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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서울 서대문구 훈민약국 박란희 약사(48ㆍ법성도)는 약국 생활 24년에서 불교가 ‘마냥’ 재밌고, ‘그냥’ 좋았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점심시간조차도 꼼짝없이 약국을 지켜야했지만 답답함을 느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처방전을 들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얼굴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대충 짐작이 가지요. 감히 ‘중생의 아픔을 쓰다듬어주시는 약사여래 부처님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어떻게 약국생활이 지루할 수 있겠어요?”
박 약사의 행동반경은 온전히 약국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불자약사로서 시선은 언제나 밖으로 돌려져 있다. 4년 동안 해온 무료투약 봉사활동이 바로 그것. 불자약사보리회 약사불자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서울역과 종묘를 누볐다. 거리에 쏟아진 실직자와 노숙자, 오갈 데 없는 노인들에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종교상담, 건강 체크, 수지침, 문진도 병행했다.
하지만 박 약사에게도 일에서 겪는 갈등은 있었다. 약사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던 박 약사는 ‘내가 어디가 아프니, 이 약 달라’며 일방적으로 약을 주문하는 손님의 태도에 깊은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그래도 내가 약사인데….’ 도저히 용납도 이해도 할 수 없었다.
“그만 두고 싶었지요. 환자의 병세에 맞게 약을 지어주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실망감에 밤잠을 설쳤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부처님 말씀이 툭 떠올랐어요.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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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로서 가졌던 자만심. 결국 문제는 환자 중심의 약을 짓지 않았던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은 박 약사는 곧장 마음을 고쳐먹었다. 환자 스스로 몸을 아끼는 그 절박한 마음을 그대로 헤아리면서 높고 크기만 했던 아상을 조금씩 녹여냈다. 13년째 하루도 빼놓지 않고 30분씩 올리는 약국에서의 아침예불을 통해서였다.
“약국은 불상만 없지 제겐 법당이나 다름없죠. 천수경 한 번 읽고, ‘옴마니반메훔’ 진언을 10분간 염송하고…. 또 수시로 찾아드는 손님들을 통해 수행에서 겪는 경계들도 만나게 되고요.”
박 약사의 말마따나 약국은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고 나갔다. 수많은 손님들과 박 약사 사이에서 오가는 말과 행동에 거슬림이 없다. 부딪침 없이 물 흐르듯 조제상담은 이어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박 약사는 손님이 원하는 마음 그대로를 읽어냈다. 20년 넘게 불자약사로서 그랬던 것처럼, 박 약사의 낯빛은 편안한 마음자리를 내어 보이는 약사보살의 얼굴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