 가봤고 백양사는 일이 있어서 들리기는 했지만 그나마 밤이어서 풍경을 볼 틈이 없었다고. 경치 좋다는 설악산도 안 가봤다는 스님이다. 가 본 절 중에는 의정부 소요산 자재암이 가장 좋았다고 스님은 말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요청하니 스님은 옷을 챙겨 입기보다 당장 불진(拂塵)을 들고 나오신다. “평소에도 불진을 자주 들고 계시냐”는 질문에 산책 나갈 때마다 들고 다닌다는 답변이 나온다. “사실 이 근처에 파리가 많아요. 그래서 불진으로 휘휘 휘두르면서 파리나 쫓지.” 천연덕스러운 스님의 말투에 절 마당에 있던 신도들과 웃음꽃이 한바탕 피어오른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밤 9시가 되면 의룡 스님의 하루는 끝이 난다. 발 뻗으면 다 차는 조그마한 방에서 스님은 5시간 남짓 자는 것도 길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가끔 스님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어기는 날이 있다. 고전 프로그램 특히 사극을 좋아하시는 스님이 요즘은 MBC 드라마 ‘신돈’을 보기 때문이다. 스님은 신돈을 요승이라고만 보지 않는다. 고려말 개혁 의지를 불살랐던 그를 오히려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불 꺼진 스님 방을 뒤로 해도 여전히 각황사는 환했다. 예전에는 각황사까지 가는 길이 없었다고 한다. 스님이 절을 지을 때만 해도 계곡을 따라 바위를 밟으며 발이 젖도록 다녀야만 했다. 길도 없이 다니던 곳에 스님은 절을 짓자마자 오솔길을 만들었다. 스님이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내리며 다지고 또 다진 길이다.
“차를 타고 들어가는 것보다 오솔길로 들어오는 것을 좋아해요. 개울로 다니던 것을 이 절을 지은 후 다음 해에 오솔길을 냈어요. 울도 담도 없으니까 전체 계곡이 다 각황사 도량이에요. 얼마나 좋습니까?”
각황사에 오를 때는 그 길이 스님이 닦은 길이라는 것을 몰라 그저 아름다운 풍광에만 감탄했었다. 사실을 알고 난 후 내려오던 길은, 스님이 40년 전 만들었다는 그 길은 마치 극락세계를 다녀오는 길인 듯 감동스러웠다. 다시 뒤돌아본 길 끝에서 뵌 스님의 모습에서 참 수행자의 얼굴을 엿보는 것 같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심이 절로 나는 하루였다.
"육바라밀 지키고 있습니까?"
의룡 스님 법문
저는 화두선이 아니라 여래선을 합니다. 여래선은 호흡으로 하는 겁니다. 들이쉬고 내쉬고 하면서 호흡 속에 선정에 드는 것인데요. 들이쉬고 1부터 6까지 세면 숨이 머리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흡상승(吸上昇)인데요. 들이마셔서 정수리까지 올리는 것입니다. 내쉬는 것도 여섯까지 세면서 단전으로 서서히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륜을 굴리는 것입니다. 호흡을 들이마실 때 정수리 위로 올리고 내쉴 때 단전까지 내려가게 할 때 숨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따라 다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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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법륜이 구르는 것을 따라 다니면 아무 잡념이 없어집니다. 무아의 경지에 들게 되면 이 호흡만으로 몸에서 땀이 나게 됩니다. 무아의 경지에 들면 즐거워요. 즐거운 곳에 머물며 좋은 것만 보게 됩니다.
법륜을 돌리는 속도는 몸의 느낌에 따라서 천천히도 하고 빨리도 해야 합니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물 기운이 올라가는 것이고 내쉬는 것은 불기운이 내려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륜을 돌리면 단전이 훈훈하면서 온몸이 따뜻해지고 땀이 촉촉하게 납니다. 이때 선정에 드는 것이지요. 물기운과 불기운이 조화를 이룰 때 따뜻하게 되는 것이죠.
밥 짓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겁니다. 단전을 솥으로 봐도 됩니다. 하단전은 불 때는 아궁이로 보고, 중단전은 솥으로, 상단전은 시루로 봐도 됩니다.
물이 적당히 있어서 도수에 맞게 끓을 적에 시루에 있는 떡이고 밥이 익는 거잖아요. 물이 적으면 탈 수도 있고 설익을 수도 있습니다. 불과 물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이것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불이 모자라면 풀무질 하듯 호흡을 하고 불이 너무 강하면 불기운을 줄이기 위해 호흡을 해야 하죠. 참선하고 있는 당사자가 기술적으로 조정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온통 화두선만 압니다. 저는 화두선이 나왔기 때문에 도 닦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생각해요. 화두선은 38대 앙산 스님이 제창한 것으로 조사선입니다. 그 전까지 가섭존자 달마대사 육조스님 다 여래선으로 수행하셨어요.
