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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주지로 있는 또하나의 사찰인 공기좋고 산세좋은 인왕산 범혜사보다 이곳 홍법원에 주로 머무는 이유는 오직 대중포교 때문이다. 스님은 일평생‘도심 포교’를 화두삼아 정진해 왔다.
범혜사에 들어서자 친근감이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3년전 췌장 수술을 해서 거동이 불편한 노스님이 절을 찾은 신도에게 신행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모든게 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거야. 지금 사는게 힘들다고 절대 실망하지 말고. 어두운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있는 법이니까 참고 인내하며 내 마음닦는 일에 전념해야 돼. 오직 마음공부 하는 데만 집중하면 돼.”
상담 내용을 옆에서 귀동냥 한 뒤 노스님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노스님 방에는 목탁, 법고부터 키보드까지 다양한 악기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마치 음악 작업실 같았다.
방 한쪽에 서 있는 칠판에는 음계와 가사를 수없이 지우고 다시 쓴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저건 다 몇 년전 찬불가 만들었을 때 했던 짓들이야. 요즘은 몇 년전 앓았던 뇌졸중 후유증으로 손발이 불편해 작곡도 그냥 머릿속으로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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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찬불가 대중화에 평생을 진력해온 스님의 이력을 미리 알고 간 터라 불교음악에 대한 스님의 생각이 더욱 궁금했다.
“대중이 이해 못하는 범패는 죽은 불교 음악이야. 그래서 죽기전에 범패와 우리 전통 가락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찬불가를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 스님은 범패가 마음으로 전해지는 가르침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재(齋) 의식에서 전문 범패승만이 부르는 음악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범패는 너무 어려워 스님들도 배우기 힘들어 수료자가 많지 않아요. 그러니 범패를 듣는 신도들이 어떻게 그것을 이해하겠어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찬불가요를 만들자는 생각에 20년전부터 스님은 길을 걸을 때나 잠잘 때, 일할 때 등 시간 날 때마다 일념으로 찬불가 작곡에 매진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끝에 스님은 20여년동안 수십곡을 선보여 음반으로 내놓았다. 또한 61세(1988년)가 되던 해엔 그중에서 10여곡을 뽑아 세종문화회관에서 불교음악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스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했다. 스님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요즘은 몸이 불편해 작곡은 못해. 그냥 생각만 하고 있어. 아, 스님들의 일상이라는게 다 똑같지 뭐. 새벽에 일어나 예불하고 공양하고 기도하는 게 전부야.”
스님과 같이 하루를 지내면서 지켜보니 보봉 스님의 오후 일과는 다른 큰 스님들과 약간 달랐다. 8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태고종 중서부 종무원장의 소임을 맡은 탓에 150여개의 관할 사찰에서 밀려오는 종무 행정의 결제건을 처리하는데 오후를 다 소진했다. 불편한 몸에도 종무 행정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요즘 보봉 스님이 가장 정성을 쏟는 것은 10월에 준공될 전통문화전승관 건립이다. 원로스님으로서 종단의 큰 숙원사업을 위해 본말사 스님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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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봉 스님은 오직 포교 일념으로 수행해 왔다. 1978년 미국 뉴욕에 한국 사찰로는 처음으로 전등사를 세우고 20여년간 해외포교에 주력했다. 그때 일화 한토막을 들려 주었다. 그러면서 ‘궁측통’이라고 하시며 살면서 간절히 원하면 안되는게 없다는 조언도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가정집 차고를 법당으로 개조해서 전등사를 만들었지요. 그리고 나서 미주 조선일보에 광고를 하니 교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부처님 말씀이 그리운 사람들이었던 게지요. 자동차가 법당 옆 주택가에 즐비하니 주민들이 신고하여 경찰서까지 갈 정도였으니까요. 주차장이 없으면 사람들이 법당에 올 수 없다는 생각에 밤새 고민을 했어요. 다음날 인근 햄버거 집을 찾아가 주인을 불러놓고 매주 신도들 점심으로 당신네 가게 햄버거를 구입해 줄 테니 너희 주차장을 사용하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잠시후 미국인 주인이 “Yes”를 하더니 몇 개월이 지난뒤 어느 순간 독실한 불자가 돼버리더라고요. 지금 전등사는 500여명이 들어가는 법당을 갖춘 뉴욕한복판의 큰 사찰이 됐지요.”
과거를 회상하며 또렷또렷한 말투로 말하는 스님의 모습에서 평생을 몸바쳐 온 대중 포교에 대한 강한 원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보봉 스님은
192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45년 일본 동양대학 음악과 2년을 수료했다.
