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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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할 도리 다 하면 족하지"
[큰스님 편안하십니까]혜인 스님(단양 광덕사 회주)
5월 9일 울산 연화사 호계불교대학 법당. 법상에 오른 단양 광덕사 회주 혜인 스님이 법문이 이어지면서 불자들의 감탄사와 웃음도 계속된다. 법회라기보다는 편안한 대화마당 같다.

유쾌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불자들에게 꼭 필요한 생활법문으로 유명한 혜인 스님. 자신의 제자든 아니든 간에 후학들에게는 한없는 애정을 쏟아 붇는 혜인 스님.

혜인 스님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다. 혜인 스님은 사람이 저마다의 도리를 다할 때 자기를 바로 볼 수 있고 이것이 성불의 밑거름이라고 강조했다.


혜인 스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출ㆍ재가를 막론하고 소극적인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동체대비의 보살정신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 따라서 불교를 쉽게 이해시키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혜인 스님의 소신이다. 그런 스님이 문자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생활법문에 치중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원효대사와 이차돈을 좋아합니다. 두 분 다 불교와 국가를 위해 신명을 바치셨습니다. 특히 화해와 용서를 강조하는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은 이 시대에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큰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문자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돼야 합니다.”

혜인 스님이 존경하는 분은 또 있다. 바로 자장율사와 은사인 일타 스님이다. 자장율사는 철두철미하게 계율을 지킴으로써 스님으로서 가져야 할 본래면목을 보여주신 분이고, 일타 스님은 무한한 자비와 용서로 사람의 심성을 순수하게 만드셨다고 한다. 후학들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시는 이유는 바로 존경하는 스님들과 은사 스님의 그런 가르침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늘 별다른 말씀을 하시지는 않으시면서 그저 빙그레 웃으세요. 하지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또 얼마나 아껴주시는지 느낄 수 있지요. 원력은 크신데 욕심도 없으시고, 불자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시죠. 수행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은사 스님은 아니지만 그런 스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연화사 호계불교대학 주지 덕륜 스님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좌 스님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단양 광덕사에서 울산 연화사까지는 적어도 4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다. 하지만 이 먼 길도 벌써 3번째다. 작년 9월 개원한 연화사가 훌륭한 강사진을 갖추고 불교대학을 열면서 도심포교에 나서자 어떻게든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혜인 스님은 한 달에 보름 정도는 전국 곳곳을 다니시며 초청법문을 하신다. 스님을 모시려는 곳은 국내 사찰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비행기를 2천 번도 넘게 타셨다고 한다. 미국, 뉴질랜드, 브라질, 캐나다, 일본 등 안 다니신 곳이 없다. 부처님오신날 직전에는 홍콩 초청법회에 다녀왔다.

하지만 이렇게 다니시면서도 결코 거르지 않는 것이 있다. 하루를 108배 참회발원으로 여는 일이다. 그리고 은사 스님께 올리는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은사 스님이 입적하신지 7년째지만 지금까지 단 하루도 인사를 올리지 않은 날이 없다. 연화사 법회 후 곧바로 은해사에 온 다음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혜인 스님이 울산 연화사 호계불교대학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


“그건 출가자로서, 또 제자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것저것에 얽매이지는 않아요. 잠이 오면 자고, 잠이 안 오면 밤늦게까지 참선을 하거나 경을 읽기도 해요. 글씨도 쓰지요. 지루하다 싶으면 도량 일도 하고, 기도하고 싶을 땐 며칠씩 기도도 하고….”
물 흐르듯이, 하지만 결코 게으른 법이 없는 혜인 스님의 일상.
“며칠 후부터는 묵언을 할 겁니다. 3개월 정도요. 내가 수행이 부족해서 내세울 게 없어요. 기자님도 한 번 해보세요. 묵언을 하면 자신이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기분을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이 부족하다 하시지만 혜인 스님의 하루하루는 수행의 연속이다. 부족하다는 느낌이 없다면 어찌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으며, 어찌 부처를 이룰 수 있겠는가. 혜인 스님은 만나는 누구에게든 이렇게 화두 하나를 툭 던지신다. 정작 자신은 밑으로 내려놓으시면서.