근데 앙산 스님이 화두선을 제창했죠. ‘이뭣고’ 쉽잖아요. 한 제자가 부처님이 무엇이냐 물으니 조사가 마른 똥막대기가 부처라 대답했어요. 그 대답을 들은 제자는 왜 마른 똥막대기가 부처인가 하고 의심을 하는 거죠.
초등학교부터 숙제를 받자나요. 숙제를 알았다고 해서 도가 통하는 건가요? 숙제를 풀었다 해도 그 숙제만 아는 거지 도를 통한 것은 아닙니다. 의심이 해결됐다고 해서 성불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방에 있는 분들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숙제를 푸는 것에 불과한 것이에요. 그것만으로는 성불이 안 되는 것이죠. 저는 화두를 그렇게 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온 이래 모든 사람은 불성이 있다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성불한 사람이 없나요? 성불할 수 있는 복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성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불할 수 있는 복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원만성취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육바라밀은 바로 보살행입니다. 부처님은 무수한 보살행을 해서 부처님이 됐다는 말이 경전에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육바라밀행을 원만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불한 사람이 안나오고 있는 겁니다. 이생에서 못하면 내생에서 평생 또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 죽어도 육바라밀을 원만하게 성취할 때까지 태어나서 보살행을 닦아야합니다. 그래야만 성불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생에서 성불해야겠다 하고 조급하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세세생생 무량한 세상을 두고 육바라밀을 계속 실천하다 보면 그 무량공덕이 하늘과 땅을 뒤덮을 정도로 쌓여야 성불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참선만 하면서 성불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조금 앉아서 참선하면 성불한다고 욕심 부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계율을 지키고 보시 정진 인욕 선정 등 육바라밀이 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난 참선만 하네 하면서 아만 떨면 안 됩니다.
보시는 왜 하는 것입니까. 욕심을 버리는 것이 바로 보시에요. 육바라밀의 가장 첫 번째가 보시에요. 지계는 계율 지키는 것입니다. 계율은 악한 행동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지요. 인욕은 남이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참아야 하고 괴로움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인욕이지요.
정진은 게으른 행동을 없애는 것입니다. 게으름을 다스리는 것이 정진이에요.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죠. 선정은 산란한 혼란한 생각을 다스리고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참선은 망상심을, 혼란한 생각을 없애기 위해 하는 것이죠. 지혜는 어리석은 것을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어리석은 것을 없애면 지혜가 되는 것이에요.
육바라밀을 지키고 실천하면 복을 키우고 지혜를 계발하는 것이 됩니다. 무량한 세상을 두고 그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복이 더 커지고 지혜도 커져서 복과 지혜가 완전히 구족해야 성불할 수 있는 거라고 경전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을 보면서 정리한 거죠.
저는 법문을 할 때마다 항상 삼업(三業)을 청정히 해야 복을 지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몸이, 뜻이 청정할 때 복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육바라밀을 지키는 것이 몸과 뜻을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산을 올라가는 데는 다리가 제일 좋습니다. 택시나 차가 필요 없어요. 다리로 일 보 일 보 올라가다보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 있는 겁니다. 물을 건너는 데는 배만한 게 없습니다.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물을 건너자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장난이거든요.
지혜라는 것은 별 것 아닙니다. 물을 건너갈 때는 배를 이용하고 산을 올라가려면 다리 이용하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모래를 시루에 담고 떡이나 밥을 지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모래를 시루에 담고 불을 때는 행동을 합니다. 이런 걸 버려야 해요. 안될 것을 평생하면 시간과 노력이 손해에요.
무념무상에서 도가 통하는 것입니다. 무심이 최고의 선이라고 말한 조사들도 있습니다. 무심한 경지는 바로 선정 삼매에 드는 것입니다. 삼매에 들지 않으면 극락도 부처님국토도 어딘지 알 수가 없어요.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아야 본래면목(진리)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 성품자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도 육바라밀을 닦아 선악이 없는 경지에 올라 공덕을 원만 성취하셔서 성불의 밑거름을 닦으세요.
의룡 스님 약력
의룡(義龍) 스님은 193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6살에 용꿈을 꾸고 용주사를 찾아가 출가해 14살에 일해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탄허ㆍ관응 스님에게 교학을 배운 스님은 35세 되던 해에 ‘한영-명봉 스님’의 강맥을 이어 받았다. 일생을 제방 강원의 강사로 살아온 스님은 2002년 직지사 강주를 끝으로 강단에서 물러났다.
30세 되던 해에 창건한 각황사에서 홀로 수행정진 했던 스님은 직지사 강주에서 물러난 후 각황사를 맏상좌에게 넘겨줬다. 2년 전 고향인 안성 미륵당에 평소 읽던 경전과 불서 수 만권을 모아 ‘자심난야’를 꾸며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