72년 서울 사간동 법륜사에서 태고종 종정 덕암 스님을 은사로 건당해, 75년 신촌 봉원사에서 묵담 스님을 계사로 대승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스님은 78년 불교전문교육원과 불교통신교육원 대학, 96년 스리랑카 피리베나대학 철학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보봉 스님은 찬불가의 대중화를 위해 30여년간 수십곡을 직접 작곡해 음반으로 만들어 수만개를 전국에 보급하기도 했다.
또한 1978년 당시 포교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미국 뉴욕에 전등사를 세워 2000년까지 주석하며 해외포교에 진력했다.
현재는 종로 범혜사 주지직과 함께 태고종 서울중서부 종무원장, 태고종 원로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보봉 스님의 가르침
부처님오신날이 있는 이번 5월은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신 참 의미를 어느때보다도 소중히 되새겨야 할 시기라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근본으로 돌아가, 부처님 가르침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팔정도(八正道)’를 주제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대다수 불자들은 법회때나 불교교양대학에서 사성제와 팔정도 정도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정견, 정사유, 정어”등이라고 단어만 나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부처님오신 참뜻을 되새기자는 뜻에서 오늘은 팔정도를 다시한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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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에 보면 ‘마땅히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고 하는 뜻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역시 여러분들 잘 알고 있는 구절일 것입니다.
6조 혜능(慧能) 스님이 어느 날 <금강경>을 읽다가 바로 이 대목에서 홀연히 깨달았다고 하여, 선종에서 핵심적인 문구로서 매우 중시하게 된 것입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켜라’라고 해석되는데, 달리 표현하면 ‘일체의 것에 집착함이 없이 그 마음을 활용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공하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로 마음을 쓰라는 것이지요. 이런 경지에 오른때야말로 ‘평등즉차별’ ‘차별즉평등’ 이라는 중도의 진리를 가장 선명하게 체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도 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서 8가지로 나누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팔정도 입니다. 팔정도는 초기교단에서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하신 행위의 규범이자 실천 덕목 입니다. 여기서 정도란 바른길인데, 이 길은 지상의 길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 가느냐 하는 삶의 길입니다. 바로 이런 바른 삶의 길을 도(道) 라고 합니다.
길이 바르지 못하면 바른 삶을 살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은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그 직업이나 환경에 따라 제 각각의 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분야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적용되는 공통된 삶의 바른길은 무엇일까요? 중도의 완전한 수행법인 팔정도 입니다. 이것은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바른 수행의 길’이란 뜻이기도 하지요.
물론 여덟가지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중에서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를 무엇보다 강조합니다.
우선 정견은 바른 견해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입니다. 이를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이기 때문에 팔정도중에서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말을 설명할 때 특히 부부들에게 꼭 당부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부생활도 정견으로 하라고 강조합니다. 부부끼리도 바른 견해를 가지려면 한쪽면만 보지말고 다방면으로 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나쁜면만 보기보다는 좋은면도 분명히 크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바른 견해를 갖기 위해서는 바른 생각을 하는 정사유(正思惟)가 튼실하게 뒷받침돼야 합니다. 바른 견해를 가짐으로 해서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와함께 몸도 건강히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아니 정사유를 설명하는데 왜 건강얘기가 나오냐고 의아해하실지 모르겠지만,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 즉 바른 생각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불자들에게 법회때마다 메모지나 수첩에 팔정도의 핵심 내용만 간략히 요약해 항상 지갑에 넣어두며 수시로 꺼내 읽으라고 권합니다. 직장이나 가정 등 일상생활을 할때면 마장이 많이 올 것입니다. 그때마다 항상 이 팔정도의 내용을 꺼내 읽으면서 마음과 행동을 가다듬다보면 그 자체가 바로 수행이 될 것입니다.참된 불자라면 항상 이것을 생각하고 잘 익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팔정도를 실천하면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체(體)와 용(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체와 용은 둘이 아니기 때문에 한쪽이라도 소홀하면 안됩니다. 이 부분부터 다시 점검을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화엄종을 창종한 법장 스님과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와의 대화를 살펴보면 체와 용의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지요. 법장 스님은 궁의 금사자상을 가리키며 측천무후에게 “금(體)이란 본래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기술자가 교묘하게 가공하면 이것을 연으로 하여 금사자(用)의 모습을 띠게 됩니다”라고 불교교리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결국 법장 스님은 금이 본체이고 금사자의 형상은 현상이므로 금이 없으면 금사자도 없으니 금은 곧 금사자안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체란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일체 차별상의 근본이 되는 절대평등의 본체로서 일체 만물의 불변상주하는 본 모양을 가리키며, 용이란 체를 근거로 하여 인연에 따라 일체 차별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체와 용은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엄에서 말하는 체가 곧 용이고 용이 곧 체라는 이사무애(理事無碍)의 법계관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리를 잘 음미하면서 팔정도를 생활화한다면 여러 불자님들의 삶도 5월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소담스러워 질 것입니다.