연화사에서의 법문 내용 중 <천수경>을 독송 시 얻게 되는 15가지 나쁜 것과 15가지 좋은 인연에 대해 다시 여쭈었더니 바랑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보이신다. 노트에는 이 내용 외에 단양 광덕사에 건립 중인 100만 불전 상량문을 직접 쓴 것과 지난해 열반한 前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100재 때 지은 추모사, 부모은중경의 일부분 등 여러 가지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필요하거나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메모해두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내 본분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지요. 사람은 사람다워야 합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마음까지도 다른 사람에게 슬픔이나 분노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행복하려면 남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고, 내가 무시 받지 않으려면 남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존경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사람의 도리입니다. 도리를 다 한다는 것은 자기 주인공을 바로 보는 일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견성성불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견성성불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찾는 일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저마다 도리를 다 한다면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혜인 스님이 바랑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메모 노트


멀리 법문을 다니실 때도 자가용이 없어 택시나 버스를 이용하신다는 혜인 스님은 “연세도 있으시니 자가용을 구입하셔야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빙그레 웃으시며 은해사 단루각 앞 꽃밭에 앉으신다. 비 온 뒤 물기를 머금은 꽃들이 싱그럽다. 꽃을 몹시도 좋아한다는 혜인 스님.

“우리 보살들 비 맞고 추웠겠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잘도 사시네.”

혜인 스님은 꽃을 보살이라 했다. 한 자리에서 세상을 모두 다 받아들이고 있는 꽃. 오늘 은해사 단루각 꽃밭에 새 꽃이 피었다.


혜인 스님은?

1943년 남제주에서 출생한 혜인 스님은 15살 때 일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6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다. 동화사 금당선원 등지에서 10안거를 성만했으며, 1970~1971년 해인사 장경각에서 100만배 기도를 회향했다.
약천사를 중창해 제주도를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매김시켰고, 현재 단양 광덕사에서 64만평 규모의 세계일화도량 건립불사를 진행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큰 원력과 강한 추진력을 가진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혜인 스님의 가르침

세상 사람들 모두 돈 돈 합니다. 행복의 척도를 돈으로 생각하고 돈을 벌려고 안달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진짜 벌려고 애써야 할 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돈 보다도 더 요물단지입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재물보다 더한 복덩이가 되기도 하고 재물보다 더한 독이 되기도 합니다. 말도 다르지 않습니다. 복 짓는 말을 하는 것과 악업을 짓는 말을 하는 것과 어떻게 같겠습니까. 몸과 마음과 행동을 항상 복 짓는 쪽으로 쓴다면 얻고 싶은 것을 다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하고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앞길의 스승으로 삼고, 자나 깨나 공부하는 마음으로 절에 오든 집에 있든 물 흐르듯이 끊임없이 기도하며 정진하면 얻지 못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늘 인자한 웃음을 잃지 않는 혜인 스님


이렇게 생활 속에서 정진하는 데는 <천수경>만한 가르침도 없습니다. 그런데 <천수경>의 뜻을 모르는 불자들이 많습니다. <천수경>은 일천천(千) 손수(手) 자를 쓰는데, 즉 천개의 손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대부분의 활동을 손으로 합니다. 밥 먹고 물건 만들고 다 손으로 하지요. 그런데 손 하나로는 제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요. 이처럼 관세음보살이 천 개의 손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경이라고 해서 <천수경>입니다. <천수경>은 <천수천안비경>을 줄인 말입니다. 손이 천 개요, 눈이 천 개요, 팔이 천 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천 개는 꼭 천 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 개도 되고 그 이상도 됩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눈과 팔과 손으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이 경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천수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한다는 것은 곧 관세음보살의 원력대로 살겠다는 것이니, 그 공덕은 무한할 수밖에 없지요.

