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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틈도 났다. 하지만 그것도 그 때뿐. 최근 법우회에 들어온 신입회원 10명의 인적사항을 꼼꼼히 신행수첩에 메모했다. 새로 법우회 식구가 된 젊은 기관사 불자들에게 신행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1995년 법우회 창립을 주도 한 뒤, 회장직만 내리 4번을 한 베테랑 일터불자의 관록과 배려가 읽혀졌다.
철도공사 성북승무사무소 법우회장 박우락 기관사(58ㆍ혜능). 철로를 일터 삼아 온 지 34년째인 박 기관사는 오늘도 인천행 새벽 6시 17분 전동차를 어김없이 안전왕복운행하고, 오전 내내 ‘일터도량’ 안팎을 살뜰히 챙겼다.
“선원 어른스님들이 선방 대중들의 수행정진을 위해 경책도 하고 독려도 하잖아요? 또 스님들은 그런 선방 분위기에서 화두를 치열하게 들고 정진도 하지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회장으로서 법우회원들이 일터를 도량 삼아 신나게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을 뿐이지요.”
박 기관사의 웃는 낯빛에서 깊은 자비심이 묻어났다. 그래서 일까? 박 기관사는 40여 명 법우회원들은 물론 동료들에게 ‘너털 도사’로 통한다. 웬만한 일에 화를 내지 않는 특유의 낙천적인 성품 때문이다. 주변에서 뭐라 하며 비난해도 웃어버린다. 좋든 싫든 단 한 순간도 머릿속에 오래 담아두는 법이 없다. 그대로 흘려보낸다. 방하착이다.
“기관사 업무가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엄청나죠. 수시로 무전연락하고, 신호 받으며 안전사고를 경계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동료 기관사들이 늘 긴장상태에 있으니 민감하지 않겠어요? 전 다 받아줘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두 번 외고 들어주고 이해해주지요. 하하!”
그런 박 기관사에게도 일터에 겪는 고충은 있었다. 기관사 초창기 시절, 심야 화물열차를 운전할 때면 그만 두고 싶은 충동에 하루하루를 지냈다. 또 기관사라면 달고 사는 허리디스크와 위장병으로 철도 인생을 접고도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 마음 같은 불교가 박 기관사의 지친 심신을 돌려놓았다. 30년 넘게 읽어온 <반야심경>과 닳고 닳은 염주가 힘이 됐다.
“불교는 생활이죠. 일터신행이 이를 증명하지 않습니까? 따로 시간 내어 믿고, 배우는 것이 불교도 신행도 아닐 겁니다. 그대로 일터에서 실천하는 불교가 100% 생활불교이지 않나요. 불교는 제 삶이고, 기관사는 그 삶의 방향타가 된 것처럼 말이에요.”
박 기관사는 올 6월 30일 정년퇴직한다. 지금까지 달려온 80만KM의 철도인생을 정리한다. 평생 기관사로만 남을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해왔다는 박 기관사. 지하철 1호선 성북역 용산행 전동차 기관실에 몸을 실은 박 기관사는 그렇게 살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불교였다면서 플랫폼에서 전동차를 끌고 30년 넘게 그랬던 것처럼 늦은 오후, 철로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