욕심 많고, 남의 것을 탐하며, 다른 사람을 헐뜯는 사람들은 항상 배가 고플 수밖에 없습니다. 이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절에 가면 ‘천수(千手)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발우를 씻은 물을 받아 방 복판에 놓고 바로 그 위 천정 위에 천수다라니를 써서 붙입니다. 그러면 물동이에 글씨가 비치는데, 이 물을 바로 천수물이라고 합니다. 이 물을 욕심 많은 이에게 주면 오장육부가 시원해진다고 합니다. 천수다라니는 그렇게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천수경>을 수지독송하면 15가지 나쁜 것을 막아주고, 15가지 좋은 것을 가져다주는 공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15가지 나쁜 것은 굶주리거나 괴로움에 시달려 죽지 않으며, 죄인이 되어 결박을 당하거나 형벌로 죽지 않으며, 원수 맺은 이에게 보복당하여 죽지 않으며, 전쟁터에서 싸움으로 죽지 않으며, 호랑이나 악한 짐승에게 물려 죽지 않으며, 독사나 지네 등 독한 곤충에게 물려죽지 않으며, 물이나 불의 재앙에 죽지 않으며, 독한 약을 먹어 죽지 않으며, 뱃속에 있는 독충독물에 죽지 않으며, 미치거나 실성하여 죽지 않으며, 산이나 나무에서 떨어져 죽지 않으며, 나쁜 사람에게 홀려 죽지 않으며, 나쁜 귀신이나 삿된 귀신에 시달려 죽지 않으며, 나쁜 병에 걸려 죽지 않으며, 자살하거나 일체 비명횡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5가지 좋은 인연은 가는 곳마다 어진 임금을 만나게 되고, 평화롭고 좋은 나라에 태어나며, 항상 좋은 시절을 만나고, 항상 좋은 벗을 만나게 되며, 몸에 모든 기관이 구족하고 건강하고, 심신과 도심(道心)이 발하게 되고, 계율을 갖추어 어기지 않으며, 가정과 권속이 항상 화순하고, 재물과 음식이 항상 풍족하며,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공경을 받게 되고, 재물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뜻대로 구하는 바가 다 이뤄지고, 용과 하늘과 선신이 항상 보호하며, 태어나는 곳마다 부처님을 뵈옵고 법문을 듣게 되고, 불법이 깊은 이치를 깨달아 성인이 된다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비로운 마음, 용서하는 마음, 참회하는 마음이 세 가지 마음가짐을 갖추어야 합니다. 자비로운 마음을 갖추려면 폭력을 쓰거나 내 생명을 아끼면서 남의 생명을 함부로 죽이거나 아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자비라는 글자를 머리와 가슴에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용서하는 마음도 중요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 불자는 무늬만 불자이지 진정한 불자가 아닙니다. 불교의 생명은 용서와 자비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조차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새가 허공을 날아가더라도 허공에 새 발자국이 없듯이, 내 가슴 가운데 미운 사람 두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더러운 오물이라도 흙으로 덮어주고 묻어주면 훌륭한 거름이 되듯이 잘못한 사람을 덮어주고 묻어주고 이해하고 용서하면 훌륭한 복덕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참는다는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할 것을 참아내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고 기도를 한다는 것은 참지 못할 것을 참아내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달라지고, 성격이 달라지고,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내가 먼저 화해할 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힘이요, 기도의 힘이요, 공부가 제대로 익어가는 모습이다.
우리는 항상 지나고 나면 후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돌아보면서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을 기대하고 사는 게 아니겠습니까. 참회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 희망을 품는 것이에요.

10년 20년 절에 다녀도 말버릇 고약하고 행동거지가 바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남편들은 저녁때마다 아내를 업어주면서 “당신은 이 세상 최고의 은인이오. 수십 년 동안 나를 위해 공덕을 베풀었으니, 이것을 어찌 돈으로 살 수 있겠소.” 이렇게 말해 보세요. 아내는 남편이 불편해하는 것이 없는지 늘 살피면서 부처님 대하듯 해 보세요. 중생공양이 제불공양이라 했습니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 거름을 주고 물을 주는 것보다는 못한 법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곧 모든 이를 아끼고 편안케 하는 것이요,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무시하고, 아내를 무시하고 가정에 불화가 생길 때 부처님은 눈물을 흘립니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입니다. 출세보다는, 부귀보다는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권력과 명예와 부는 지나가는 강물과 같습니다. 하지만 착한 사람, 사람답게 사는 사람, 진실하게 정을 느끼면서 모든 사람을 감싸 안으며 사는 사람은 공든 탑이 돼서 영원히 상대의 가슴에 향기가 될 것입니다.


단양/글=한명우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2006-05-12 오후 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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